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넘어서 2.

by 가을장미

드디어 우리 집 현관문이 열렸다. 얼마 만에 손님을 초대했던가. 다행스럽게도 코로나 시기에 온라인을 통해서나마 만남의 줄을 놓지 않고 가늘게라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몇 년 동안 어쩔 수 없이 코로나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불안과 공포로 쌓았던 두터운 벽도 이제 서서히 끝이 보이는 듯하다. 물론 아직은 마스크를 벗기엔 조심스럽지만.


오랜만에 만남이 시작되니 설렜다. 그 기쁨도 잠시 우리 집 차례가 되니 마음이 무거웠다. 몇 년 동안 쌓인 집안 먼지를 어떻게 털어내야 하나 걱정이 앞섰기에. 집에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니 청소는 뒷전이 되고 말았고 마스크 덕분에 화장도 외출도 거의 하지 않으니 지켜왔던 습관은 쉽게 무너졌다. 편하게만 살았고 치우쳤다. 집에는 사람이 드나들어야 한다는 것은 진리였다.


며칠 동안 힘든 대청소를 해야만 했다. 지저분한 싱크대 구석구석과 화장실의 물때가 낀 타일을 닦으면서 팔이 아프고 피곤했지만 깨끗해지는 집을 보니 속이 후련했다. 주말은 빨리도 다가왔다. 하지만 집 청소에 힘을 다 빼버린 나는 맛난 집밥을 기대했을 지인들을 실망시켰다. 메뉴판을 들이밀며 배달의 민족답게 중국음식으로 간단히 해결했으니까. 식탐 많은 남자들의 아쉬워하는 눈빛이 느껴졌지만 코로나가 남긴 후유증인 이 게으름의 벽을 넘어서려면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단 변명을 하면서.


코로나의 벽을 지나면서 읽었던 ‘필경사 바틀비’라는 단편소설이 생각난다. 월스트리트(Wall Street), 벽의 거리란 단어와 함께. 문학동네에서 발행한 이 책은 허먼 멜빌이란 미국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하비에르 사발라의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가슴이 너무나 먹먹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월가의 한 법률사무소이고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필사를 하고 글자 수대로 돈을 받는 일을 하는 필경사가 주인공이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법률사무소에 취직한 창백한 얼굴의 바틀비는 말없이, 기계적으로, 정말 성실하게 일을 한다. 변호사는 그를 채용한 것이 잘한 선택이라 여길 즈음, 필사한 서류를 검증하자는 변호사의 당연한 말에 “안 하는 편을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면서 그는 어떤 일도 거부하고 만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결국 우여곡절 끝에 그는 구치소에 갇히게 되고 음식을 거부한 채 구치소 양지바른 벽 앞에서 죽은 뒤 발견된다. 소문에 의하면 바틀비는 원래 위싱턴의 사서(死書) 우편물 하급직원이었는데 행정기관의 변경으로 해고를 당했단다. 사서란 죽은 자들에게 배달된 편지들로, 생명의 심부름을 하는 그 편지들은 매년 대량으로 소각되었다. 바틀비는 끊임없이 사서들을 분류해 불태우는 일을 했고, 생명의 심부름을 하던 그 편지들은 급히 죽음으로 치닫는다. 절망을 키우는 일을 했던 그.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 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당시 미국 금융경제의 중심에 있던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자본주의의 콘크리트 벽 속에 갇혀 버린 노동자를 대변하는 소설이다. 너그러운 변호사를 대변하는 화자는 그저 바틀비가 유용했기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감싸다가 결국은 소용 가치가 없으니 외면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지금도 유용성이란 가치는 경제적인 면에서 사람의 존재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바틀비의 소극적 저항을 통해 자본주의와 현대의 문명사회에 잠식되어 자신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소설이라는 평이다. 나는 왜 바틀비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걸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소시민이기에 공감하는 면이 많아서 이리라.


오랜만에 만난 지인 부부들과 여러 문제를 나눴다. 좋은 일뿐 아니라 어려운 일까지도 허심탄회하게. 어릴 적 부모의 울타리 덕분에 자랐지만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상처부터 직장생활에서 부딪히는 인간관계며 부부간의 불통으로로 인한 가정 문제까지도.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혼자서는 잘 못 보던 내 모습을 보게 된다. 편견과 나만의 가치관의 벽돌로 견고한 성을 쌓아왔다는 것을. 지금껏 난 남편이란 바람막이를 원했고 만족하지 못해 무시도 했다, 당연한 듯이. 남녀의 역할이 많이 변했건만 아직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는 정말 어렵다. 내가 든든한 벽이 되어 감싸줄 생각은 왜 못했을까. 결혼서약처럼.


하지만 지난날의 무심하고 우둔했던 내 그림자가 언젠가는 비슷한 아픔을 겪었던 이들에게 따가운 햇살을 피해 잠시 머물 수 있는 그늘막이 되는 그날도 꿈꾸어 본다.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여러 벽들도 서로 넘어갈 수 있도록 귀를 기울이고 그 아픔을 보듬어가면서. 긴 나눔의 시간을 마치고 지인들을 배웅했다. 각자의 벽을 넘어가는 그날을 고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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