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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울지 못하고

길 은 멀고 멀어서

by 혜령

지금은 정지된 시간.

새벽부터 시간은 색을 잃었다.

하얀 눈만 시선이 닿는 곳에 소복하고 바람은 서서히 봄을 이어 나른다.

산 사람을 위한 시간이 지체되고 순서를 기다리는 절차는 온통 돈이다. 죽음마저 비싸다니.

치르고 치르고 치른다.

삼일쯤 무엇이건 이름을 붙여 치르고 나면 비로소 놓아주는 산 사람의 시간.

그리 지체할 일이 무엇인가 싶다.

당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당신이 가시고 싶은 길을 가기도 힘들게 시간의 지체는 번거롭고 고단하다.

주섬주섬 돌아 나오는 방문 앞에 나는 서서 오래 침묵한다.

단호한 이별의 결심도 닥치면 초심을 잃는다.

돌아보지 말라고 했지만 돌려세워 둘 수밖에 없는 영정사진에 엄마는 웃고 계시다.

어서 보내 드려야 만날 분들은 만나실 텐데.

이제는 남은 순서는 나.

혼자 남는다는 것은 가볍고도 서늘하다.

무엇이건 필요한 만큼 다 가지고 가세요.

남은 것이 있다면 내가 갈 때 가지고 갈게요.

숙제처럼 나는 주섬주섬 챙기는 날을 예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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