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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un 17. 2021

어느새 14년째 동거중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함께 할 줄은 몰랐다.


현재 거주지로 이사 온 뒤 21년간 변함없는 자리에 있는 내 방에는 연식이 정말 오래된 친구들이 나와 동거 중이다. 


방문을 열자마자 벽 쪽으로 앤틱 스타일의 이태리 거울이 하나 걸려 있다. 연식이 제법 오래됐다. 정확히 언제부터 우리집에 왔는지 확실치 않으나, 울산에서 28평짜리 아파트에 살 때부터 화장실과 아버지 서재 사이 벽에 붙어있었던 건 기억난다. 그때는 거울로 내가 어떻게 생겼나 확인할 수 없을 만큼 키도 작았으나, 지금은 내 몸집이 거울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가 됐다. 세월의 흔적을 다시 한번 말해주고 있었다.


거울 맞은편에는 밤마다 휴식을 주는 침대가 자리잡고 있다. 침대의 역사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으로 왔다. 침대 덕분에 온전하고 독립적인 '내 방'이 탄생할 수 있었다. 내 침대가 생긴 것에 기쁨을 표하면서 동시에 "이 침대 길이보다 키가 더 커야지"라고 호기롭게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내 바람을 배신한 키는 딱 침대사이즈로 담을 만큼만 자랐다. 혼자서 침대에게 패배한 분함을 느끼기도 했다. 다음 생애에는 반드시 이겨야지.


침대 머리 방향이 가리키는 곳, 베란다로 통하는 문 옆에는 큼지막한 대형 책꽂이가 위치하고 있다. 이 친구 또한 나보다 확실한 연장자. 부모님 신혼시절 즈음 구매한 낡은 서적들부터 내가 자라온 순간들을 함축적으로 기록한 졸업앨범들과 단체사진들, 학창시절 열렬히 빠져있던 축구 잡지들, 어느새 제기능을 상실한 형광 스티커 흔적까지. 


한쪽 구석에는 '내 거' 꼬리표가 붙은 옅은 갈색 대형 원목책상이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집 구성원이었는데, 최초에는 '아버지 서재' 그룹 핵심멤버였다. 아마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이었나, 공부할 책상이 필요했고 아버지로부터 자의반 타의반으로 물려받았다. 약 40년 전에는 튼튼한 디자인이 트렌드였는지, 오랜 세월을 굳건히 버텨내며 중심을 잡고 있다. 서랍 일부 모서리 등에 난 스크래치만이 책상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뿐. 지금도 부피가 제법 큰 책꽂이 3단과 구형 스탠드, 맥북, 기타 잡동사니들을 거뜬하게 받치고 있다.


아차, 책상 위에는 독서대도 있다. 맥북에 가려져 종종 존재감을 까먹는다. 함께한 시간이 10년은 훌쩍 넘었는데도 말이다. 약 13년 전 자취할 때, 학교 도서관 매점에서 단 돈 만원에 업어왔다. 검은색 마스킹 테이프 재질로 감은 책장잡이는 약간 해지긴 했으나 아직까진 책 페이지들을 고정시킬 힘은 남아있나보다. 자세 교정을 위한 맥북 받침용으로 다른 용도로 대부분 활용되고 있지만 3단 각도조절은 노 프라블럼.


독서대 좌측 상단에는 "시험은 '근성'이다"고 짧고 굵은 한 마디가 적혀있다. 호기롭고 패기 넘치던 고시생 입문 시절, 고시를 임하는 각오를 남기고픈 마음에 즉석으로 생각해내 직접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남겼던 것. 글귀를 보며 약 3년간 보냈던 신림동 녹두골이 떠올랐다. 


분명 녹두골도 화창하고 맑았던 날도 많았을 텐데 기억에는 다른 이미지로 남아 있다.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아 막막한 고시생 심정을 반영했는지 녹두골 하늘은 잿빛이라고 인지하고 있다. 그만큼 그 시절이 힘겨웠다는 뜻일 테지. 


고시생 1년 주기는 이랬다. 3월부터 8월까지 마음은 한결 가볍고 여유로 가득했다. 다음해 2월에 열리는 1차 시험까지 기간이 많이 남아서였고, 불안함보다 시험을 향한 설렘이 더 앞섰다. 이 기간에는 천천히 교재들과 필기노트 등을 들여다보며 최대한 독서실서 오랫동안 엉덩이 붙여있기 연습에 매진했다. 그러다 종종 동기나 선배들이 "술 한 잔 하자", "위닝하러 가자" 연락이 오면 거절을 마다하지 않고 독서실을 탈출해 일탈을 즐겼다. 이렇게 만끽할 수 있었던 것도 시간이 많아서였다. 특히 녹두골에서 위닝과 술을 할 때는 언제나 고시전우팸들과 함께였다. 그때는 누구보다도 절친이었는데, 대부분 연락이 끊겨 아쉬움만 남을 뿐. 


그러다 해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9월부터 연말까지는 집중모드로 전환해야 했다.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초조함과 압박감에 부담을 느끼지 않기 위한 차원에서 남들보다 더 많이 회독하며 암기했다. 그렇게 노력하다가도 모의고사 점수가 내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 기분이 울적하고 불안했다. 이러다 실전에서도 똑같이 재현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그러다 나 자신을 다잡으며 남들보다 더 오래 독서실에서 존버하겠다며 지구전을 펼쳤다. 독서실 총무와 같이 퇴근한 날도 꽤 많았다.


새해가 되면, 그 오랜 연습과 정신력도 균열이 간다.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였다. 난 아직 부족한데 내 마음을 몰라주고 분침과 시침만 야속하게 빨리 돌아가는 듯했다. 차근차근 준비한 대로 하면 좋은데, 걱정과의 팽팽한 힘겨루기에서 균형을 잃고 점차 밀렸다. 그래서 알았던 내용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까먹었고, 나 자신을 자책했다.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다"라거나, "잠시만 좀 멈췄으면"하는 속마음을 품으며 비겁하게 도망치고 싶었다.


질풍노도의 시간 속에서 2월 마지막 주 1차 시험일이 다가왔다. 감독관은 모든 응시자들에게 똑같은 시험지를 나눠줬을 뿐인데, 뭔가 나만 잘못된 걸 주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자인데 이건 무슨 말인가. 분명 한국어인데 법률용어가 이렇게 난해했던가. 왜 공부할 때는 깨닫지 못했나. 5지선다도 벅찬데 8지선다까지 내면서 혼란을 유발할 필요는 있나. 지문과 고르는 답 문장 길이는 왜 이리 길며, 왜 복수정답을 고르게끔 헷갈리게 만들지? 그렇게 7~8시간을 사투하고 시험장을 나오면, 영혼이 털린 빈 껍데기만 남았다. 주변에서 격려하고 물어보는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내 입에 들어오는 비싼 소고기도 무슨 맛인지 느끼질 못한 채. 


그리고 하루 지난 다음날, 회의감이 몰려왔다. 왜 그걸 골랐나, 이 문장은 왜 보이지 않는가 답안지 자체 채점하면서 위축되고 낙담했다. 아직 성적발표는 두어 달 남았는데 이미 삶에 미련 없는 사람처럼 의지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성적발표하는 4월까지 시간은 금방 지나가더라. 커트라인을 통과하지 못한 나는 앞서 언급한 루트로 반복해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 굴레에 갇혔다.


돌이켜보면, 이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정신적으로 힘든 때였고 그래서 스스로 "흑역사였다"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고시패스를 하지 못하고 낙오한 실패자였고, 그 결과 3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이로 인해 다른 진로를 찾아 걸을 만한 길을 걷기까지 제법 오래 걸렸다. 그러나 어려웠던 고시생 시절이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오래 버틸 수 있는 근성이 생겼고, 이와 비슷한 굴곡진 상황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코어가 생겼다. 마냥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 이 독서대는 맥북 받침대용이 됐다. 가끔 독서할 때도 이용한다. 그때 새겼던 글귀를 보며, 가끔 그 시절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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