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Hyun Mar 02. 2023

헌 판을 다시 새로 짜도 헌 판인데?

영화 '대외비' 리뷰

이리저리 굴려가면서 새 판을 짜보려고 노력한 듯한 흔적들은 드러난다. 그런데 이미 헌 판을 다시 짜더라도 헌 판인 것을, 새 판이 될까. 이원태 감독의 신작 '대외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외비'는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열렸던 1992년 부산 해운대를 주요 무대로 삼는다. 주인공이자 만년 국회의원 후보 전해웅(조진웅)은 자신이 살고 있는 해운대에서 출마하기 위해 도전한다. "이 동네 공천=당선"이라며 사실상 공천됐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권력 실세 권순태(이성민)에게 뒤통수를 맞고 강제 교체당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전해웅은 권순태의 뒤통수를 되갚기 위해 단단히 벼르던 중, 선거판을 크게 뒤흔들 대외비 문서를 입수한 뒤 깡패 김필도(김무열)의 후원을 받으며 무소속으로 선거판에 뛰어들게 된다. 권순태가 정치 고단수인 만큼, 전해웅의 공세에 호락호락당하지는 않는다.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하는 두 사람의 공방전이 '대외비'의 주된 내용이다.


선 대 악이 아닌 악 대 악의 대결로 흘러가는 '대외비'는 사실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봐왔을 법한 소재와 구성들로 넘쳐난다. 먼저 악 대 악 구도는 이원태 감독의 전작인 '악인전'에서 느낄 수 있었고, 정치권과 부동산이 엮어 있는 구성은 '강남 1970'을 쉽게 떠올리게 만든다. 여기에 '범죄와의 전쟁', '내부자들', '더 킹', '공작', '남산의 부장들' 등에서 접한 한국 누아르, 범죄물 장르의 스타일도 묻어나 딱히 새롭지도 않다.



항상 새로운 것이어야만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많이 접한 소재, 구성, 서사 등을 새롭게 잘 짜서 맞춘다면 충분히 차별성이나 매력 등이 드러나기 마련. '대외비'도 극 중 대사로 자주 언급 되는 '새 판 짜기'처럼 기시감 느껴지는 요소들을 다시 짜서 신선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흔적들이 느껴진다. 


'대외비'의 경우 최악인 대 차악인 간 힘겨루기 및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수 읽기, 비정한 톤 앤 매너로 세 캐릭터들의 욕망을 그려내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대외비' 속 등장인물들의 악함과 욕망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전해웅, 권순태, 그리고 김필도 세 사람이 배수진을 치면서까지 부딪치는지를 뒷받침할 서사가 약하다. 그렇다고 기득권의 부패함이나 악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도 아니기에 끝끝내 이들에게 동화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 헌 판을 이리저리 새로 짜봤지만, 결국 헌 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친다.


결국 '대외비'의 부족함을 채워야 하는 건 배우 몫이다. 조진웅과 이성민은 언제나 그래왔듯,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은 충분히 해낸다. 두 배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김무열이 이 영화에서 인상 깊다. 최근작에서 선역의 얼굴을 보여줬던 그가 오랜만에 거친 악인의 얼굴로 변신해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애들의 서칭 수준 남다르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