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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Sep 08. 2023

잠 때문에 악몽으로 변한 부부관계

영화 '잠' 리뷰

(※ 해당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라고 극찬한 봉준호 감독의 말마따라, 영화 '잠'은 유니크하다. 일상에서 흔히 접할 법한 이야기이면서도 빈틈없는 플롯을 소름끼치게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간만에 괜찮은 국내 스릴러 영화의 탄생이다.


'잠'은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어느날부터 현수가 수면 장애를 겪기 시작했고, 이로인해 단란한 신혼생활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한국에 정식 개봉하기 앞서 2023년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깜짝 초청돼 이목을 끌었다.


영화는 총 3장으로 나눴다. 현수의 몽유병으로 인해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1장, 아이의 탄생과 맞물려 극단으로 치닫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 2장, 걷잡을 수 없는 광기의 3장으로 나눠 수진과 현수의 부부관계를 그린다.


신예 감독인 유재선은 특별한 기교를 부리거나 심오하게 접근하지 않으면서도 '잠'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표현한다. 영화 중간에 드러나는 재치와 위트, 디테일한 관찰력이 어우러져 소름끼치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기묘함을 안겨주며 스크린 안으로 끌어당긴다.



몽유병 소재를 중심으로 층간소음, 출산, 빙의 등 쉽게 예상할 수 없었던 요소들을 결합해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영화가 흘러갈수록 현수가 겪고 있는 몽유병에 숨은 비밀이 있는지 추리하게끔 만듦과 동시에 남편의 몽유병으로 인해 점점 피폐해져 가는 수진의 심경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 몰입도를 높인다. 이를 오로지 인물들의 감정선으로 차곡차곡 쌓아나가면서 스릴러적 요소를 극대화시킨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2장 중반부터 남편의 몽유병 원인이 귀신 때문이라는 수진의 광기와 비상식적인 행동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영화의 스토리가 반전된다. 예상치 못한 형태와 상상력으로 관객들을 덮치더니 3장에선 한국형 오컬트의 색을 덧칠해 균열의 끝을 달리는 부부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미 몽유병 완치판정을 받은 현수이나, 수진이 광기를 표출하게 된 원인이 제법 그럴싸해 과연 그의 말이 사실일까 혹하게 만든다.


이와 함께 귀신이 갔다는 현수의 말이 진짜인지 아니면 배우로 생계를 책임졌던 경력을 발휘해 수진의 광기를 잠재우고 무너진 부부관계 회복을 위해 연기를 한 것인지 여러 가지 해석을 남겨둔 채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린다. 색다른 상상력이 만들어낸 마무리다.


이는 보는 이들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다소 뜬금없는 급발진과 개연성이 결여된 것처럼 보이고, 이를 납득시키기엔 뒷받침할 서사가 초중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헐겁기 때문이다. 열린 결말 또한 마치 이야기를 수습하지 못해 열어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단점이 분명 보이긴 하지만 유재선 감독의 '잠'에 푹 빠질 수 있게 만드는 또 다른 원동력은 이선균, 정유미의 원동력이다. 이번 작품으로 4번째 호흡을 맞춘 사이 답게, 두 배우의 연기 케미는 찐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이 많이 없는 데도 이를 전혀 느끼지 않는 이유 또한 이선균, 정유미가 94분을 꽉 채우고 있어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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