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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Aug 10. 2023

재난보다 더 무서운 현실 디스토피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한반도를 집어삼킬 재난이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까. 정말 이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보는 내내 먹먹한 감정을 들게 한다.


올여름 성수기에 마지막으로 참전한 한국 텐트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웹툰 '유쾌한 왕따'를 원작으로 한 '콘크리트 유니버스' 중 첫 번째 주자이기도 하다.


엄청난 재난에서 운 좋게 생존한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이는 잠시였다.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눠야 할 상황에 놓였고, 하필이면 평소 자신들을 업신여기며 교류를 차단해 왔던 길 건너 드림팰리스 생존자들이 몰려든 것. '드림팰리스 사람들이 생존했다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라고 의견을 모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영탁(이병헌)을 대표로 내세운 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고 외치며 생존자들을 바퀴벌레 쫓아내듯 아파트 밖으로 쫓아내며 적대적 감정을 드러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한국인에게 가장 민감한 내용인 주거, 많은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보편적인 주거 형태를 뛰어넘어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화두들에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예전에 뉴스에서 본 것 같은 내용들이 쏟아지기에 관객들은 자연스레 몰입하게 된다.



그러면서 재난 영화라는 포장지 속에 인간성 상실 및 혐오에 대한 질문을 넣어 관객들에게 던진다. 아파트를 사수하기 위해 외부인들을 몰아내려는 입주민들에게선 극한에 몰린 인간의 이기심을 끄집어내는가 하면, 대표를 뽑고 시스템화하는 과정에선 권력의 명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양한 화두를 심어놓고 펼쳐 보이면서 '인간다움은 무엇인가'란 대한 질문을 던진다. CG로 구현된 지옥 같은 세상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안겨줄 정도랄까.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나 이병헌이다. 새 작품에 나올 때마다 자신의 얼굴을 갈아 끼우던 그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도 새 얼굴을 갈아 끼워 넣으며 '연기 장인' 면모를 과시한다. 평범하고 숫기 없던 남자가 '주민대표' 직함을 받은 뒤 광기 어린 괴물로 변하는 영탁의 얼굴을 소름 끼치게 묘사한다. 영탁의 변화에 따라 영화는 블랙코미디부터 스릴러, 서스펜스, 공포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이게 다 이병헌의 존재감 덕분이다.


이병헌과 함께 극의 중심축을 담당한 박서준, 박보영의 부부 연기도 눈길을 끈다. 비록 기존에 보여줬던 이미지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나,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신혼부부 민성, 명화 역을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몰입도를 더한다. 여기에 부녀회장 역의 김선영은 '설국열차'의 메이슨(틸타 스윈튼)을 연상케 하는 아우라와 연기력으로 미친 존재감을 뽐낸다. 


그 외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출연한 배우들 모두가 너무나도 현실적이라 거부감이 들 정도다. 현실성 넘치는 스토리와 디테일을 보는 맛에 러닝타임 129분이 훌쩍 지나가는 줄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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