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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

by 혜령

종점과 종점 사이를 내달릴 때 그것은 한 편의 영화였고 소설이었으며 다른 세상의 문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상형문자 같은 표정을 읽고 몸짓에서 사연과 연륜과 유행을 느끼기도 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 멀리해야 하는 것들을 알게 되고 사람의 세상과 자연의 이치를 엿보기도 했다.

가벼운 동전 몇 개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여유였다.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제일 먼저 타거나 가장 마지막에 내릴 때 약속을 지키며 묵묵히 정류장을 순회하는 버스의 고마움이 세상을 향한 긍정적인 사고를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웬만한 악천후에도 버스는 와주었고 일 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숨을 쉬듯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고마운 세상이었다.

감사와 존경을 담아 꼬박꼬박 인사를 했고 그런 내가 대견했다.

그 시절에 버스는 진정한 서민의 발이었고 선량한 아버지들의 직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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