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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Oct 09. 2018

억새가 춤추는 따라비오름

오늘은 남편이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는 날이다. 제주에 온 첫날부터 그곳만 바라보는 남편을 애써 외면하다가 이제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다. 캄캄한 새벽, 성판악에 남편을 내려 주고는 '용눈이 오름'이라 네비를 치고 무조건 달렸다. 캄캄한 외딴 길을 운전하는 것은 나에게 아주 어려운 일이다. 공연히 섬뜩섬뜩하고 뒤통수가 쭈뼛쭈뼛하여져 백미러로 수없이 뒤를 보며 음악을 틀고 노래까지 크게 부르며 운전해야 했다. 한기가 느껴지면서도  등 쪽에는 땀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출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졌다. 하늘 한쪽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냅다 액셀을 밟았으나 이미 늦었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며 애써 위안을 한다.



말과 함께하는 아침 산책은 제주에서의 특권이다. 방목하는 말들은 이른 아침에 우리와 같이 산책길을 오르며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이궁~ 웬 똥을 이렇게 많이 싼담! 아름다운 능선을 보느라 한눈을 팔아서는 절대 안 된다. 온 길이 똥이다.

 



조급히 달려오느라 진정이 안되었다가 완만한 용눈이의 능선을 바라보며 차츰 평온을 찾기 시작한다. 




다음 목적지는 억새가 아름답다는 따라비오름이다. 아직은 제철이 아니라 야리야리한 억새들이 입구부터 장관을 이루고 있다. 푹신할 것만 같은 억새밭에 눕고 싶어 진다. 한적한 길을 따라 오를 때 한 그룹의 사진작가들이 카메라를 메고 올라온다. 인적이 없어 외롭던 차에 잘되었다 싶어 그들의 뒤를 따른다. 아마도 야생화를 찍는가 보다. 그들이 카메라를 들이 댄 곳에 가면 작고 이름 모를 꽃들이 있다.





얼마 후 정상부 능선에 오르자 둥근 분화구 안쪽이 억새의 바다다. 능선 위에서 넓게 펼쳐진 억새에 빠져 있자니 능선 서쪽의 많은 풍차들이 만들어 낸 산들바람이 살짝살짝 나의 등을 밀어댄다. 한 바퀴 또 한 바퀴 돌고 돌아도 싫지 않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저들이 은빛바다를 이루며 춤을 추겠지...



가을에 제주를 방문한다면 꼭 들러야할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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