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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옥수수밭 옆에 묻는다면

상사화

by 혜령


기억은 시간의 파편

멀어질수록 잘게 흩어진다

하나를 잡으면 또 하나가 금이 가는.

베를린이었다가 바르샤바였다가.

열병이 된 기침이 또 부서지고.

바닥에 신호등은 재촉하는 발걸음.

찬 바람이었다가 굵은 비였다가 따가운 햇살.

사실은 무엇이었나.

거리의 분주한 퇴근이 와인과 내장수프로 완성된다.

일상이거나 꿈이었던 하루는 일 년이 되고

이별이 난무했던 계절은 삶이 된다.

더 이상 부서지지 않아도 견딜만한 시간이 되었다.

천천히 흐르는 강이 되는 우리는 산으로 들로 스며들어 풀도 되고 열매도 되겠지.

희망이었다가 기다림이었다가.

결국은 무엇이었나.

겨우내 뿌리 속에 웅크린 상사화는 이제 피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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