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빛초록 Nov 03. 2021

사랑가득, 결혼식

선물같은 시간

단풍이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아름다운 가을 날

오랜만에 만나는 대학 동창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12년 전 하얗고 어린 얼굴에 베토벤머리를 하고 피아노를 치며

심심하면 장난을 치고 놀리던 어린 학생이

어느새 짧은 머리를 하고 정장을 차려입고서 든든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신부의 손을 꼬옥 잡고 나타났다.


어찌나 긴장을 많이 했는지, 언제나 광대가 반짝볼록하게 올라오도록 씨익- 웃던 사람이

얼굴 근육을 바들바들 떨며 자그마한 미소만 짓고 있는게 웃겨 웃음이 새어나왔다.

여유로운 척 신랑입장을 했지만 어찌나 뚝딱거리며 빠르게 걷던지, 딱 놀리기 좋았다.

분명 한살 많은 오빠인데 어린 남동생 장가보내는 누나가 된 기분이었다.


그날의 신부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은은한 예식장의 조명 아래 무수한 별빛처럼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서

예쁜 보조개 웃음을 지으며 입장하는 모습이 천사같았다.

대학시절 함께 만나 저녁 늦게까지 맥주를 마실 때 보았던 귀여운 웃음을 그대로 머금은채 우아한 신부였다.


신랑 신부가 함께 성혼선언문을 낭독하고서

양가 대표로 장인어른께서 축복의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게 정말 감동이었다.

정성스레 준비해오신 대본에 몇번이고 반복되던 '사랑하는 우리 딸'이란 단어에서 딸을향한 깊은 사랑을 느꼈고,

'고이 키워 보내주신 우리 멋진 사위'라는 말에 사위를 환영하는 마음과 새 가정의 출발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축복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우리 딸을 예쁘고 훌륭하게 키워내느라 고생많았던 우리 사랑하는 아내.'라는 문장을 말씀하시며

그동안 함께 지내온 세월들을 떠올리시며 사랑을 가득히 담아 아내분을 바라보는 눈빛은 세상 최고로 멋있었다.

이어진 신부 친동생의 감미로운 축가까지... (친동생이 축가를 부르는 건 처음봤다)

정말 사랑이 가득한 집인게 느껴졌다.


이어서 신부 직장동료가 준비해준 흥이넘치는 '아모르파티'무대는 정말 역대급이었다.

직장동료도 많고, 처음보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두사람은 정말 아랑곳않고 선글라스 하나 낀 채

열정적올 춤을 추고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저렇게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한다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거의 가지못하던 결혼식에 오랜만에 참석하니 여러 기분이 교차했다.


1. 사랑과 행복만이 가득한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가족들만 서로 가끔 아프고 힘들던 시간이 있었던 걸까 싶어 조금은 씁쓸해졌다.


저렇게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와 슬픔이 없겠지,

나처럼 자존감에 대해 고민하고, 그리고 사람관계를 하면서 눈치를 많이 보지 않는 인생을 살아와서

목적을 정하면 불필요한 생각 없이 집중하고, 때로는 즐겁게 나아갈 수 있었겠지.

엄마아빠가 싸워서 냉랭해진 분위기 속에 어떻게 할지몰라 방황해본 적 없겠지.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만나 고부갈등도 나보다 적겠지.

보다 행복한 가정을 이뤄가며 살 수 있겠지.

하고 자꾸만 부러운 마음이 올라와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나의 이 고민에 신랑이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함께 꾸린 가정을 그렇게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면되지. 난 자신있어!

그리고, 결혼식은 모두가 행복한 날이니, 더 행복한 모습이었을거야. 우리도 그랬을거야.

옛날에 서로 미워했을수도 있고, 다툰날도 있겠지만 서로 화해하고 보듬고 이겨내서 이곳에 있는 걸 수도 있잖아.

우린 행복한 가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더 잘해낼 수 있어! 걱정마!"

이 든든한 신랑의 말에 사르르 마음이 녹아내리고, 걱정이 눈녹듯 사라졌다.

"그래, 우린 잘할 수 있어. 서로 평생 더 사랑하고 이해하고 보듬고 살아가야지."


2. 인생을 조금 덜 심각하게, 더 가볍게, 더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엄청나게 신나는 축가무대를 보는순간,

무대를 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우울하고, 슬프고, 힘들텐데 저렇게나 행복한 모습으로 누군가를 축하해줄 수 있다는게 멋있었다.

온갖 걱정과 고민들에 얽매여서 자꾸만 수면밑으로 침잠하다보니 그 무게가 나를 붙잡아 도저히 수면위로 올라올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걱정은 또다른 걱정을 데리고 왔고, 나는 결국 어두운 심해에서 걱정덩어리 옆에 매인 채 머리를 감싸쥐고 외로이 지낸 날들이 많았다.

갑자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잖아?'하는 생각이 들었다.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이 머리가 징-울렸다.

고민하고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굳이 어두운 표정으로 얽매여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 저렇게 웃고, 노래하고, 신나게 춤추고, 조금 더 가볍고 즐겁게 살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밝게 지내다보면 내 삶도 더욱 더 밝은 곳으로 향해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랜만에 소용돌이 치는 여러 감정들에 휩싸이는 결혼식이었다.

그래도, 참 선물같은 시간이었다.

내게 선물같은 시간을 선물해준 신혼부부가 서로 많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오늘처럼 언제나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서로를 사랑으로 바라보기를 기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랑이 그린 수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