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일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모인다. '사회(社會)'라는 단어는 '모이다'라는 뜻을 품은 두 한자가 합쳐진 것이며, 중학교 때 우리는 사회를 '두 사람 이상이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모임'이라고 정의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사회'를 뒤집으면 '회사(會社)'가 된다. 물론 'Society', 'Company', 'Workplace', '직장', '회사', '상사'는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지만, 우리는 흔히 "회사에 다녀", "회사는 어때?"라고 이야기하며 '회사'와 '직장'이라는 단어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다. 그러므로 나는 '회사', 곧 '직장'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곳.
'회사'는 법인체로서 영리 활동을 목표로 하는 기업의 한 형태이다. 그렇기에 회사는 늘 완벽하게 일을 해내야 한다. 결함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돈을 버는 것은 누구나 봐도 잘못된 일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완벽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모여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고, 각자 맡은 업무를 수행하며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 따라서 회사에는 두 사람 이상이 필요하다. 경영을 맡아 회사를 이끌어갈 임원과 노동을 담당하는 근로자는 '기업'이라는 개념이 생긴 이래로 회사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구성원이 되었다. 근로계약과 위임계약으로 '회사'와 '사람'은 그 구성에 신의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참여하기로 약속한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회사'는 당연히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장점만 있는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회사는 항상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회사와 계약을 맺은 근로자들은 대체로 '내집단'의 장점을 보고 회사에 머문다. 나 역시 그랬다. 매일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회사가 요구하는 업무를 적절히 수행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내 동료들 또한 자신이 받는 월급의 가치를 알기에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우리는 회사의 장점을 하나씩 늘려가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회사의 장점을 키워 강점으로 만드는 것은 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여겼다. 이제 막 첫 삽을 뜬 사업을 운영하는 새 회사들의 기초를 튼튼히 다진다면,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 작은 회사의 성장은 곧 나 자신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속한 집단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회사든 수습 기간을 지나 적어도 3년은 다니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입사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가 착하게 살고 싶었던 것처럼, 나는 정말이지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무결한 피해자라 호소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분명히 실수를 했고, 오만했으며, 회사와 맞지 않는 것을 요구한 근로자였다. 그럼에도 회사가 주는 월급의 무게를 잊고 살지는 않았다.
너무나 무겁게 시작했지만, 이 글은 사실 일기에 가까운 경수필이다.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엮어낸 일종의 '회사 리뷰'다. 너무 어렸던 시절, 조금 성장했다고 스스로 오만했던 나를 돌아보는 반성문이자, 부조리했던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담은 하소연이기도 하다.
이 글은 내가 작은 기업 세 곳을 다니며 직접 듣고 기록하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했다. 사실이 아니거나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내용은 최대한 배제하려 노력했지만, 당시의 감정과 지금 느끼는 소회를 솔직히 담아내고자 한다. 이 수필이 단순히 '내가 다닌 회사는 이렇게 형편없었어요'라거나 '모든 게 회사 탓이야!'라는 식의 공허한 불평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나와 내가 다녔던 회사들의 '오답노트'가 되길 희망한다.
(이런 거창한 목표와는 별개로, 소기업에서 일하거나 소기업을 경영하는 우리 이웃 독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소소한 재미를 전할 수 있기를 또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