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쐬러 가자.” 코로나19로 집에만 칩거하던 남편이 불쑥 말했다. 나는 미세먼지가 많다는 예보에 썩 내키지는 않아도 볕이 좋아 나들이를 준비 했다. 점심에 먹을 빵과 사과를 에코백에 담고 저도 데려가 달라고 빤히 쳐다보는 눈치 빠른 강아지도 안고서. 집에서도 가깝고 산책하기에 좋은 미사리 조정경기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차 시동을 걸어본 남편은 상태가 안 좋다고 중얼거렸다. 허긴 코로나로 외출할 일이 줄어 한동안 세워 놓기만 했으니까.
미사리 조정경기장은 평일이라 한산했고 입구에서는 경비원들이 드라이브 스루로 체온을 확인 후 들여보내 주었다. 가족단위로 제법 사람들이 있었다. 텐트를 치고 아이들과 자리 잡고 즐기는 사람들, 캠핑카를 끌고 온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들, 간이 의자에 기대 느긋하게 책을 읽는 할아버지의 멋진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서로 멀찍이 차를 세우고 거리 두리를 하면서. 조정경기장의 시원한 물과 단풍이 들어가는 나무들과 푸른 가을 하늘 아래로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이 보였다. 매일 보던 집 근처의 익숙한 풍경을 뒤로하고 멀리 보이는 검단산이 그동안 쌓인 마음속 먼지들을 날려 보내는 듯했다.
둔덕에 길게 뻗은 산책로 좌우 큰 나무들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미세먼지가 있다는 예보에도 청량감이 묻어났다. 노랑과 연두색에서 붉고 누런 갈색으로 나무는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강아지도 꼬리를 흔들며 먼지 나는 마른 길을 같이 겅중거렸다. 하늘과 물의 푸름은 서로 닮아있었고 내 마음까지도 가을색으로 채워져 갔다. 차에서 간단히 커피와 빵으로 점심을 먹고 시트를 젖혀 드러누워 눈이 시리게 책도 보면서 모처럼 남편과 편한 시간을 보냈다. 계절과 내가 하나가 되어 오롯하게 보낸 기분 좋은 소풍이었다.
오후, 따스한 햇살이 엷어지니 차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정리를 해서 나오려는 데, 시동이 자꾸 꺼지는 것이 아닌가. 몇 번을 켜도 조금 가서는 멈춰버렸다. 불안했다. 결국 자동차 보험에 전화를 하고 출동한 서비스 차에 견인돼 카센터로 가게 되었다. 단골 카센터 사장님은 한 시간도 넘게 차와 씨름을 했다. 그리곤 가스 쪽 연결 부분들이 전반적으로 노후되어 고쳐도 계속 문제가 생길 것 같고 운전 중 갑자기 시동이 자꾸 꺼져 위험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애마(愛馬)는 19년 된 낡은 SUV 차로 몇 년 전부터 잔고장이 생겨 수리비가 적잖이 들었다. 아들은 차를 바꾸라고 했었지만 새 차를 사자니 좀 부담스러워 미루고 있었다. 일단 수리를 맡겨놓고 집으로 왔다. 기분 좋은 하루가 이렇게 끝나다니 속상했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다행인가. 남편과 같이 있던 한가한 때에 이런 일이 생겨서. 그리고 아무 사고도 없었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다음날, 폐차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전화에 다시 카센터를 찾았다. 눈에 익은 우리 차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갑자기 맞이하게 된 이별의 소식. 그동안 이십삼만 킬로미터를 달려주었고 별 사고 없이 우리와 함께 했었는데. 작은 아들이 5학년, 딸이 중학생 때부터 지금 그들이 30대가 될 때까지 긴 시간 우리 가정의 역사를 함께 한 차였다. 연희동과 마포, 용인까지 남편의 출퇴근길, 딸이 대학생이 되어 인천에 하숙할 때는 보따리 짐을 싣고 오갔다. 입대한 아들 면회 갈 땐 강원도 양구 산길을 덜컹거리며 가기도 했던 우리의 동선을 샅샅이 알고 있는 차였다. 특히 십여 년 전, 부모님이 입원해 임종을 했던 병원에 다니며 흘린 나의 진한 눈물도 기억할 차였다. 미처 헤어질 준비가 안 되었는데 카센터 사장님께 차 등록증을 건네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결혼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던 둔촌아파트를 뒤로하고 이사 나올 때처럼. 차 옆에서 마지막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사진에는 고 3739 차번호가 선명했다. 카센터의 주인 할머니도 우리 차를 보고 오래 왔었다며 내 아쉬움을 이해해주었다.
나에게도 IMF 이후 갑자기 시작된 20여 년의 직장생활이 한순간에 멈추는 순간이 왔었다. 습관적으로 달려왔던 일상들이 정지되는. 한 달여의 병원생활 끝에 많이 회복이 되었지만 복귀하기에는 건강이 허락되지 않았다. 일을 놓으려니 미련과 우울로 마음이 복잡했다. 마치 인생이 폐차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일 년 여의 시간이 흐르니,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고 또 다른 길을 찾아가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보니 내가 남편이나 자식을 능력으로만 판단했던 것이 보였다. 사랑이란 기름칠도 않고 가끔 인정이란 브레이크도 밟아주지 않고 오직 달리라고 엑셀만 밟아대는 아내요 엄마였나 싶었다. 이제 그동안 부족했던 아내와 엄마의 자리를 잘 지키며 주행하려 한다. 사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는 어려운 말을 새겨보면서.
지금껏 인생의 많은 짐을 실어 나른다고 애쓰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돌아보니 그리 잘 달려온 것 같지 않다. 돌고 돌아서 헛수고도 많이 하고 안 가도 될 곳을 헤매다 온 나의 인생길들이 보인다. 천천히 즐기며 가도 될 길들을 너무 바쁘게 목표만을 향해 달려왔던 조급함. 조금만 겸허하고 좀 더 지혜로웠더라면 하는 후회도 많다. 왜 나는 열정이 없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내 뜻대로 안 되었던 그 실패와 아픔의 드라이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겸손함이 생기지 않았을까.
벌써 나도 연식이 수십 년 되어가니 기름칠 잘하고 닦고 조여서 조금 더 쓸 수 있도록 손질을 잘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돌아가신 엄마의 노년 기도는 저녁 잘 먹고 자다가 가는 것이라 하셨다.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게. 그 마음에 동감하며 나도 이제는 진정한 인생의 폐차를 잘 준비하고 싶다.
집에 와 핸드폰 속 사진을 다시 본다. 나와 애마 ‘고 3739’의 여정은 가을 소풍을 끝으로 여기까지였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