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모든 엄마 준비는 무용했다

자연주의 출산으로 가는 길

by 유이배


아이를 임신하고부터 내가 준비했던 일이라고는 무수한 출산 후기를 읽는 것, 그리고 베이비페어에 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는 것 정도였다.


베이비페어에서 사모은 손수건, 배냇저고리, 양말 등은 아기 전용 세재에 무형광, 형광 제품을 나눠서 세탁하고 햇볕에 널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SNS에 올려 '꿀이 만날 준비 중'이라고 코멘트를 달았더니, 지인들이 "좋은 엄마다"라며 나를 칭찬해줬다. 일부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했다.


엄마가 될 준비를 착실히 잘하고 있다고 믿었던 이유들이다. 틈틈이 육아 서적도 읽었고, 주변의 많은 엄마 선배들이 하는 조언도 귀를 쫑긋하며 새겨 들었다. 공통점은 ‘똑똑하고 현명한’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와 거리 유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리원에서는 괜한 모성애를 발동시키지 말고 나보다 더 아이를 잘 돌봐주시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내 몸조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조언이나 어차피 갓난쟁이 때는 잘 모르니 이때 아이를 맡기고 여행도 다녀올 수 있으면 오라는 조언이 귀에 더 쏙쏙 들어왔던 것이 그 시절 나의 모습이다. 아이를 어느 정도 울려야 하지만 대신 엄마 아빠에게 숨 쉴 여유를 준다는 수면 교육과 어려서부터 자립심을 길러줘야 한다는 프랑스 식(?) 육아법이 특히 마음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실질적인 용품 준비와 함께 태어나자마자 아기를 독립시킬 마음의 준비까지, 나는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계획대로 되는 법 없었다. 정작 아기를 낳고 난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모든 것들은 무용하게 흩어져 버렸다. 당장 나는 출산 직후 내 몸과 정신에 일어날 변화들을 짐작 조차 하지 못했다. 그 많은 조언들 중에 정작 출산 직후 벌어지는 일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어쩌면 출산만큼이나 출산 직후의 일들은 베일에 감춰져 있는 것 아닐까.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링 위에 올라 상대편의 스윙에 녹다운되는 그런 느낌의 수일을 보냈다.


'어째서 그 누구도 모유수유가 이렇게 힘들다고는 말해주지 않았을까? 출산보다 더 힘들잖아!'


아니다. 사실 누군가는 넌지시 모유수유의 고충을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출산의 공포에 너무 매몰되어 있어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오로지 출산 당시 겪게 되는 통증의 강도와 이후 회음부에 벌어질 일들에만 집중한 임신기라 해도 무방했다. 그러나 출산은 하루이고, 모유수유는 수개월의 일이다. 육아는 어쨌든 이 모유수유의 관문을 단 며칠이라도 거친 이후의 일이다.


육아의 첫 관문부터 혼란스러워져 책을 통해 습득한 온갖 지식들이 공기 속에 흩어져 무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초산모의 경우 처음에는 모유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젖을 물려야 모유가 잘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빈 젖을 빠는 듯한 아기가 불쌍해서 간호사를 붙잡고 "분유 좀 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그렇게 해서는 모유수유를 하지 못한다"라는 냉정한 타박. 무지에 대한 죄책감과 간호사의 냉정으로 인한 당혹스러움이 뒤섞여 순간 눈물마저 핑 돌았다.


아이를 낳은 지 3일째 되는 날, 드디어 천국이라는 조리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조리원 가는 길마저도 초보 부모에겐 모험의 연속이었다. 추운 겨울이었기에 아기를 꽁꽁 싸매고 또 싸매었지만, 그래도 찬바람에 잠깐이라도 노출되는 것이 두려웠다. 조리원까지는 불과 10분 거리였지만, 신생아를 안고 가면 안되고 꼭 카시트에 태워야 한다는 맘 카페 선배들의 조언에 우리는 카시트까지 설치를 했었다. 하지만 카시트에 아기를 눕히는 방법 조차 몰랐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작디작은, 그리고 빠알간 신생아가 잠이 들어있었다는 점. 울기까지 했더라면 병원 로비에 주저앉아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그저 모든 것이 어찌할 바 모르는 일의 연속이었다.


아기를 조리원까지 데려가 한 숨 돌리는 찰나에 또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신생아실로 간 다음, 온몸의 긴장이 쪽 빠져 축 쳐져 있는 내게로 온 조리원 실장님은 돌연 '젖 좀 봐요 산모님'이라고 말했다.


'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젖을 트게 될 줄이야. 어느새 그분은 내 젖을 요리조리 관찰했고, 합격 판정을 내렸다.


"완모 충분히 하실 수 있으시겠네요."

칭찬인 듯 들렸지만 마냥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출산도 고통 없이 지나갔고 ‘완모에 적합한 젖 보유자’라니 어쩌면 나라는 인간은 출산과 육아에 적합한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태어나 처음으로 스쳐가기도 했다.


그날 밤 친구들에게 "내게 새로운 자아가 생겼어. 나는 지금까지 여자, 딸, 아내였는데 이제 내게는 '젖'이라는 자아가 생겼어"라고 말했다.


기분이 몹시 이상했으나 이 모든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조리원은 모든 것이 젖으로 통했다. 아침 밥상에서 만난 산모들은 서로에게 "젖이 잘 나오냐"라고 묻는 것으로 지난밤의 안부를 대신했고, 나는 젖몸살도 앓았다. 새벽에 퉁퉁 불어버린 젖을 유축기로 빼낼 때에는 점점 더 나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렸다. 나는 사람인가, 젖소인가.


그리고 또 하나,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은 나의 모성애였다. 아기를 만난 순간부터 머릿속에 아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독립시키겠다는 야무진(?) 초보 엄마의 마음 준비는 모두 무용지물. 신생아실 베시넷에 누운 나의 아기가 참으로 사랑스럽고 애처로워 소변 기저귀 정도만 갈 줄 아는 엄마라 할지라도, 내내 아기를 방에 데려와 함께 있었다. "조리원에 가서 육아할 생각은 하지 말라"거나 ”아이와 거리 유지를 해 나를 지키는 엄마가 돼라”는 조언들 사이 "그런데 막상 네 아이가 태어나면 눈에 밟혀서 아무것도 못할 걸"이라는 말을 해준 누군가들의 얼굴이 스쳤다. 당시에는 '에이 설마' 했었던 말들이다.


어차피 퉁퉁 불어버린 젖으로 인해 잠은 못 잔다. 그러니 그 시간을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와 함께 채워가고 싶었다. 엄마가 된 지 일주일도 안 된 나는 어설플지라도 아기를 혼자 베시넷에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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