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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때문에
사진 속의 시간은 시들지 않고
by
혜령
Feb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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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의 호수를 지나며 한 무리의 노인들이 모래바닥에 쇠공을 굴리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단조로운 움직임과 그래도 뭔가 점수가 나는지 웃고 아쉬워하고 자리를 바꾼다.
조금 더 들여다보니 대충의 룰이 보인다.
작은 움직임으로도 흥미진진한 게임이 되고 있었다. 호기심을 보이며 구경하는 우리에게 살짝 윙크를 보내시며 여전히 열심히 쇠공을 굴리신다.
여유와 우아함마저 가진듯한 포즈와 속도가 한참을 머물러 응원하게 만든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흐른 일이지만 사진 속의 취리히는 아직 그대로 웃고 있으며 맑고 청량한 호수가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자박자박 그리움이 밀물처럼 차올라 사진 속의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다.
호수를 누비는 백조의 거대한 엉덩이에 놀라고 맑고 맑은 하늘과 물빛에 반했다.
유람선 위에서 바라보는 크고 작은 마을의 불빛들은 익숙하고도 그리운 미소로 기억된다.
바다가 없어도 바다를 부러워하지 않는 호수의 도시는 파란 눈의 요정처럼 여행 내내 행복을 불어 주었다.
샤갈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가슴에 창을 내고 말았던 교회와 정갈하고 친절했던 퐁듀 식당이 있던 거리가 아른거린다. 푸르고 아린 꽃들과 쨍하고도 흰 산봉우리들이 거울 같은 호수를 안고 있는 그곳으로 가고 싶다.
쇠공을 굴리며 윙크를 하던 노신사의 작고 다정한 웃음이 봄바람처럼 보드랍던 시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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