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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Jan 30. 2022

10년 다닌 직장 때려치우고 시골로 간 이유

글을 시작하기 앞서 고백한다. 직장 한 곳을 10년 동안 다닌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인내심이 좋은 편은 아니니까. 무수한 이직을 반복했다. 하지만 동종업계라 엎어지면 코 닿을만한 곳이긴 했다. 여하튼 언론사 밥을 10여 년간 먹었으니 10년 다닌 직장 때려치운 것으로 해둬도 좋지 않을까.


대학 졸업 후 작은 언론사에 취직을 했다. 몇 년 다니다가 대학원 갈 생각이었는데 돈도 없고 생각보다 기자 생활이 적성에 맞아 꽤 오래 일을 하게 됐다. 제법 잘한다는 평가도 들었고, 몇 번의 이직으로 큰 회사 소속도 되어봤다. 라디오나 프로그램 섭외도 자주 들어와서 고정 패널이나 진행자로 방송도 해보았다. 그럭저럭 나의 커리어는 근사했으나 결혼 임신을 계기로 회사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결혼 임신으로 인해 겪었던 회사 내의 갑질에 대해서는 이곳 브런치에서 한풀이하다시피 많은 글을 썼었다. 그 글을 계기로 KBS 다큐멘터리 '사표 쓰지 않는 여자들'에도 출연했고, 비록 80% 이상이 편집되었지만 내 나름의 복수(?)도 한 셈이 됐다. 그 다큐멘터리를 본 전 회사 사람들이 놀래서 내 브런치를 찾아봤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내 개인 채널을 통해 넘치도록 많이 말했으니 굳이 이 글에서는 적지 않겠다. 그리고 이미 그 일이 일어난 지도 시간이 제법 흘렀다. 첫째 아이 임신/출산 때 겪은 일이었는데 그 아이가 이제 7세가 되었다. 아직도 그 일로 끙끙 앓고 있다면 그것도 문제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야 돌이켜보면 그때 그 일을 겪은 것은 내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 극복하고 여유를 찾으니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에 시련을 겪어 새로운 인생을 개척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싶다. 만약 그 일을 마흔 중반에 겪게 됐더라면. 물론 마흔 중반에도 충분히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는 있지만 서른 중반과는 다른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나의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매일매일 만원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간밤의 숙취에서 회복되지 않은 정신으로 오전을 보내고 퇴근시간에 맞춰 마감을 치다가 마감 후에는 또다시 취재원들과 술잔을 기울였던 삶에 익숙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나는 서울 근교 시골로 내려와 논밭 뷰의 전원주택에서 아이 둘과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며 살고 있다. 단 한 번도 주부가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며 성장했는데 집밥을 짓는 삶에 익숙해졌고 아이 둘을 내 손으로 키운다. 그런 한편 여전히 글도 쓰고 방송도 한다. 일주일 한 번 정도 서울로 나가 방송을 하고 아이들이 잠든 새벽에 원고를 써서 보낸다. 온라인 요가 수업 제안이 들어오면 커리큘럼을 짜서 수업도 진행하고 있고 내 블로그나 브런치,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도 시간을 제법 할애한다.


때로는 육아가 지치고 힘들 때도 분명 있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직장생활만큼 힘들지는 않다. 아이들은 나를 차별하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고 평가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아주 가끔 서울의 밤이 그리울 적도 있긴 하지만, 희한하게도 집 밖에 나가 두세 시간만 지나면 아이들이 보고 싶어 발을 동동거리게 되니 아직은 내가 아이들 곁에 길게 머무는 것이 맞다 싶다.


지금의 삶과 예전의 삶의 결정적 차이는 일이 내 삶을 지배하느냐 그러지 않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과거에는 인생의 팔 할이 일이었다면 지금은 내 삶 그 자체가 내 인생이다. 일은 그중 한 요소일 뿐 전부가 아니다.


일은 중요하다. 벌어들이는 돈을 떠나서 자아실현의 차원을 떠나서, 내가 이 사회에서 어떤 효용가치를 지닌 사람인 것인가의 문제이니 말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서울에서 방송을 하거나 간밤에 원고를 써서 보낸 뒤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보면 일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매일같이 출근하던 날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니 일만 쫓아간다고 느낄 수 있는 가치인 것도 확실히 아니다.


10년 다닌 직장에서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을 당시, 사표로 내몰리기 직전의 수개월 동안 나는 '직장 밖에서 펼쳐질 다음 인생에선 내가 주인이 되자' 마음먹었다. 내 삶의 굵직한 선택의 시기,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순간마다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큰 변곡점 앞에서 그저 누군가의 처분에 따라 나뒹구는 내 처지를 절감하고 하게 된 결심이었다.


지금 내 삶의 주인이 되었나 누군가가 묻는다면, 90% 정도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나머지 10%는 아직은 아이들로 인해 시간의 자율성이 온전하지는 않기 때문인데, 아이들에 내 인생을 헌신하겠다는 결심도 실은 내가 한 것이니 어쩌면 100%인 듯도 하다.



관련 유튜브 영상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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