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자꾸 뒷전이 되는 남편과 아내 사이

by 유이배

출근길,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보던 와중 맛집 포스팅을 발견했다. 아무 생각없이 남편에게 '우리 이거 먹으러 갈까'라고 보냈었다. 꼭 가자는 의미라기 보다는 언젠가 여기 한 번 가보자 정도의 제안이긴 했는데, 남편은 대뜸 '오늘?'이라고 물었다. '오늘은 안 되지. 아기는 누가 보고. 그냥 언제 한 번 가보자'라고 문자를 꾹꾹 눌러쓰던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그래! 좋아. 오늘 가자'라고 답했다.



연애를 할 적엔 오늘의 일을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우리 이거 먹을까?' '그래! 좋아'

'우리 오늘 영화 볼까?' '응. 내가 예매할게'


거리낄 것이 없었던 우리의 관계는 상대가 나의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할 정도로 순조로웠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관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싸울 일도 많았다. 육아는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점을 확실히 깨닫게 해줬다.


그나마 아이를 돌 이후까지 키워내고 보니 정돈된 패턴이 생기긴 했다. 한 시간 일찍 퇴근하는 나는 퇴근하자마자 달려가 아이를 목욕 시킨다. 남편이 오면 저녁을 같이 먹는다. 이후 내가 운동을 간 사이 남편이 아이를 재운다.


때때로 공백이 생기는 순간에는 시댁 어른들이 아이를 커버해 주신다. 남편과 나는 입버릇처럼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가 아기를 키워주셔서 진짜 다행인 것 같아'라고 말하곤 했다. 최대한 서로의 회식이나 야근 스케줄을 겹치지 않게 짜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 시댁 어른들이 계셔 저녁까지 아이 육아를 도맡아 주실 수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는 더 없는 행운이기는 하다.


육아하기 참 힘든 헬조선에서 이만한 행운을 누리는 우리는 한편으로는 '이 이상 더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 것 같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잖아’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 남편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내 스스로에게도 자주 했다.



그러다보니, 둘이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은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극장은 언제 마지막으로 갔었나 기억도 안나고, 둘이 좋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은 기념일에나 하는 일이 됐다. 물론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아이와 함께 일상을 보내는 것이 불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둘의 관계가 어느 순간 실종되어버린 느낌이 들긴 했다.


우리 둘의 관계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버린 것이다

가족에서 부모 자식의 관계 만큼이나 부부의 관계 역시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자꾸 우리를 뒤로 미루는 것에 익숙해졌다.


아이와는 눈을 마주치고 아이의 하루를 살펴주려고 노력했으나 내 남편의 하루, 내 아내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은 자주 잊어버렸다. 어느 날 문득 우리도 아이 없이는 지탱이 힘든 생존형의 식은 커플이 돼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고 남편 회사 근처에서 만나 약속한 식당으로 향했다. 연애 시절에는 흔했던 데이트를 꽤 오랜만에 해보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과 식당에 마주앉아 별 것 아닌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우리 가끔, 한달에 한 번 정도는 이렇게 둘이 맛있는 것 먹으로 올까'라고 말했다.


맛있는 것에 참 약한 남편이 그걸 마다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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