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 윤 May 29. 2020

D라인의 여유

그리움이 촉촉하게 배어 있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빗소리에 스며들었다.


  겨울비가 마치 봄비인양 내리기 시작했다. 거실에 갇혀 있던 화분들을 하나하나 내어놓았다. 뚝뚜욱, 빗방울이 잎을 따라 뿌리 깊숙이 파고들었다. 화분 속 식물들에 생기가 돌았다. 나도 빗속으로 나섰다.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온천천.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온천천 물에 하늘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물고기들이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한가롭게 움직였다. 왜가리가 한 발로 서서 세상을 바라보며 움직임도 없이 우아함을 뽐내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모습이었다. 모자를 눌러 쓰고,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했다.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꽁꽁 동여매고 걸었다. 아주 바쁜 걸음으로 팔을 흔들고,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씩씩하게 앞으로 향하여 갔다. 귀에는 이어폰을 낀 채 세상의 소리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인지 모두 종종걸음으로 바삐 움직였다. 


  나는 바쁜 사람들 속에 스며들지 못하고 천천히 걸었다. 가다 물고기가 있으면 멍하니 보다가, 왜가리의 눈길을 따라 그곳을 바라보기도 하며 시간 속을 걸었다. 한참을 가다 아름다운 광경에 미소까지 머금고 눈길을 빼앗겼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유모차를 밀며 걷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었다. 비가 내려도 개의치 않는 걸음이었다. 

나도 유모차와 속도를 맞추며 한참을 따라갔다. 아기 엄마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아,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라 저기서부터 뒤따라왔어요.” 

겸연쩍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우산을 받쳐주며 상황을 설명했다. 

“에고, 비가 와서 우짜노. 애기가 놀라겠어요.” 

유모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기는 유모차 앞부분 투명비닐에 모여서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빗방울을 신기한 듯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 번 생긋 웃어 주었다. 

“어차피 젖을 것 같아 저기 다리 밑까지만 갔다가 비 그치면 돌아가려고 그냥 걷고 있었어요.” 

아기 엄마는 내 궁금증을 짐작한 듯 먼저 답을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지하철 한 구간을 함께 걸었다. 마치 처음부터 동행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기 엄마는 첫째 아이 임신 때 몸의 변화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날씬하던 몸매는 통통한 오리 모습으로 변하고,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화난 복어 같이 느껴졌다고 했다. 자신의 모습이 무서워 거울도 보지 않았고, 밖으로도 나가지 않았으며 몸무게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불었단다. 마침내 심한 우울증에 임신중독증까지 걸려 그 당시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기가 자신을 망가트린 것이라 여겨 정이 가지 않았고, 미운 마음마저 들어 결국 젖 한번 물리지 않고 키웠다며 자책하는 어조로 말을 했다. 


  그녀는 결국 병원의 도움으로 건강을 찾아 갔고, 그사이 둘째가 생겼다고 했다. 첫째 아이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둘째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 중이란다. 병원에서 일러 주는 개선 방법을 거의 다 실천 해 보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더란다. 병원이 제안한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 표현하기, 규칙적인 수면습관 유지하기, 다른 산모들과 유대감 느끼기’등의 방법 중 햇볕을 받으며 걷는 산책이 가장 기분 좋은 것 같아 하루에 20~30분씩 걷는다고 했다. 이제 볼품없는 몸매가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까지 여겨진다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그 젊은 엄마가 아름다워 보였다.  


 꽃을 보러 정원으로 가지 말라. 

 그대 몸 안에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 

 거기 연꽃 한 송이가 수천 개의 꽃잎을 안고 있다. 

 그 수천 개의 꽃잎 위에 앉으리라. 

 수천 개의 그 꽃잎 위에 앉아서 

 정원 안팎으로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움을 봐라.    


  인도의 시인 까비르의 시 <그대 안의 꽃>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연꽃이 한 송이에 수천 개의 꽃잎을 안고 있듯 임산부는 생명을 잉태한 위대한 사람이다. 몸의 선은 D라인이 되지만 이런 상태가 이어지는 기간은 몇 개월에 불과하다. 짧은 인고 뒤에 찾아올 행복은 평생토록 간직할 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고 하지 않는가. 두고두고 내 이름 석 자 기억해 줄 나의 분신을 품고 있으니 참으로 보람된 일이지, 싶다. 


  난 1991년에 첫아이를 가졌다. 그해 부산에는 태풍 글래디스의 영향으로 하루에 439mm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다. 산사태 등으로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토목 설계를 하던 나는 그 현장을 다니느라 바빴다. 하루에 무너진 흙더미를 몇 군데나 오르내려도 힘들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 내 뱃속에 꼬물거리는 아기와 동행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가끔 지쳐 있을 때면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발길질을 하며 위로했다. 그렇게 우리는 교감을 주고받았다. 


  그때가 가장 신기하고 행복했다. 배 속 아이가 영향을 받을까 봐 매사 조심해서 행동했다.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무단으로 건너다니던 길도 한참을 돌아가는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름다운 것만 보려 노력했고, 좋은 말만 들으려 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뱃속 아이에게 많은 노래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혼자가 아니기에 행복했다. 그렇게 D라인의 여자들은 겉과 속이 같이 아름답게 성숙하여 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엄마’라는 멋진 이름을 갖기 위한 준비 기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좀처럼 비는 그치지 않았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든든했다. 

“연꽃이 진흙에서 피어나잖아요. 그 꽃이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워요. 우리 엄마들도 그런 것 같아요. 힘들어도 이 순간만 지나면 꼬물거리는 아이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겨울비가 마치 봄비인양 내리기 시작했다. 거실에 갇혀 있던 화분들을 하나하나 내어놓았다. 뚝뚜욱, 빗방울이 잎을 따라 뿌리 깊숙이 파고들었다. 화분 속 식물들에 생기가 돌았다. 나도 빗속으로 나섰다.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온천천.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온천천 물에 하늘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물고기들이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한가롭게 움직였다. 왜가리가 한 발로 서서 세상을 바라보며 움직임도 없이 우아함을 뽐내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모습이었다. 모자를 눌러 쓰고,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했다.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꽁꽁 동여매고 걸었다. 아주 바쁜 걸음으로 팔을 흔들고,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씩씩하게 앞으로 향하여 갔다. 귀에는 이어폰을 낀 채 세상의 소리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인지 모두 종종걸음으로 바삐 움직였다. 


  나는 바쁜 사람들 속에 스며들지 못하고 천천히 걸었다. 가다 물고기가 있으면 멍하니 보다가, 왜가리의 눈길을 따라 그곳을 바라보기도 하며 시간 속을 걸었다. 한참을 가다 아름다운 광경에 미소까지 머금고 눈길을 빼앗겼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유모차를 밀며 걷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었다. 비가 내려도 개의치 않는 걸음이었다. 

  

  나도 유모차와 속도를 맞추며 한참을 따라갔다. 아기 엄마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아,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라 저기서부터 뒤따라왔어요.” 

겸연쩍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우산을 받쳐주며 상황을 설명했다. 

“에고, 비가 와서 우짜노. 애기가 놀라겠어요.” 

유모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기는 유모차 앞부분 투명비닐에 모여서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빗방울을 신기한 듯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 번 생긋 웃어 주었다. 

“어차피 젖을 것 같아 저기 다리 밑까지만 갔다가 비 그치면 돌아가려고 그냥 걷고 있었어요.” 

아기 엄마는 내 궁금증을 짐작한 듯 먼저 답을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지하철 한 구간을 함께 걸었다. 마치 처음부터 동행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기 엄마는 첫째 아이 임신 때 몸의 변화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날씬하던 몸매는 통통한 오리 모습으로 변하고,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화난 복어 같이 느껴졌다고 했다. 자신의 모습이 무서워 거울도 보지 않았고, 밖으로도 나가지 않았으며 몸무게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불었단다. 마침내 심한 우울증에 임신중독증까지 걸려 그 당시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기가 자신을 망가트린 것이라 여겨 정이 가지 않았고, 미운 마음마저 들어 결국 젖 한번 물리지 않고 키웠다며 자책하는 어조로 말을 했다. 


  그녀는 결국 병원의 도움으로 건강을 찾아 갔고, 그사이 둘째가 생겼다고 했다. 첫째 아이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둘째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 중이란다. 병원에서 일러 주는 개선 방법을 거의 다 실천 해 보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더란다. 병원이 제안한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 표현하기, 규칙적인 수면습관 유지하기, 다른 산모들과 유대감 느끼기’등의 방법 중 햇볕을 받으며 걷는 산책이 가장 기분 좋은 것 같아 하루에 20~30분씩 걷는다고 했다. 이제 볼품없는 몸매가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까지 여겨진다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그 젊은 엄마가 아름다워 보였다.  

 

 꽃을 보러 정원으로 가지 말라. 

 그대 몸 안에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 

 거기 연꽃 한 송이가 수천 개의 꽃잎을 안고 있다. 

 그 수천 개의 꽃잎 위에 앉으리라. 

 수천 개의 그 꽃잎 위에 앉아서 

 정원 안팎으로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움을 봐라.    


  인도의 시인 까비르의 시 <그대 안의 꽃>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연꽃이 한 송이에 수천 개의 꽃잎을 안고 있듯 임산부는 생명을 잉태한 위대한 사람이다. 몸의 선은 D라인이 되지만 이런 상태가 이어지는 기간은 몇 개월에 불과하다. 짧은 인고 뒤에 찾아올 행복은 평생토록 간직할 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고 하지 않는가. 두고두고 내 이름 석 자 기억해 줄 나의 분신을 품고 있으니 참으로 보람된 일이지, 싶다. 


  난 1991년에 첫아이를 가졌다. 그해 부산에는 태풍 글래디스의 영향으로 하루에 439mm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다. 산사태 등으로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토목 설계를 하던 나는 그 현장을 다니느라 바빴다. 하루에 무너진 흙더미를 몇 군데나 오르내려도 힘들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 내 뱃속에 꼬물거리는 아기와 동행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가끔 지쳐 있을 때면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발길질을 하며 위로했다. 그렇게 우리는 교감을 주고받았다. 


   그때가 가장 신기하고 행복했다. 배 속 아이가 영향을 받을까 봐 매사 조심해서 행동했다.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무단으로 건너다니던 길도 한참을 돌아가는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름다운 것만 보려 노력했고, 좋은 말만 들으려 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뱃속 아이에게 많은 노래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혼자가 아니기에 행복했다. 그렇게 D라인의 여자들은 겉과 속이 같이 아름답게 성숙하여 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엄마’라는 멋진 이름을 갖기 위한 준비 기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좀처럼 비는 그치지 않았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든든했다. 

“연꽃이 진흙에서 피어나잖아요. 그 꽃이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워요. 우리 엄마들도 그런 것 같아요. 힘들어도 이 순간만 지나면 꼬물거리는 아이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그녀의 등을 도닥이며 나는 그녀와 헤어졌다. 그 행복의 맛을 조금은 아는 듯하다는 엄마의 미소와 굴러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아이의 미소가 닮아 있었다. 돌아오는 길, 객지에 있는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나처럼 그리움이 촉촉하게 배어 있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빗소리에 스며들었다. 

 

이전 12화 나는 살아봤거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