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선물

by 가을장미


텅 빈 운동장에 내리쬐는 햇살이 따가웠다. 정오를 향해가는 시간, 그림자는 짧았다. 초등학교 본관 건물은 마치 병아리를 품은 어미닭이 엎드려 있는 것처럼 든든하고 정겹게 보였다. 붉은 벽돌로 마감된 체육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니 투표를 마친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한산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실시되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였다. 유월의 첫날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어 하루를 선물 받은 듯 흐뭇했다.


몇 주 전부터 대로변에는 각 정당의 현수막들이 내걸렸다. 빨강과 파랑으로 양분된 색들이 선명했다. 후보자들의 사진과 이름, 공약이 적혀있는 그것들로 인해 거리는 어지러웠고 홍보 티셔츠를 입은 선거원들이 삼삼오오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한 표를 부탁했다. 명함을 건네주기도 하면서. 간혹 마주치는 유세차량에서 크게 틀어놓은 선거송과 마이크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많은 공약만 난무했기에.


재래시장에 위치한 단골 정육점. 주말이라 좁은 시장통은 오가는 사람들로 유난히 붐볐다. 지나가기에도 비좁은 길에서 선거원 두 명이 시장 보러 온 지역주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지지를 부탁하고 있었다. 다소 과한 친철이 묻어났다. 어색했다. 정육점에서 같이 줄을 서서 기다리던 한 아줌마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저 사람들, 선거가 끝나도 저렇게 아는 척할까?” 그 말에 우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집을 나서기 전 선거공보 봉투 속에 투표안내문을 찾아 투표장소와 등재번호를 재차 확인했었다. 신분증도. 장소는 늘 집 앞, 초등학교 체육관이었다. 내가 속한 2 투표소 입구에는 책상에 앉은 두 사람이 반기며 선거인 명부의 등재번호를 대조해주었다. 이름을 찾아 사인을 한 후 투표용지를 받았다. 널찍한 투표장소에 들어서니 각 정당의 참관인들로 보이는 예닐곱 명이 한쪽에 나란히 앉아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표소는 창문 쪽으로 몇 개가 비치되었고 중앙에 철제 투표함이 귀빈처럼 정중하게 모셔져 있었다.


흰색 가림천을 열고 기표소에 들어갔다. 긴장되었다. 투표용지에 준비된 도장을 조심스럽게 찍은 후 고이 접어서 투표함으로 걸어가 용지를 넣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나라의 안정을 바라는 내 작은 마음도 담았다. 그리고 한 번 더 투표용지를 받아야 했다. 이번 선거는 무려 일곱 명이나 뽑아야 했으니까. 앞으로 4년간 나라의 살림을 할 시장과 교육감 등, 정직하고 능력 있는 일꾼들이 뽑히기를 바라며 나의 책임이자 권리인 주권을 행사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운동장 위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유난히 높고 파랬다. 눈이 부셨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교 정문을 나섰다. 시장 근처에 위치했기에 투표를 끝내고 가는 사람들과 장 보러 가는 인파로 인도가 붐볐다. 순간 내 앞에 천천히 걸어가는 중년부부에게 눈길이 갔다. 건장한 체격에 잠바를 입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저씨의 몸에서 남다른 밝은 기운이 느껴졌기에. 검고 혈색 좋은 얼굴의 그는 어린아이를 어르는 경쾌한 목소리와 몸짓에서 주체하기 힘든 순수한 기쁨을 뿜어댔다. 마치 보물을 안은 듯.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행복에 겨운 모습 그 자체였다. 옆에서 지켜보는 화장기 없는 아줌마의 눈빛도 빛이 났다.


“얼마나 귀여울까”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그 말을 들은 여자는 나를 쳐다보며 “손자에게 예쁨을 받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녀에게서는 남편이 그래 봐야 어림없다는 듯한 자신감이 보였고 평소 손주를 돌보며 차곡차곡 쌓아 놓은 두툼한 시간의 퇴적층이 느껴졌다. 그때 그 젊은 할아버지에게 안겨있던 아이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두 돌 남짓 되었을까. 모자를 쓴 뽀얀 피부의 아이의 손에는 앙징맞은 상어 장난감이 들려 있었다. “뚜루 뚜루” 나도 모르게 아기 상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꼬마도 “아기 상어 뚜르 뚜르” 서로 통했다. 할머니의 표정에선 영리한 손주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자랑이 묻어났다.



멀어져 가는 그들 부부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듯한 행복한 얼굴을 보여준 그들을.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금쪽같은 내 새끼의 자식, 손주 사랑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리라. 손주란 세상에 태어나면서 ‘할머니‘란 이름을 선사하지만 그 불편한 이름표를 붙이는 서운함도 잠시, 내가 아는 할머니들의 핸드폰에는 거의 손주 사진으로 도배가 되었다. 그들을 돌보는 고단함도 단 한 번의 재롱에 다 녹아버리고. 손주란 자식과는 또 다른 인생의 기적 같은 선물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 손주가 없는 나는 그들이 무척 부러웠다. 미래에 내게 주어질 그 선물을 기다리면서 아름다운 할머니로 준비할 테다. 하지만 미래의 그 혈육이란 선물에만 연연하며 현재를 보내고 싶지는 않다. 지금껏 내 삶의 나이테 속에 숨어있던 여러 상처들과 화해하고 그것들 덕분에 성장했다는 것도 인정하며 좀 더 많은 것들을 품을 수 있는 나이 듦의 나이테를 만들어가고 싶다. 내게 주어진 환경과 만남의 인연을 축복으로 품을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인생의 고귀한 선물이 아닐까.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 그때는 잘 몰랐던 그 사랑을 이제 나도 전해야 하리라. 내적인 성숙을 기하며 오늘 주어진 유월이라는 현재를 찬란한 선물로 받아들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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