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에게 이런 일이?
* 본 수필은 실제 사건에 대한 개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실제 사건과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며, 특정인에 대한 비방 등 악의적인 목적이 없습니다.
"센터장이 성희롱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는 처음 가져본 ‘직장’이었다. 저 말로부터의 충격은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적당히 반응했다.
“놀라셨겠어요.”
“저는 처음 듣습니다.”
Y 교수님은 내가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과는 빨리 손절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실제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H 이사님은 내가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며 자신이 꼭 나를 키워주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H 이사님은 직원들이 일하는 카페에 단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들었던 말들은 모두 나를 Y 교수님과 H 이사님의 편에 서게 하려는 달콤한 속삭임이었을 뿐이다.
사람을 쓴다는 게 이런 건가? 당시 내가 이걸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첫 직장이라고 대견해하는 가족에게 말하면 어려운 일을 피하려는 막내의 푸념으로 들릴 것이었다. 이 직장을 추천해 준 조교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학교 선배와 동기들도 사회 초년생이라 바쁜데 이런 일로 만나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회사 안에는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게 뻔히 보이는 데 내 속내를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그들은 사람을 '고용한'게 아니라 '이용한' 거였다는 것과 나는 사회 초년 생이라 그들에게는 쓰고 버리는 패나 장기말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저녁 식사 장소가 지하철 역과 매우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식사 후 우리집까지 태워다 주신다는 걸 정중히 거절하고 중간 지하철 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차 안에서 A 센터장님에 관한 경고는 매우 상세하게 계속되었다.
A 센터장님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J 선생님과 B 선생님 두 분 다 여성 분이셨다. 도심지 재개발을 위한 답사를 진행하는 중 여관과 모텔도 방문하였고 A 센터장님이 그때 J 선생님과 B 선생님께 성희롱으로 해석될 만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J 선생님이 문제를 제기하자 A 센터장님은 함께 일하기 힘들겠다고 이야기하면서 J 선생님의 사업에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고 했다.
Y 교수님에 따르면, A 센터장님은 이 사업과 회사 전체를 자신이 좌지우지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업 관계자들에게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했다.
"Y 교수님이랑 H 이사님이 불륜인 거 아세요?"
"H 이사님 댁에서 H 이사님 아드님이랑 Y 교수님이랑 같이 살고 계신 거 알아요?"
Y 교수님, H 이사님 모두 각자 자식과 가정이 있는 분이셨다. H 이사님에 따르면 A 센터장님이 이혼 후 형편이 좋지 않아 이 사업을 탐낼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또한 저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각각 사실적시, 허위사실 유포를 통한 명예훼손이라고 했다.
나는 처음으로 사람과 대화하면서 힘이 죽 빠지는 걸 느꼈다.
집에 오고 나서 퇴사를 해야 하나 깊이 고민했다. 성희롱 사건만으로도 불쾌했는데, 사내 정치까지 휘말리니 정말 골치가 아팠다. 이 회사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나 거대 기관도 아니고, 6 명이 조그만 동네 재개발을 위해 함께 일하는 건데 이토록 분열이 심한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륜이고 뭐고, 사업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제대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퇴사하지 않았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퇴사하는 건 참을성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거 같았다. 게다가 내 커리어에 도움이라도 될 무언가를 얻 수 있고, 어딜 가든 이런 정치는 만연하다는 오판과 사업을 내 손으로 잘 마치고 싶다는 어리석고 열정 넘치는 생각에 사업이 끝날 때까지 다녀는 보기로 했다.
Y 교수님은 A 센터장님과의 다툼에서 이기기 위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 사이에서 고통받는 건 직원들이었다. Y 교수님은 A 센터장님께 법인 인감, 카드, 통장을 넘기지 않고 재정을 직접 관리하셨다. 그런데 Y 교수님은 직원들이 일하는 곳(사무실이 없어서 카페)으로 출근하지 않으셨고, 그에 따라 큰 문제가 발생하였다.
사무실이 없어 당장 업무와 회의는 무조건 카페에서 진행했고,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또 휴대가 가능한 형태로 비품을 모두 들고 다녀야 하녀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기에 A 센터장님은 계속 체크카드라도 달라고 요청하셨지만, Y 교수님은 절차에 따라 품의를 올리라고 하셨다. 이 갈등이 계속되는 중 아래와 같이 이상한 지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직원들이 사비로 사업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 후, 매일 영수증 증빙과 함께 엑셀로 정리해 Y 교수님께 제출하면 그제야 입금이 되는 방식이었다. 특히 A 센터장님과 B 선생님의 지출 건은 단순 영수증 제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해당 물품이 왜 사업에 필요한지에 대한 상세한 사유를 적어야 했다. Y 교수님께 엑셀을 올리는 업무는 내 것이었다. A 센터장님은 그 일을 나에게 맡기며 나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고, Y 교수님은 나를 통해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A 센터장님은 이런 이상한 지출을 적극 ○○시와 □□읍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열악한 업무 환경은 동정심을 유발하기에 더욱 유리했다. 거기에 센터장님은 술자리를 자주 만들었다. 후에 지역주민께 들은 이야기로는 그 술자리에서 A 센터장님은 Y 교수님 불륜 소문을 더 넓게 퍼뜨리는 반면, J 선생님과 나에 대한 험담도 종종 했었다고 한다. 특히 내가 능력도 없는 'Y 교수님'의 애제자이자 낙하산이라고 했다 한다.
그러나 나는 대학을 다닐 때 Y 교수님 수업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정신없이 일하고 첫 월급날, 내가 이전에 ‘알바비’로 받던 돈의 몇 배가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먼저 지출한 각종 비용도 틀림없이 들어왔다. 첫 월급으로 가족에게 선물을 사고, 내가 가지고 싶었던 닌텐도 스위치를 하나 샀다. 그리고 3분의 1 정도는 바로 적금 통장을 만들어 넣었다.
큰돈을 벌었다는 기쁨보다는 앞으로 무얼 할 지에 대한 희망과 설렘이 더 컸다. 바보 같은 꿈도 꾸고 소박한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그때 썼던 일기가 얼마나 웃기는지, 너무 낯 간지러워서 지금은 버려버리고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첫 월급날은 행복한 순간 중 하나였다.
그런데 퇴근 후 J 선생님께 급히 전화가 걸려왔다.
J 선생님께서는 월급이 잘못된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