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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august Aug 17. 2022

#10 멜버른에서 내 집 마련

영끌, 하우스푸어, 그래도 내 집이 있다면야. 호!

 멜버른의 집 값은 떨어질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 코로나 기간에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듯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멜버른의 집값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디지만) 올랐다. 우리는 가끔 호주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서 현재 멜버른 지역의 부동산 매매 시세, 렌트 가격 검색해보곤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굳이 미련스럽게 이러는 이유는 바로 멜버른에 아직 남아있는 우리 하우스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을 갈아 넣은 자식 같은 첫 집. 우리는 호주에서 우리 인생의 첫 집을 샀다. 어떻게?




'아빠... 3천 정도만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이민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한다는 소리가 3천만 보내달라는 거였다. 3천 원도 아니고 3천만 원.

얼마나 철없는 소리였을까. 그래도 아빠는 두말 않고 알았다고 하셨다. 한국에서 신혼집 보증금 뺀 돈과 남편이 그동안 모아 온 돈 그리고 있는 거 없는 거 네 계좌 내 계좌 할 거 없이 다 털어보니 3천만 원 정도가 부족했다. 인생에서 언젠가 부모님에게 한 번은 손을 벌려야 한다면, 그게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뿐이었다. 우리는 겨우겨우 집값의 20%를 마련했다. 나머지는 호주 은행 대출, 그리고 운에 맡겼다.

먼저 호주의 주택 구매에 대해서 (구매당시기준으로) 설명하자면,

(경험에 기반한 개인적인 설명일 뿐, 전문가의 의견이 아니니 참고만 부탁드립니다.)

1. 사고자 하는 주택을 (가지고 있는 버짓에 따라) 정한다.

2. 100% 현금으로 구매, 그렇지 못할 경우 3.으로 가시오

3. 그래도 사고자 하는 주택 매매가의 10-20%는 있어야 한다.

(나머지 80-90%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한다. 디파짓 금액에 따라 이자율이 달라지기도 한다.)

4. 은행에서 대출업무는 개인으로 할 수도 있고

5. 론 브로커를 통해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

(브로커라는 말이 한국에서는 안 좋은 말로 들릴 수 있겠으나, 호주에서 합법적으로 있는 직종이며, 대부분 부동산 구매 시 론브로커를 통해 집 대출을 많이 받는다. 실제로 은행원 출신인 론 브로커들도 있고 부동산 전문 변호사와 론브로커를 병행하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은 주택 구매 의뢰인에게 수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대출이 실행되면 은행에서 일정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힘써주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대출받을 은행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거 보다는 론 브로커가 이미 오래 알고 거래하고 있는 은행들이 더 많기 때문에 시간이나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우리는 론 브로커를 통해서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그 기준으로 이어가겠다.)

6. 론 브로커와 상담 후 요청한 필요한 서류들 준비&제출

7. 론 브로커가 은행과 대출 상담 및 가승인 요청

8. 주택 구매자의 현재 비자와 직장을 보고 은행에서 대출 가승인을 판단. (당시 나는 비영 주권자이고 남편이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남편의 명의로만 구매가 가능했다. 호주 주택 구매 시 대출을 받으려면 비자는 영주권자 이상, 직장은 풀타임잡 3개월-6개월 이상이어야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

9. 가승인이 난 후 (가승인이 났다고 해서 나중에 대출 시 100% 대출이 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현재 재정상태에서 승인이 날 수 있는지, 난다면 어느 정도인지 가늠만 해줄 뿐.) 변호사 상담.

 (호주는 주택 구매 시 반드시 변호사를 통해야 한다. 변호사 비용이 들어가긴 하지만, 집 계약에 있어서 문제가 생길 시 변호사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에 구매자는 심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안전하다.)

11. 부동산 중개인과 나의 변호사가 주택 거래 계약을 진행.

(물론 변호사는 계약 진행사항을 우리와 계속 피드백)

12. 최종적으로 은행에서 대출 승인이 되고 변호사가 은행 론 담당자와 최종 사인을 하게 된다.

13. 대출완료 및 계약 완료가 되면, 모기지의 노예가 된 새로운 집주인은 부동산으로 집 열쇠를 가지러 간다.

14. 부동산에서 선물로 준 축하의 샴페인을 딴다.


우리의 인생의 첫 집을 호주에서 사다니
실제로 집 키를 받은 날 부동산에서 준 와인


 주택 구매 과정이 딱딱 떨어지듯 단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은 절차를 밟기도 하고 혹은 절차가 이보다 더 간단명료해질 수도 있겠다. 아무튼 우리의 경우를 기억나는대로 그나마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이러했다. 중간에 피를 말리는 사건도 있었고(변호사님이 착각하고 우리 계약이 잘못되었다고... 그것도 최종 사인하는 날!!), 돈 앞에서 심장이 수도 없이 철렁했지만 끝내 우리는 집을 사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우리가 집을 계약한 일주일 뒤, 호주 특히 빅토리아 주 멜버른의 부동산 관련 대출 꽉꽉 막히기 시작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집 대출이 비교적 쉽게 잘 나왔는데 주택 관련 대출 규제가 까다로워졌다. 외국인들(중국인)들이 멜버른 부동산을 장악하여 가격 상승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었고 여러모로 주택 가격 상승을 조금 주춤하게 해야겠다는 정부의 방침이었던 거 같은데.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 고 생각했지만 집을 사고 나서부터 고생 시작이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첫 집'을 샀다. 부동산 사이트에서 우리가 가진 돈에서 살 만한 만만한 집들을 보다가, 이 집 한 번 보러 가 보자 해서 보러 간 그 첫 집. 그 집을 그냥 덜컥 계약했다. 왜였을까. 남편도 나도 그냥 이 집이 아니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그때 당시 집을 보러 갈 때 동행해 준 남 편지인은 부동산에 미쳐있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도 눈여겨보던 매물이었다. 그래서 더 탐이 났을까. 부동산 투자에 혈안이 되어있던 그 사람이 얘기했던 몇 가지 부동산 보는 조건. 그 조건에 여러 가지로 합격이었던 집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거주) 집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집이 오래되었고 손볼곳도 많았다. 할아버지 혼자 살았어서 온통 집 벽과 천정은 누렇게 담배 연기 그을음에, 떡져진 카펫 중간중간 강아지 오줌 냄새, 부엌 선반 아래는 쥐똥이 가득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많은 리모델링을 해야 했다. 물론, 우리 손으로 직접. 영끌이라고 해야 하나, 가진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디파짓에 넣었다. 집 금액의 20%. 그렇게 우린 하우스푸어가 된다. 당장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인테리어도 우리 손으로 직접 해야 했다. 계약 후 세틀먼트까지의 기간 동안 내 집이 생긴다는 기대감에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지 모아둔 사진 속 고급스럽고 우아한 이미지들은 다음 생을 기약해야 했다. 그저 집다운 집을 만들기만 해도 성공이었으니까.

 



 각자 일이 끝나면 렌트하고 있는 아파트에 모여 장비(?)들을 챙겨서 밤이든 낮이든 진짜 우리 집으로 향했다. 가지고 있던 옷 중 제일 허름한 옷을 입고 목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쓰고 공사 현장처럼 벌거 벗어진 집에 들어가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아파트의 렌트비와 당장 매월 24일마다 나가기 시작하는 우리 집의 이자를 동시에 낼 수 없기 때문에 아파트는 얼른 서둘러 나와야 했다. 집주인이 다행히도 우리의 사정을 잘 봐주었고 그 집은 우리가 나간 후 매매 물건으로 나오게 된다. 우리는 진짜 우리 집 키를 받은 날과, 아파트를 비워줘야 하는 날이 보름 정도 겹치게 날짜를 정해 두고 하나씩 이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사도 우리가 직접 했다. 사실 짐도 그리 많지 않았고 이삿짐센터를 부르는 것도 돈이 너무 아까웠다. 단돈 100불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에 1000불 이상을 이삿짐센터에 주고 싶지 않았다. 지인에게 작은 승합차를 빌려서 짐을 차에 때려 넣고 3-4번 왔다 갔다 하니까 웬만한 짐은 다 옮겨졌다. 문제는 매트리스였다. 퀸사이즈의 매트리스를 어떻게 옮겨야 할까. 승합차가 작은 사이즈라 퀸사이즈의 매트리스가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차 위에 얹어서 창문을 열고 로프로 차 천정과 매트리를 칭칭 감고 출발했다. 근데 이게 웬걸 차가 달리기 시작하니까 매트리스가 윗몸일으키기를 하듯 바람에 들어 올라가기 시작한다. 사실 우리는 몰랐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까. 경찰이 우리 차를 세운 뒤에야 우리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다른 차들에게 위험하니 이렇게 이동하지 말라고 경고를 받았다. 우리는 알겠다고 트렁크에 구겨 넣어보겠다고 약조 후 경찰을 보내고, 다시 출발했다. 집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우리는 그냥 그대로 가되 우리가 직접 매트리스를 손으로 잡고 가기로 했다. 남편은 한 손으로는 운전을 하고 한 손으로는 창문 밖으로 손을 뻗어 올려 매트리스 오른쪽 끝을 잡고, 나는 조수석 창문 밖으로 손을 뻗어 매트리스 왼쪽 끝을 힘겹게 잡고 갔다. 10분이 그렇게 긴 시간인지 처음 알았다. 손가락과 팔을 얼마나 달달 거리며 잡고 왔는지. 손톱이 다 빠질 거 같았다. 지나고 보니 이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일까. 웃픈 해프닝. 이런 걸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히스토리. 나와 남편은 이런 히스토리들이 정말 많다. 바닥 공사를 할 때였다. 더럽게 찌든 카펫 바닥은 이미 다 뜯어내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잔재들을 제거해야 했다. 우리는 래미네이트(우드 모양의 바닥재)를 깔 계획이어서 바닥이 최대한 평평하게 되어있어야 했다. 망치와 끌을 가지고 바닥에 붙어있던 잔재들을 까대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고 목장갑을 끼고 열심히 긁고 있는데 누군가 쿵쿵쿵. 현관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나는 작업하던 그대로 현관으로 가 문을 열어젖혔고 핼러윈 분장을 한 동네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서있었다. 머리는 산발에, 마스크를 쓰고 망치와 끌을 손에 들고 땀에 전 나를 보더니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mom...my... mommy...!'


아.. 이를 어쩐다. 그날은 핼러윈이었다. 사탕 하나 받으러 온 동네 꼬마들의 동심을 내가 파괴해버렸다. 손에는 망치를 들고, 다른 한 손은 끌을 들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하하. 그다음 해부터는 우리 집은 핼러윈에도 조용했다.



핼러윈 날의 나의 연장들


페인트 작업도 셀프로 했다. 정말 미친 짓이었다.






 우선 집을 바닥재부터해서 전체적으로 다 철거를 한 뒤, 하나하나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바닥을 새로 깔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페인트칠을 먼저 해야 한다. 바닥부터 깔면 나중에 페인트가 바닥에 떨어질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인트가 완벽하게 되어있어야 가구들도 배치 할 수 있다. 그래서 철거 뒤 우리가 제일 먼저 작업했던 것은 페인트 작업이었다. 벽, 천정, 창틀, 문, 문틀까지 일일이 우리가 다 칠했다. 우리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페인트 칠도 한번만 칠하는게 아니라 전에 있던 얼룩을 지워야 하기때문에 베이스로 먼저 칠한뒤 우리가 원하는 컬러로 두번 세번 덧칠을 해야한다. 나도 그렇지만 남편이 정말 고생이 많았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내뜻대로 다 해준 남.. 아니 내편



부엌의 비포 / 애프터



 셀프 인테리어는 정말 미친 짓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단독적인 페이지에서 다루고 싶다. 우리의 셀프 인테리어는 집에 거주하고부터 한국에 역이민 올 때 까지도 계속되었다. 확실히 돈 주고 한  번에 끝내는 게 정신건강상 좋은 듯하다. 그래도 천장부터 바닥, 그리고 현관부터 뒷마당까지 모두 우리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는, 호주 멜버른에서 유일한 우리의 땅, 우리의 건물, 우리의 보금자리.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우리만의 것. 소중하다. 그래서 더더욱 정리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겨두고 온 우리의 전재산. 우리는 지켜낼수 있을까.










뒷마당에서 보던 하늘




뒷마당
그리운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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