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테이블 위에 하얀 식탁보가 깔끔했다. 가운데 놓인 유리 꽃병에는 흰색 금어초가 우아한 자태로 향기를 뿜었고, 빙 둘러가며 준비된 식기와 잔들은 조명을 받아 빛났다. 한 입에 먹기 좋게 포장된 떡 세트도 함께. 모처럼 차려입고 자리한 강남의 예식장이었다. 식장은 곳곳에 장식된 많은 꽃들로 마치 화원 속에 있는 듯했다. 속속 도착한 초등 동창들과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결혼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잠시 후, 양가 어머니가 예식장 중앙에 마련된 꽃길에 앞에 들어섰다. 큰아들을 장가보내는 긴장된 마음이 동창의 얼굴에 묻어났다. 함께 맞춰 입은 고운 한복 차림의 그녀들은 단상으로 천천히 걸어가 떨리는 손으로 초에 불을 밝혔다. 신랑 신부가 잘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듯. 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박수를 보냈다. 신랑이 대학생 때 만난 여자 친구와 사귐이 결혼까지 이어졌다니 부러울 뿐이었다.
앳된 신랑이 웃음을 가득 담고 성큼성큼 입장했다. 뒤이어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사뿐히 걸어 들어간다. 화려한 조명 속에 웃는 신부 얼굴과 달리 아쉬움이 묻은 아버지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엔 알 수 없었던 부모의 마음이 이젠 보이니까. 증인들 앞에서 사랑의 서약을 크게 외친 후, 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꽃길을 걸어 나오는 신혼부부의 얼굴은 활짝 핀 장미꽃 같았다. 난 사람의 축복 위에 신의 은총을 빌어주면서 장가보내기까지 동창의 수고를 떠올렸다.
결혼식과 같이 인생의 특별한 날엔 꽃이 함께 한다. 며칠 지나지 않아 시들어 버릴 꽃을 왜 선물하고 장식할까. 아마도 예쁜 꽃에 사랑과 축하의 마음을 담아 꽃처럼 멋지게 피어나라는 뜻이 아닐까. 꽃이야말로 고운 자태와 그윽한 향기로 아름다움 그 자체이며, 가장 귀한 것으로 자리를 빛나게 하고픈 마음이기에.
많은 꽃 중 나에게 의미 있는 첫 번째 꽃은 카네이션이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달아 드렸던 꽃이었고 결혼 후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처음 만들어 내게 준 색종이 꽃이기도 했으니까. 지금도 장식장 구석에는 어버이날 받은 조화 카네이션 몇 송이가 자리 잡고 있다. 부모님도 카네이션이 시들 때까지 버리지 못하곤 하셨다. 카네이션은 꽃 자체보다 자녀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돌아보면 내 효도는 카네이션 한 송이 전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버이날이기에 의무로 했고 진정 꽃에 담아야 할 따뜻한 마음은 빼고 형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머리가 커갈수록 겉으론 부모님께 순종했지만 진심에서 우러난 공경은 아닐 때도 많았다. 일 년 중 하루 꽃으로 모든 것을 대신해버린 면은 없었는지, 비록 부모님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기뻐하셨지만, 그러기에 자식과 부모는 다르고 또 다르다고 했으리라.
십여 년 전 갑자기 돌아가신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장례식은 정신이 없었다. 너무나 건강하셨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셨기에 황망한 이별 앞에서 우리 형제는 흔들렸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영정사진은 훈장으로 가득한 군복을 입은 젊은 모습이었다. 미소를 지으며 한 곳을 응시하는 그 사진은 온통 국화에 둘러싸여 영안실에 놓여있었다. 짙은 국화 향이 가득했던 그 공간, 그 후로 나에게 국화는 이별의 꽃이 되었다.
국화는 사군자 중 하나요 가을 서리 속에서도 뜻을 꺾지 않는 기개를 가진 꽃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국화는 한동안 아픔의 상징이었다. 그 향기조차도. 비록 고결과 엄숙을 상징하며 헌화용으로 마지막 인생길에 함께 하는 꽃으로 사용되지만. 세월이 흐르자, 흰 국화에 파묻혀 눈을 감고 있었던 큰 아주버님의 얼굴과 가까웠던 사람들의 이름이 점차 쌓여갔기에 멀리하고만 싶었다.
새해 첫날과 부모님 기일에는 형제들과 두 분이 잠들어 계신 동작동을 찾는다. 국화 한 다발에 감사와 회한의 마음을 적은 편지와 함께. 부모님을 추모하는 꽃 또한 국화가 되고 있다. 땅과 하늘을 잇는 마음의 꽃길처럼. 사이좋게 나란히 놓여있는 두 개의 유골함 앞에 놓였던 국화가 늘어가면서 그리움도 시간의 풍화 앞에서 희석되었다.
부모님껜 내가 꽃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름답게 자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자신들의 꽃밭이 넓어지는 기쁨이었겠다. 내가 자식을 키우며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알아가며 이해하고 보니까.
현실에 안주하여 살다가 뒤늦게나마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난 어떤 꽃으로 기억될까. 내 자리를 잘 지키며 왔는지 돌아보며 남편과 자식들도 나를 빛나게 받쳐 줄 꽃받침으로 여긴 것은 아니었는지. 이젠 온가족이 함께 우리의 꽃밭을 만든다. 가을 국화가 연상되는 나이에 접어들어서야 성숙이란 단어를 떠올려 본다. 늦었지만 나를 알아가는 아픈 깨달음이다. 그런 뒤에야 좀 더 넓어진 마음의 꽃길을 걸어갈 수 있기에. 내년 봄엔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봄볕 속에서 나의 꽃을 피우고 싶다. 내 꿈을 하나씩 이루며 나만의 온화한 자태와 은은한 향기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