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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에게

여행 앞에

by 혜령



전화를 해야겠다.

과거의 어디쯤에서 기다리는 나에게.

대답이 없어도 오래 기다려야겠다.

도나우 강변을 따라 걸어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덕길에서 만나는 우울한 천재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새로운 물결을 이루는 건축의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있거나 푸른 정원에 장미향이 가득해 길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인류의 마디에 문을 열고 닫는 발견과 영혼의 샘물이 되는 바람 같은 것.

누구나 살아갈 수 있지만 이루어 내기에는 축복이 필요한 흔적을 느끼고 싶다.

오래 기다리지만 지루한 마음은 없다.

너무도 이해하게 되는 그 방랑의 이편에 서 보았기 때문이다. 거울처럼 보이는 행로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문득 다시 떠나는 날이 왔다.

새벽은 포지타노의 그것처럼 알 수 없는 손짓을 보낸다.

나는 또 무엇을 안고 돌아올까.

안아 올리는 시간과 공간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떠난다.

느리고 부족한 메아리도 기다려준다고 하니.

다른 나의 모습과 미처 몰랐던 얼굴을 만나고 오겠지.

또 어떤 가슴과 눈물은 세상을 한 뼘씩 넓게 해 줄지도 몰라.

과거의 시린 강을 건너는 모든 사람들을 더 사랑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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