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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Feb 23. 2024

여의도 에스컬레이터에서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나도 어떤 소리를 들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정확히는 '사는 게 별로 재미가 없고 의미가 없어서 당장 시한부 선고가 내려지더라도 생각보다 담담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랄까. 또는 '인간이 삶을 산다는건 이렇게나 고되고 버거운 일인데 앞으로 남은 60년 가량을 어떻게 살지? 죽음보다 잘 살아내는 것이 더 무서운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었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뇌경색과, 그 이후의 처참한 일상들을 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가장 단단하고 든든했던 큰 산 같던 존재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가는 모습을 또렷하게 지켜보면서 인생의 무상함과 인간의 무력함에 치를 떨었다. 할아버지를 마주할 때마다 울던 엄마와 달리 나는 무슨 싸이코패스처럼 "할아버지 왜 또 울어요~"하면서 애써 웃었지만, 돌아오고 나서는 마음이 무너져 며칠을 앓았다. 그런 반복이 1년에 가까워지자 감정이 멍해져 '죽어도 상관없겠다. 살아도 끝이 저럴거라면'하는, 약간의 자포자기와 우울의 단계에 이르렀다.


그건,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공휴일이었나. 남자친구를 여의도 더 현대에서 만나기로 하고 여의나루역에서 내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는데 주말과 붙어있던 공휴일이라 그런지 캐리어를 끄는 사람이 많았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캐리어는 반드시 내 앞이나 뒤에 두고 손잡이를 꼭 붙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날따라 사람들이 걸어올라가는 왼쪽 라인에 캐리어를 방치하고 딴 짓을 하는 들이 많았다. 불안해보였다.


약속에 늦을까봐 에스컬레이터 왼쪽 라인으로 걸어올라갔다. 다 올라와 출구 쪽으로 열 걸음 정도 내딛었을 때였나, 내 바로 뒤에서 캐리어가 두두두두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에스컬레이터가 꽤 길어서 그 소리도 길게 났고, 그 사이 '어 뭐야' 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래쪽을 보며 '어떡해'하고 웅성거렸다. 나도 순간 '뭐지?'하며 에어팟을 빼고 등을 돌려 에스컬레이터로 가려던 찰나, 찢어지는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 그건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짐승의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몇 초간 길게 지속됐고 반복될수록 더 격렬해졌다. 내가 살아서 들어본 인간의 소리 중 가장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분명이 어떻게 됐구나 싶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저런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휴대폰을 든 손이 덜덜 떨리고 오금이 얼어붙어 에스컬레이터 쪽으로는 한걸음도 더 내딛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무엇이라도 보게 되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 불행을 저 사람이 대신 가져간 것 같았다. 조금만 늦었다면 저 비명소리가 내것이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도망치듯 역을 빠져 나왔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출구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갔을 때도 비명 소리는 계속 들렸다.


그 날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밥을 먹으러 간 백화점 식당가에서 수많은 인파 속에 미친 사람처럼 얼이 빠져 남자친구 손에 붙들려 돌아다니다, 목이 너무 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이킨 것이 전부다. 휴일이고 뭐고 집으로 가야겠다며 바로 나왔지만 지하철역 근처에도 갈 수 없어 택시를 탔다. 하지만 집에 와서도 쉽사리 안정이 되지 않았다. 5분에 한번 귀에서 비명소리가 맴돌았고, 5분에 한번씩 기사를 검색했다. '여의나루역 에스컬레이터 사고'. 제발 그 분이 무사하길 기도하면서.



순간 나는 또 다른 목소리를 들었다.


놀라운건, 그 비명소리에 혼비백산해 여의나루역을 빠져 나올 때, 누가 내 머리 속에 때려박듯이 지나간 말이 있었다는거다.

삶은 신성한 것이다.


정말이지 '신성'이라는 단어는 평소에 내가 잘 쓰지도 않는 말일 뿐더러, 당시 나의 감정상태를 지배하고 있던 삶에 대한 비관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관념이라, 이건 분명히 나의 생각이 아니었다. 누군가 나에게 와서 속삭이고 간 말에 가까웠다. 하지만 동시에 내 머릿속에 떠오른 나의 생각이었다. 그럼 나인가 내가 아닌가?


분명 이건, 내 안의 누군가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죽음? 죽는게 별게 아니야? 담담해? 죽지 않은 인간의 비명소리에도 이렇게 벌벌 떨면서 어떻게 죽음이 아무렇지 않다는거야. 정신차려. 삶은 신성한거야. 네가 감히 끝내고 말고를 조금이라도 넘볼 수 있는 그런게 아니라고. 이 오만한 사람아"


뭐, 마치 이렇게.


때려 맞은듯한 기분이었다. 요즘 말로 정말 뼈를 맞았다. 죽음의 ㅈ자도 모르면서 까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 자체를 입에 올리는 것이 오만방자였다. 그렇지, 삶은 신성한거지, 살아있다는건 너무 소중한거지, 이 자체로 감사한거지. 지체 없이 주억거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이후로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으로도 까불지 않았다.



5년 전 홍콩에서와 같은 분이신가요?


예전에 브런치에 '누구에게나 잠시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홍콩의 빅토리아피크에 올라갔을 때 '이대로 살아도 10년 뒤에 행복하겠니?'라는 물음이 뇌리에 박혔고, 나의 이성적 회로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신이 머물다 간 순간이었다고 고백하는 글이었다. 딱 5년만에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인데,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의 나는 그 '신'이 내 안에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떠한 강렬한 상황이 발생함으로써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은 맞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강렬한 상황 때문에 이러한 경험을 '특별한 신의 개입'으로 여기게 된 것은 아닐까? 이미 내 안에서는 하염없이 스러져 가면서도 결코 꺼지진 않는 할아버지를 보며 삶은 신성하다는 생각이 깃들었을 수도 있다. 나의 부정적인 자아가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했을 뿐. 5년 전에도 같았다.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자위하는 방향이 더 쉽고 간편했으므로 그렇게 했을 뿐, 깊은 내면에서는 이대로 공허하게 살다가는 10년 뒤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거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끔씩 삶에 중요한 울림을 주는 '신의 속삭임'이 내 안에서 오는 것이라면, 내가 어떠한 노력을 했을 때 그 경험을 더 자주 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이 힘들 때마다 내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사는 게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는 직 잘 모르겠지만, 내 마음 속에서 외면하던 소리에게 조금 더 곁을 주는 것 만으로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이런 말이 있다.


요가에 하나의 신성한 진실이 있다면
아마 이 문장에 담겨 있으리라.

신은 우리 자신, 정확히 내 모습 그대로
내 안에 머문다.


좀 위안이 된다. 내 생각이 틀린 것 같지는 않아서. 그리고 삶이 흔들릴 때마다 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알고 있다는 안도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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