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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 윤 May 11. 2020

나는 살아봤거든

자네는 못 살아본 세상이라 그렇네

얼마 전 문화센터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였다.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조곤조곤하던 소리가 조금씩 큰소리로 변했다. 아무리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해도 귀가 그쪽으로만 기울어 갔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이 앉아 있었고, 그 앞에 예순 중반쯤 보이는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아이고, 요즘 젊은것들은 위아래가 없다.”

 “할머니, 우리 젊은 사람들도 요즘에는 힘들거든요. 경로석으로 가시면 되지 왜 우리 보고 자리 양보 안 한다고 뭐라 하는데요.”

 “자리가 없다 아이가.”

 “우리 보고는 경로석이 비어 있어도 못 앉게 하면서. 아, 나도 진짜 힘들어 죽겠거든요.”

자리 양보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어난 다툼이었다.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난감했다. 학생 말대로 요즘 아이들도 진짜 힘들 것이다. 우리 공부방 아이들 중에도 아침 8시쯤에 집을 나와 밤늦게까지 학교며 학원을 전전하다 귀가하는 아이들이 있다. 초등학생들도 그런데 입시라는 관문 앞에 선 고등학생들은 오죽할까. 아이들 얼굴에는 표정이 없고, 여유가 없다. 아주머니 말도 맞았다. 양보를 미덕으로 살아왔던 세대라 당연하게 여길 만도 하다.

 급기야 전철 내에 안전 요원이 왔다. 자초지종을 들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먼저 학생을 타일렀다.

 “학생, 피곤한 것은 알지만 어른이 오면 양보를 좀 하지 그랬노. 일단 어른한테 사과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아, 싫어요. 나이가 뭐 대수라고. 나이 먹으면 마음이 더 넓을 것 아니에요. 우리 할머니는 우리 피곤하다고 어디 가면 젊은 사람들 있는 데는 절대로 안 간다 하던데요.”

학생은 눈을 내리깔고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아이고, 요새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 말세다 말세라.”

아주머니는 급기야 주저앉아 주위를 둘러보며 도와 달라는 눈치를 줬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아지매도 그만하소. 요즘 젊은 사람들도 힘들긴 할낌더.  아지매 손자들도 힘들다 하지요?”

안전 요원의 말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학생도 아주머니도 주위의 눈길에 조금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연세가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보다 경로석에서 일어났다.

 “아지매, 여 앉아 가소. 난 나이만 먹었지 아픈 곳은 한 군데도 없소. 그리고 나이 먹었다고 무조건 양보해라 하면 안 되는 기라. 노인들은 여 앉아가라고 따로 자리도 마련해주고 돈도 안 받는다 아인교. 허허.”

순간 지하철에 정적이 흘렀다. 학생도 머뭇머뭇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학생을 앉히고 아주머니에게도 기어이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그렇게 자리 양보로 일어난 싸움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살아봤고, 자네는 살아 보지 못한 세상’이라는 말, 한참 동안 가슴에 남아 뭉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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