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출산, 내가 할 수 있을까

자연주의 출산으로 가는 길

by 유이배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짚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출산을 지독한 통증으로만 인식하고 통증을 피하려고만 했던 것. 출산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육아는 프랑스 육아서적을 뒤적거리며 막연히 아이의 독립심을 키워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이 모든 것들은 어쩌면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 속에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들은 피하고 싶었던 내 본심 아니었을까.


자식만큼 생기기 전에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존재가 또 있을까. 자식이란 존재가 주는 기쁨과 환희, 그리고 그 이상의 책임감들과 제약은 낳기 전엔 가늠도 불가능하며 사전 계획 역시 큰 의미는 없긴 하다. 그런 점에서 나의 무지와 그로 인해 막상 현실이 되어 닥친 순간의 당혹감은 어쩌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완벽하게 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다. 그렇지만 진입단계에서부터 내 나름의 준비가 그토록 처절하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엄마가 되기 전 삶과 그 이후의 삶은 전생과 후생 정도의 간극이라고도 말한다. 정말 그만큼 달라진 내 새로운 삶은 때로는 이전에는 결코 겪을 수 없는 환희가 됐고,때로는 어마어마한 압박으로 다가오는 책임감이 됐다. 그래도 나름의 적응을 해가며 나는 조화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첫 아이가 두 돌을 지나갈 무렵, 나는 두 번째 임신을 하게 됐다. 계획에 있던 일은 아니었다. 첫 아이 임신 때와는 다른 당혹감과 두려움이 나를 휩쓸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려움의 크기는 점점 커져갔다.


이번엔 출산의 고통, 회음부의 통증,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모유수유와 같은 지엽적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은 육아와 내 삶의 조화에 또 다른 존재가 침범하는 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게다가 둘째 임신은 첫 임신과는 확연히 달랐다. 첫 임신 때는 딱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입덧도 없었고 초기의 가벼운 어지럼증이 지나갔을 뿐이었다. 피부는 오히려 더 좋아졌고 막달에 다리가 저리긴 했지만 크게 고통스럽지 않았다. 반면 둘째 임신은 피부 소양증, 피부 트러블, 입덧을 경험하게 해 줬다. 안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임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나는 더더욱 우울해져만 갔다.


나름 의욕에 차서 출산 후기도 읽고 이것저것 사모으던 첫 임신기와는 달리 이번에는 내 마음을 다잡는 것이 시급했다. 아직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와중에 몸은 야속하게도 점점 임산부의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임신 전 요가 TTC(요가 티처스 트레이닝 코스)를 막 마친 터라 나는 산전산후 TTC 과정으로 출산 준비를 하고자 했다. 사실 출산 준비라기보다는 그 마저도 안 하면 내 두 번째 임신기간이 헛되이 지나갈 것 같았다. 자꾸만 머릿속에 신생아 육아기에 내가 할 수 없는 것들, 혹은 아이를 둘이나 기르게 되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만 맴돌던 때다.


그런데 TTC 과정 와중에 나는 또다시 히프노버딩을 접하게 된다. 과정을 이끌어주시던 선생님도 자연주의 출산을 하신 분이었다.


수업 와중에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집 책꽂이 어딘가 꽂혀있을 잊고 있었던 그 책이 떠올랐다. 첫 임신 당시 내 생각을 전복시켜준 그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침 나는 한번 경험해 본 일이니 익숙할 것이라 생각했던 두 번째 임신이 주는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압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또 한 번 겪게 되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변화가 감당하기 힘든 버거운 파도가 되어 나약한 내 자신을 자꾸만 뒤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엄마는 진통이 고통의 파도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몸을 이완시켜 아이를 낳고,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게 되는 아이는 그런 엄마의 가이드 속에 두려움이 아닌 편안함으로 첫 호흡을 할 수 있다는 자연주의 출산의 믿기지 않는 철학은 내 마음을 은근하게 자극했다.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통 없이 후다닥 아이를 낳고 작은 고통이라도 찾아올라치면 끝없는 우울감과 신체적 피로에 자책과 원망을 반복하는 내 자신의 나약함에서도 어쩌면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고통마저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고통의 파도에 전복되지 않고 나를 지켜내고 아이를 지켜낸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경험일까. 나는 그 경험의 맛이 궁금해졌다.


그럼에도 막상 자연주의 출산을 하겠다고 선택하기에는 이것저것 걸리는 것들이 있었다. 일단은 높은 비용이 발목을 잡았고, 요가를 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유연하지 않은 내 몸이 과연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점, 무엇보다 괜히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벌여놓아 여러 사람을 분주하게 만들어놓고 정작 내 자신이 감당을 못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을 만들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


'나도 자연주의 출산해보고 싶다',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볼까'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차올랐음에도 나는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것이 가장 편안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시 설득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다니던 병원을 다녔고 조리원 예약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결국은 어느 날 남편에게 "당신은 내가 자연주의 출산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어보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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