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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un 23. 2021

취미가 있었는데요, 없어졌어요.

나 자신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취미의 역사


2011년 여름이 다가오기 시작할 무렵, 관악구 신림 2동에 위치한 자취방. 10인치 노트북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아르바이트 자리를 열심히 물색하고 있었다. 


휴학생이 알바를 열심히 찾아보는 이유는 이러하다. 2, 3년간 고시와의 장기전 끝에 마침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고 이제 그만 퇴각해야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플랜 A였던 고시 합격은 '실패'로 끝났고, 플랜 B로 무얼 해야 할까 혼자 머리 싸매고 고민하던 중 고시 준비하느라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부터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중 하나가 해외 배낭여행이었고, 이를 위해선 시급이 센 알바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서울대입구역 부근에 위치한 한 회사 채용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휴대폰 앱 개발 회사로 개발한 앱을 각종 휴대폰 기기로 테스트해 모니터링하는 아르바이트였다. 오후 2시 출근해 8시간 근무, 주 5일 40시간에 월급 120만 원. 야근할 경우 추가 수당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최상의 조건이었기에 놓칠 수 없었다. 망설이지 않고 곧장 해당 회사 전용 이력서 빈칸을 채워나갔다. 


이력서를 쓰던 중 유독 한 질문에 멍해졌다. 바로 취미. 예상치 못한 장벽이 등장했다. 잠깐만, 내 취미가 뭐였더라? 머리를 쥐어짜내도 마땅히 적을 만한 취미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튀지 않는 선에서 아무렇게나 기입했다. 다행히 면접 담당자가 내 이력서에 적힌 취미란을 보고 질문하진 않았다. 어차피 일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까.


실제 면접에서 지원자 취미를 물어보는 면접관은 그리 많지 않다. 지원자가 어떤 취미생활을 하는지 관심 없을 것이다. 이 지원자가 회사에 얼마큼 큰 도움이 될 것인지, 채용할 만한 자원인지 판단하는데 중요할 뿐이다. 가끔, 아주 가아끔 질문할 게 없어 형식상 물어보거나 정말 특이한 취미가 적혀있으니 궁금해서 물어보는 수준이다. 요즘 이력서에 취미를 적으라는 회사는 거의 없고, 취미란은 점점 사라졌다. 


면접 자리 외에도 사교모임, 소개팅, 혹은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하다가도 종종 취미가 튀어나온다.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르니까 하나하나 알아가는 차원에서 가볍게 던지는 질문인데도, 막상 대답하려니 까다롭고 막히는 구간이다. 나 또한 "혹시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이게 내 취미예요"라고 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답이 없어서다. 생계나 이익 등이 얽혀있거나 어떠한 목표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사전 정의대로 '좋아서,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언제부턴가 없어졌다. 분명히 취미라고 불렀던 것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그래서 난감한 질문이 됐다.


초등학생 때까지 취미를 물어보면 내 대답은 "축구"였다. 유년기부터 축구와 친숙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보니 자연스레 축구를 보는 것, 그리고 하는 것을 즐겼고 재미있었다. 중학교 진학한 뒤부터였을까.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함께 공 차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잘하는 애들 틈에서 위축될까 지레 겁을 먹은 게 문제였다. 잘 차는 편이 아니다 보니 욕먹을까 두려워 발을 빼버렸다. 대학교 때, 군 생활할 때도 종종 축구를 하며 땀 흘리는 짜릿함을 느끼곤 했으나 남들 눈치를 의식해서인지 잘 나서질 못했다. 꿋꿋하게 꾸준히 했다면 취미다운 취미가 될 수 있었는데, 끈기가 부족했다. 이렇게 명단 제외.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배운 게 계기가 돼 한동안 탁구를 취미 삼았다. 그러나 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탁구공과 탁구채, 그리고 테이블, 이를 수용하는 실내공간이 두루 갖춰야 하거늘... 이 모든 요건을 충족시키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부터 점차 사이가 멀어졌다. 군대에서 상관이나 부하, 후임 등과 가끔 쳤던 게 마지막 탁구채를 잡았던 기억이다.  


아, 배드민턴도 있었지! 초등학교 때부터 가끔 하곤 했다만, 그때는 취미라고 말하기엔 2% 부족했다. 배드민턴을 대학교 교양수업으로 듣고 제대로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취미생활로 이어가보려고 애썼다. 군 생활 당시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었다. 같은 부대 선임이 "퇴근 후에 뭐하냐"고 물었다. "특별히 하는 게 없다"고 답하자 인근 마을에 배드민턴 치기에 좋은 체육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자신과 파트너로 다니자고 제안했다. 한 달간 같이 셔틀콕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으나, 결말은 좋지 않았다. 운명이 얄궂게도 그 선임과 사이가 틀어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불편한 관계가 됐다. 또 차량 없는 뚜벅이에겐 해당 체육시설까지 왕복하기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배드민턴도 세이 굿바이.


사람들이 가장 만만하게 보는 "음악 혹은 영화 감상, 넷플릭스 보기"도 취미'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사회 구성원이 되는 과정에서 이런 미디어 예술과 연관된 일을 주업으로 삼게 됐고, 재미를 즐기는 걸 넘어서 글을 써서 비평하고 이는 기록으로 남아 내 생계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덕업일치와 같은 맥락인데, 일과 엮이게 되면서 더 이상 편안하게 즐길 수 없게 됐다. 요즘에도 작품을 감상하면 자꾸만 날카롭게 파고들어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려고만 한다. 오 제발, 그러지마.


최근 열을 올리며 열심히 하고 있는 걷기도, 안타깝지만 취미 카테고리에서 금방 탈퇴했다. 즐기기보다는 내 건강을 챙긴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이 있고, 나 자신을 단련시키는 행위들 중 하나다. 아무리 데드포인트가 넘어서서 다가오는 엔도르핀에 상쾌함을 만끽한다 해도, 어디까지 목적성이 확고한 행동이고 취미가 될 수 없다. 헬스장 가서 운동하는 것도 같다.


그렇게 취미라 불렸던 것들은 나를 떠나갔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고 난 뒤에는 강제로라도 취미를 하나 가져야겠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내가 즐거워야 하는데, 취미생활을 가지려는 행위에서도 인맥 네트워크를 쌓으려는 등 사교성이 우선되는 모양새다. 그래서 취미를 붙이려는 행위, 욕구가 주객전도돼 짜게 식어갔다. 순수하게 재미로 할 수 있는 취미가, 내가 가질 수 있는 걸까. 영화 '인터스텔라' 포스터 문구처럼 늘 그랬듯이 답을 찾으려고 하기엔 힘이 빠진다. 그래서 이젠,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취미를 물으면 이렇게 답할까봐.


제 취미는 있었는데요, 없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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