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인이여

사랑은 안될 것 같소.

by 혜령


향기만으로 가득한 한 잔의 차와 같이

넘기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빈 시간이 되지 않소.

그러니 사랑은 마오.

사랑으로 향하는 길만 계속 걸어가고

사랑에 당도하려는 꿈에 오래 머무르고

그 무지개만 바라보며 살기를 바라오.

그대의 시가 찰랑이는 보름달의 직전이기를 바라오.

아직은 오랜 시간 달을 보며 기다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게 말이오.

그것이 그대의 사명이고 운명이라고 미리 말하지 않았소.

그대 스스로 말이오.

큰맘 먹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동감하고 목을 빼고 그대를 따르고 있다.

그러니 시인이여.

사랑을 찾고 사랑을 쫓아 가더라도 그 꺾인 길을 돌아 들어가 숨지는 마시오.

빈 잔이 되어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을 것 같아 그러오.

잃을 것 같아 그러오.

죽을 것 같아 그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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