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에 일종의 진입장벽이 있다면, 아마도 유연성일 테다. 내가 요가를 하면서 몸과 정신의 곳곳이 좋아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권유하면 80%는 "난 몸이 너무 뻣뻣해서 요가는 절대 못해"라고 말들을 하니까.
비록 아직도 나는 많은 고난 위 아사나들을 잘하지 못하고, 이제 겨우 기본적인 정렬을 잡아가는 수준의 초급 지도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어 대답한다면
요가는 유연하면 잘할 수 있어요.
그런데 몸의 유연함이 아니라 마음의 유연함을 말하는 겁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너무 교과서적인 말 같이 들릴까 걱정되지만, 사실이다.
물론 당연히 몸이 태생적으로 유연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요가를 함에 있어 굉장히 앞서 달리게 된다.
그렇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내가 요가를 하는 이유를. 내가 요가를 하고 싶어하는 이유를 말이다.
"몸이 유연해지기 위해서?!"
막상 매트 위에 올라서면 유연한 누군가를 우리는 부러워하지만, 요가 매트 바깥 세계에서는 유연함을 탐내는 일은 잘 없다. 결국, 우리가 요가를 하는 이유도 몸의 유연함 때문은 아니다.
사람들이 제각각 요가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요가를 하면서 아팠던 몸이 나았기 때문이거나, 몸의 정렬이 바로잡아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거나, 아니라면 단순히 몸매를 가다듬기 위해서가 아무래도 가장 많을 것이다.
그러니 유연함은 결코 요가의 장벽이 될 수가 없다.
또 막상 요가에 깊이 들어가보면, SNS에 올리는 고난위 아사나가 그 사람이 요가를 잘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물론 나도 한 때는 매트 위에 서서 나보다 더 유연한 사람들을 흘깃 거리며 '왜 나는 저렇게 안될까' 싶기도 했다. 아직 기본도 안 채워졌는데 얼른 고난위의 아사나를 멋지게 하는 모습을 사진을 찍어 올리고 싶어 했다.
그런데 이건 요가가 아니라 그저 흔하디 흔한 SNS 속 허영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내가 배운 요가는, 반복적인 수련과 명상 속에서 내 몸이 점점 더 유연해지면서 동시에 내 마음이, 정신이 내 삶의 닥치는 여러 크고 작은 위기들에 유연해지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 속에 몸은 건강해지고 정신도 건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깊이 깊이 빠지게 됐다.
여전히 나는 짜증을 내고 누군가를 험담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하지만, 과거에는 그런 뒤의 찝찝한 마음을 안고 하루를 마무리 했다면, 이제는 "이런 좋지 않은 생각을 뒤편으로 밀어 내보자.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하는 생산적인 고민들을 앞서 생각해보자"라며 스스로 방향성을 되새기게 된다.
반복해서 이런 마음의 수련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누군가를 험담하지도 않고 감정의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 자신이 더 나아지리란 믿음도 요가 안에서 가능했다.
사실 몸의 수련은, 더디어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수준까지는 도달한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날 긴 시간을 투자해 몸을 충분히 풀어내면 내가 도달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아사나에 꽤 빨리 도달하기도 한다. 몸의 유연함은 그렇게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데 현대 요가에서 정신의 수련, 마음의 수련의 중요성을 강조해주는 지도자는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은 요가원에서 요가를 다이어트의 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임하는 대부분의 대중에 맞게끔 가르치기 위함이기도 하다. 살 빼고 싶어서 요가하러 온 사람들한테 마음과 정신을 말하면 괜히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조금 더 깊게 요가를 파고 들어가면 이내 알 수 있게 된다. 요가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수련이라는 것을. 사실 요가에 앞서 진행되는 짧은 명상으로도 막연하게 우리는 요가의 참의미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물론, 요가를 잘 한다는 사람들 중에 요가를 유연성의 과시라고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요가수트라에서 하물며 "천상의 신들에 의해 초대받았을 때에도 자존심을 없애고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로 다시 연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데, 천상의 신 근처에도 가지 못한 상태에서 교만해지고 마는 사람들의 어설픔은 세상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몸은 유연할지언정, 마음은 참으로 둔탁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유연한 자들 앞에서는 한없이 약자일 밖이다. 그것이 본인이 그어놓은 초라한 테두리다.
부디, 유연하지 않다고 요가를 겁내 하지 말기를. 요가는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유연한 마음, 그것만 있으면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