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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유동옥탑 Dec 14. 2024

작은 회사 이야기, 1화

눈치는 없지만 많이 봅니다.

 △△△센터 - 1화 |

눈치는 없지만 많이 봅니다.


'생긴 기회도 위기일 수 있다.' 

- 웹 예능 <라면꼰대> 중.


구밀복검. 감언을 경계하라는 이 사자성어는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꿀처럼 달콤한 기회나 일자리도 그 속에 칼을 품고 있을 수 있다.


서울 인근, 초봉 3,200만 원, '크리에이터'라는 직함, 나라에서 수탁한 사업으로 안정성이 보장된 회사라는 설명, 그리고 학과 조교님의 추천까지, 그 직장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이제 막 설립된 회사라 내가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면 그것이 곧 나의 자산이 될 것이라는 말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시 □□읍 △△△센터로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이 사업은 더 큰 재개발 프로젝트를 위한 마중물이라고 했다. 청년 인구를 유입하기 위해 '힙한 공간'을 발굴하고 조성하며, 지역 주민들이 직접 도시 개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표였다. 사업 계획서는 다소 장황하고 두서가 없었지만, 사회 초년생인 내가 사업을 직접 운영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인 기회였다. 게다가 어른들이 으레 청년들에게 던지는 상투적인 말들을,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믿어버렸다.


 여기서 크면 잘 될 거야.
우리가 키워 줄게.


내 통근 열차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출근 시간대에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상행선은 한산했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에는 열차가 출발하는 시간에 맞춰서 역에 도착했어야 했다. 배차 간격이 길기 때문에 내가 타려는 차를 놓치면 차라리 근처에서 저녁을 먹으며 퇴근 열차를 기다렸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정확히 1시간 30분이 걸렸다.


일터에 도작하면 사무실도 없었다. ○○시에서 사업에 필요한 비품과 사무실을 약속했지만 당장은 힘들다고 하였다. 이제 생긴 지 한 달도 안 되는 회사였기에 그러려니 했다. □□역 근처 작은 카페에서 개인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면서 언젠가는 번듯한 컴퓨터와 사무실이 생길 거라 기대했다. 특히 같이 일하는 동료분들께서 일하는 곳으로 곧 이사를 온다는 소식에 나도 그렇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이라 사무실이 없는 건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회초년생이 그러하듯, 나는 대단한 에이스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눈치가 빠른 사람도 아니었다. 직장을 가지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저 고정수입이 생긴 대학생에 불과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막연한 생각이 '불길한 느낌', 소위 '싸하다'라는 생각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아직 미숙한 젊은이었다. 게다가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애썼다.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열심히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잘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회사는 배우는 곳이 아니다.


세 분과 함께 사무실에서 일했다. 센터장님 A, 그리고 동료 직원 두 분이었다. 동료 직원 분들은 경력직이었고, 나를 'S 씨' 혹은 'S 군'이라 불렀다. 나는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은 두 분을 '선생님'이라 불렀다.


B 선생님은 국회에서 일을 하다 센터장님과 함께 이 사업에 발을 들인 분이셨다. J 선생님은 공간 운영 사업을 직접 경영하며 관련 업계에서 일한 지 3년 정도 된 베테랑이셨다. 두 분 다 국가 기관부터 지역민들 까지 다양한 인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사이에 햇병아리 같은 나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은행 업무, 우체국 업무, 심부름 등 잡일은 다 내 몫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기초적인 회사 생활 매너와 '증빙'의 중요성을 배웠다. 특히 증빙을 꼼꼼히 해둔 덕에 후에 있을 큰 화를 피할 수도 있었다.


J 선생님은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매우 친절하셨다. 내가 서기를 자처하며 회의에서 센터장님과 자문위원님들의 발언을 받아 적기만 하고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면, 회의가 끝난 후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한 마디라도 하라며 피드백을 주셨다. J 선생님은 내가 '학생'처럼 보이는 순간마다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S군이 사회 초년생일지라도,
회사는 배우는 곳이 아니에요.
뭐라도 알고 있는 걸 활용해 봐요.


이때 처음으로 월급의 무게를 실감했다. 이전까지 내가 속한 사회에서 나는 그저 '배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월급 이상의 가치를 지닌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묻고, 아는 것은 확인받으며,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 빠르게 직장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했다. 시키는 대로 해서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일찍 배웠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때 참 칭찬을 많이 들었다.


사무실도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사업을 꾸리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눈치를 보며 방해가 되지 않으려 애썼고, 그 노력이 결국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요 사업 중 한 프로젝트를 메인으로 맡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렇게 신입사원 입사 후 수습기간이 지나기도 전에 직원 세 명 모두가 각 프로젝트의 PM으로 일하게 되었다. 또 그만큼 사무실(로 쓰는 카페)이 바쁘고 활발하기도 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B 선생님에게서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다. "S 씨는 우리랑 같이 오래 일한 것 같고, 잘하네요."


그 칭찬은 장기말이

'내 편'인지 떠보는 말이었다.


B 선생님과 센터장님 A는 나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했다. 특히 J 선생님과 내가 가까워질수록 두 분은 더 멀어졌다. 한 번은 J 선생님과 함께 문구점에 다녀오겠다고 했을 때, 센터장님께서 혼자 다녀오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센터장님은 J 선생님과 내가 직접 소통하는 것을 불편해하셨던 것 같다. 그 이유를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지만, 당시의 나는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 탓에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시 □□읍 개발 사업을 수탁한 기업은 Y 교수님이 대표이사로 있는 'ㄷ 회사'이고, 그 아래 실질적으로 사업을 하는 △△△센터가 있는 형태였다. 그리고 Y 교수님과 함께 사업을 기획했다고 하는 H 이사님이 계셨다. H 이사님은 'ㄷ 회사'에 소속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 사업에 깊게 참여하시는 분이라고 하셨다. △△△센터의 센터장으로 'A 센터장'님이 계신 것이었다.


나는 △△△센터에 Y 교수님의 추천으로, J 선생님은 H 이사님 추천으로, B 선생님은 A 센터장님 추천으로 입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실무진에 각 임원과 가까운 직원을 한 명씩 배치한 후 자신의 뜻대로 회사를 경영하려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왜 하필 내가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는지는 너무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곧 풀리게 되었다.


어느 날, 신입사원인 나를 독려한다는 명분으로 Y 교수님께서 우리가 일하는 카페로 찾아오셨다. 나는 이미 점심을 먹은 상태였지만 교수님과 이사님은 점심을 아직 드시지 않아서, 보리밥 집에서 식사를 했다. 나는 막국수 절반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가벼운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곧 대화의 방향은 센터장님과 사업 이야기에 대한 주의로 바뀌었다. 교수님과 이사님은 센터장님과 깊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요청을 하셨고, 그 이유는 충격이었다.


센터장님께서 성희롱 문제에 연루되셔서 곧 교체될 것이라는 거였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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