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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Jul 07. 2016

내가 스타트업에서 만족스러운 이유

내 회사, 소통과 공감, 미래에 대한 희망.

제목을 몇 번이나 썼다 지웠는지 모른다.


- 내가 지금 행복한 이유

- 내가 스타트업에서 행복한 이유

- 나는 과연 행복한가?


결국 선택한 제목은 <내가 스타트업에서 만족스러운 이유>. '행복'을 '만족'으로 바꾸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스타트업 입사 3개월도 안됐는데 "나는 행복해요! 행복해 죽겠어요!"라고 떠들고 다니면 나중에 힘들다 소리 한 번 못할까 봐 배수진을 치는 게 첫 번째고, 울 엄마 말로는 주책 떨면 있던 복도 날아간댔으니 지금의 행복감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두 번째다.


회사를 옮기고 첫 공휴일은 제헌절이었다. 주말과 붙어있는 빨간 월요일은 대한민국 수백만 직장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고, 이전의 나 같으면 한 달 전부터 달력에 큰 동그라미를 몇 번이나 겹쳐 그려놨을 테다. 그런데 이번 제헌절을 앞두고 나는 3일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 퇴근시간까지 다음 주 월요일이 휴일임을 알지 못했다. 정말 놀라운 건, 휴일임을 알고 나서도 '쉬면 좋겠지만 출근해야 한대도 괜찮아'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날 이직하고 처음으로 '내 선택이 맞았구나' 안도했더랬다.




#1. 대행은 대행일 뿐이야. 나는 영원한 을이고


이곳에 와서 행복한 이유를 단 한 가지만 뽑으라고 한다면 '내 회사'가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회사를 좋은 말, 예쁜 말로 포장해 널리 알려야 하는 PR 직무의 특성상 회사에 대한 애정도가 업무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물론 어느 직무든 애정도와 성과는 비례하겠지마는). 그런 의미에서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하나라는 것, 그 하나가 내 맘에 쏙 든다는 것은 홍보 담당으로서 매우 축복받은 일이다.


대행사에서 홍보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여러 개 기업의 홍보 업무를 한꺼번에, 그것도 철저한 '을'의 입장에서 수행해야 한다는 거였다. 미디어는 점점 다양해지고 고객사는 매번 새로운 것을 원했지만 내 몸은 하나였고, 마치 저글링(Juggling)을 하듯이 밀려오는 업무를 '쳐내기에' 바빴다. 지금 있는 업무 외에 새로운 행사 또는 보고서가 추가될까 봐 회의 때마다 전전긍긍했으니까.


내가 한 일이 결국 내가 한 일이 아니라는 것에도 회의가 컸다. 내가 한 달 내내 준비한 기자간담회에 기자들이 RSVP 현황보다 훨씬 많이 참석하고, 당일 CEO 인터뷰 서너 개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하더라도 결국 그 날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어디서든 나는 일개 홍보대행사 직원이었고, 내가 아무리 뛰어난 들 스스로 행복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일을 할 땐 항상 외로웠다



#2. 내 넘치는 사랑을 쏟아부을 무언가가 필요해


애착이 없으니 성취감을 느낄 리 만무했다. 가끔 꽤나 괜찮은 기고문을 뽑아내거나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면 잠깐의 뿌듯함은 있었지만, 그건 나의 향상된 업무 스킬에 대한 대견함 같은 것이었지 장기적으로 나에게 '동기 부여'가 될 만한 성취감은 아니었다. 나에겐 그것이 회사든, 팀이든, 보스이든 간에 애정을 쏟을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다니던 대행사는 마치 각 AE들이 모여 사무실을 공유하는 그런 곳 같았다. 우리 회사만의 비전, 가치, 결속력, 유대감 같은 건 없었다. 입사 일주일 후 신입 교육에서 대표에게 들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우리 회사를 사랑할 필요 없어요. 고객사를 사랑하세요.


그래서 난 끝까지 그 회사를 '내 회사'라고 진심으로 느껴본 적이 없다.


지금의 회사에서 나의 팀장은 '팀원들의 동기부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든 의사소통은 수평적인 위치에서 평화롭게 이뤄진다.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이기 때문에 '매니저'라는 호칭을 쓰며 대표님까지도 언론홍보에 대해서는 내 말에 귀을 기울인다. 자유롭지만 '책임'이라는 그 무엇보다 엄격한 채찍이 있고 '성취'라는 무엇보다 달콤한 당근이 있다. 아직까지 우리 회사, 특히 우리 팀은 이 어렵고도 아름다운 체계를 잘 유지해가고 있다.


덕분에 매일 아침 '회사 가다가 아주 살짝 다쳐서 입원했으면'이라고 못된 생각을 하곤 하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오늘은 어떤 새로운 일을 할까 설레고, 주어진 일을 하면서도 웃는 일이 많아졌다. 팀은 언제나 화기애애하고 대표님은 진심으로 존경스러우며 곧 출시될 우리 서비스는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울 만큼 최고다. 앞으로 우리 회사가 핀테크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게 될 걸 의심치 않고, 그 여정에 내가 일조하게 되어 감사할 뿐이다. 모든 변화의 답은 소통과 공감에 있었다.


매일매일 수다 겸 회의 겸


#3. 과거가 아닌 미래를 공유한다는 것


우리 회사의 서비스는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사업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지만 와서 직접 겪어보니 변수도 많고 이슈도 많다. '예정대로'라는 말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전보다 더 으쌰 으쌰 하고 있다. '출시가 되면'이라는 가정법이 좀 아쉬워도 여전히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즐겁고 행복하다. 희망적인 미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처음 느껴본 희열이다.  


애정을 쏟을 내 회사가 있다는 것.
그 회사가 소통과 공감이 가능한 곳이라는 것.
소통의 끝이 희망적인 미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  


이 세 가지가 바로 내가 여기서 만족하고 있는 이유다. 감사한 일이다. 


다음 편에서는 PR 매니저라는 이름을 달고 내가 여기서 하고 있는 일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가령 수다를 떨다가 광고 시안을 만들어 낸다거나, 또 수다를 떨다가 대박 페북 이벤트를 생각해 낸다거나, 또 수다를 떨고 하루 종일 떠드는 우리 마케팅팀의 100% 스타트업스러운 업무 풍경이랄까. 그럼 Bye.






P.S. 마지막으로 (면접도 취소했던) 나를 이 곳에 데려와준, 내가 단지 우리 회사의 PR 매니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커뮤니케이터로 커 나가길 바란다 말해주시는 나의 보스, 우리 팀장님께 나의 두 번째 브런치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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