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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ul 09. 2023

'죄책감' 하나가 불러온 가족의 파국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리뷰

(※ 해당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전', '미드소마' 단 두 편으로 공포 영화계 한 획을 그은 아리 애스터 감독은 더 이상 호러 장르에 안주하지 않는다. 이는 괴기한 로드무비(?)인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통해서 확실히 드러났다. 이번 신작으로 그는 그동안 꽁꽁 감춰왔던 자신의 심연을 보여줬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편집증을 앓는 보(호아킨 피닉스)가 엄마 모나(패티 루폰)를 만나러 가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기억과 환상, 현실이 뒤섞인 기이한 여정을 겪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10여 년 전 공개했던 단편 영화 '보'를 다시 손본 뒤에 '보 이즈 어프레이드'로 재탄생시켰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전작인 '유전', '미드소마'처럼 그러데이션처럼 겹겹이 쌓아 올라가는 공포를 생각했다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예상 밖의 전개와 그림일 것이다. 외설적인 용어와 그림, 간판이 등장하는 블랙코미디로 나오다가 미국 시트콤을 연상케 하는 집이 나타나고, 이를 지나면 연극 무대가 펼쳐진다. 뒤이어 사이코 스릴러처럼 소름 돋고 끝에는 공개재판현장까지 초현실적인 그림의 연속이다. 이는 보의 복잡한 심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고, 중간중간 매우 난해한 설정 및 요소들이 튀어나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이 영화의 핵심은 엄마 모를 향한 아들 보의 양가감정이다. 초반부 보의 정신과 상담 과정 및 모나와의 전화 통화에서 느낄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집착적으로 사랑하는 엄마 모나가 두렵고 도망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여기에 '성인'의 몸이지만 정신은 아직 '소년'인 보를 억압하고 통제했던 모나의 모습이 곳곳에 드러나면서 자연스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서 엄마 모나를 필요로 느끼면서 찾는 상황도 나타낸다.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에 빠져 있는 보에게 '죄책감' 한 방울이 떨어지면서 상황은 극대화된다. 엄마가 끔찍한 사고로 죽기 전 집 열쇠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찾아뵙지 못한 죄책감, 장례식장에 빨리 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죄책감이 보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옥죈다. 이는 끊임없이 불안감을 느끼는 보의 표정과 심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를 발견한다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전체 그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엄마의 자궁에서 벗어나 처음 세상에 태어난 보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고통의 원인을 홀로 극복하는 걸 두려워하고 자신의 밖에 있는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회피한다. '엄마'에게서 두려움이 시작했을지 몰라도 그는 스스로 극복하기보단 엄마 그늘에 있으면서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원인을 엄마에게로 돌렸다. 연극무대에서 자신이 가보지 못했던 삶을 상상하면서도 당황했던 것도 어찌 보면 이 때문이다.


그런 보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여성 일레인(파커 포시)과 재회한 뒤 성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며 통제에서 벗어나는가 싶었으나, 죽음에 이르게 한 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은 결국 심리적으론 미성숙한 채 육체적으로만 남성성만 획득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보는 엄마를 찾게 되고 결국 엄마의 자궁으로 되돌아가면서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트라우마와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고 순응하게 되는 보의 여정은 이미 초반부터 암시하고 있었다. 보 모자의 성씨인 '와서만(Wassermann)'은 독일어로 '물의 남자', 즉 물에서 태어나 곳곳에 등장하는 물, 그리고 물처럼 흘러가 물로 돌아간다는 상징성이다. 그리고 초반부 한 엄마의 야단 때문에 끌려가는 남자아이가 두고 간 보트가 전복되는 현상 또한 그렇다. 그레이스(에이미 라이언)가 알려준 채널 78번이 보여준 미래도 같은 맥락. 


이렇게 디테일한 부분들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진입장벽이 높은 작품이다. 장면에 대해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고 주인공의 행동과 배경, 연출 등으로 보는 이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하도록 유도하나 "어느 것이 맞다"라고 끝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불친절하고 이 부분 때문에 영화를 엄청난 호불호를 유발한다.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설정들이 널브러져 있음에도 '보 이즈 어프레이드'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건 보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의 힘이다. 그의 열연이 있기에 영화 속 기괴한 연출들이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어떻게든 완주하게 만든다. 호아킨 피닉스 캐스팅은 신의 한 수 그 자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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