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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Nov 27. 2023

두 번 다시 봄이 빼앗기지 않기를

영화 '서울의 봄' 리뷰

영화 '서울의 봄'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가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에 쓰인 저항시로 알려져 있긴 하나, 영화 속 내용에 대입해도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을 줬다. 시대만 다를 뿐 우리가 빼앗긴 것이 비슷해서였던 것 같다.


'서울의 봄'은 10.26 사태 이후 유신체제가 붕괴되고 찾아온 서울의 봄, 그리고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던 1979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역사가 스포'이기에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고 이 영화가 어떤 스토리인지는 조금만 찾아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궁금했다. 김성수 감독이 실화 바탕으로 제작한 '서울의 봄'을 통해 관객들에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일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서울의 봄' 안에서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살린 건 박정희 전 대통령뿐이다. 하지만 당시 사건에 책임 있는 인물들은 이름만 살짝 바꿨을 뿐 그대로 박제한다. 모두가 다 아는 전두광(황정민)의 비주얼이나 육사 동기이자 친구인 노태건(박해준)과의 대화에서 묻어 나오는 대표 어록들이 강렬하게 박힌다.


특히 김성수 감독과 '서울의 봄' 제작진은 전두광을 필두로 한 조직 하나회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당시 적과 아군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12월 12일 그날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또 엔딩에서 하나회의 단체사진을 박제해 서울의 겨울을 몰고 왔던 장본인이 전두광 한 명만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들은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자축하기 위해 남겼겠으나, 후세의 사람들은 이를 머그샷으로 기억한다.


하나회뿐만 아니라 1979년 12월 12일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또 다른 이들도 조명한다. '별들의 잔치'임에도 장성들의 뒷목 잡게 만드는 무능함, 악몽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싸우려고 했던 이들을 정치색을 넣지 않고 드라이하게 그려낸다.



141분 긴 러닝타임 속에서 지루함이라거나 기시감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김성수 감독의 정확한 계산으로 이뤄진 연출력 덕분이다. 목적성이 확실한 캐릭터, 리듬감 있는 서사, 깔끔한 컷 구성과 편집까지 모든 요소에서 적정한 선을 지킨다. 단순히 실화에 의존하지 않고 역사와 픽션이 조화롭게 시너지를 발휘하는 팩션의 힘을 보여줬다.


연기 또한 빈틈이 없었다. 먼저 전두광 역을 맡은 황정민은 머리를 미는 파격적 변신보다 더 살벌한 연기력으로 필름의 중심을 잡는다. 그는 자신이 출연했던 연극 '리처드 3세'의 리처드 3세에 비할 엄청난 아우라를 뽐내며 장악한다. 그렇다고 '제5공화국'에서 뛰어난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바람에 미화(?) 논란을 야기했던 이덕화와는 달리 절제된 부분도 느껴진다.


전두광을 막아 세우는 수도경비사령관 정우성은 '아수라'에 이어 '서울의 봄'에서도 김성수의 페르소나에 걸맞은 존재감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랬길 바라는, 그래야만 하는, 그렇게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캐릭터로 분해 황정민과 팽팽한 균형을 맞춘다.


황정민과 정우성 두 축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조연들의 앙상블도 장난 없는 수준이다.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을 비롯해 박훈, 이재윤, 남윤호, 故 염동헌, 그리고 특별출연한 정해인과 이준혁까지 적재적소에 활용됐다.


이미 지나간 역사는 후대의 인물들에게 참고할 만한 좋은 교훈이자 본보기다. '서울의 봄'이 이 시점에 개봉한 것도 어찌 보면, 추악한 승리의 역사가 아닌 그때처럼 두 번 다시 봄이 빼앗기지 않길, 빼앗기면 안 된다는 걸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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