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의 우리 집, 셀프 인테리어 이야기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셀프 인테리어는 미친 짓이다.
뜯어말리고 싶다.
품질 좋고 가성비 좋은 인테리어 자재를 구하기 쉬운 한국에서도 셀프 인테리어는 힘든 종목인데
그런 이점이 하나 없는 호주에서 하려니 더 쪼들리고 열받고, 돈지랄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업체에 맡기는 거보다는 돈이 덜 나가긴 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셀프 인테리어를 했지만. 돈이 부족하다면, 차라리 두어 달 더 돈을 모아서 업체를 쓰시라.라고 강력하게 얘기하고 싶다. 우리 손으로 거치지 않은 곳이 없어서 집에 정은 들었지만, 나중에 붉어지는 하자들 때문에 정이 떨어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제발, 전문가가 아니라면, 적당한 선에서만 셀프 인테리어를 하고(그마저도 나는 이제 치를 떤다) 굵직한 부분들은 반드시 업체를 이용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우리의 최선에 만족하며 살았던 지난 수년간의 우리 집. 그 변화들을 보여드릴까 한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비전문가들의 최선이기 때문에 응원의 박수만 좀 부탁드리는 염치없는 바람이다.
먼저 정말 문제가 많았던 부엌. 돈도 가장 많이 들어갔고, 손도 제일 많이 갔다. 할아버지 혼자서 살았던 집이라 그런지 부엌에 전혀 욕심을 부린 흔적이 없다. 모든 것이 처음 집을 지었을 때 했던 옵션 그대로였고 당연히 수납도 성치 않았다. 부엌 벤치탑도 많이 삭았고 재질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 위에서는 썩은 양파도 썰고 싶지 않았다. 가스레인지는 그냥 스쳐 봐도 오래돼서 오븐은 열어보지도 않았다. 싱크대는 그냥 노멀 한 2구짜리 스테인리스 싱크대였지만... 역시나 바꾸고 싶었다. 가장 문제는 아래 사진에 보이는 저 누런 벽이었다. 상부장에 달려있던 후드가 제기능을 상실했는지 어쨌는지 온 기름때가 벽으로 다 흡수되었다. 철거하고 나니 경악할 것들이 수줍게 하나, 둘 숫자를 세며 올라오는 게 아니라 파노라마처럼 웅장하게 등장했다.
천만다행으로 남편 지인 2명이 함께 철거를 도와주었다. 철거 후 손보는 몫은 다 남편 몫이었다. 저 뚫린 벽을 다른 합판을 대고 얼추 사이즈를 맞춰 자른 뒤 석고 같은 마감재를 이용해서 메워주니까 감쪽같았다. 저 누런 벽이 꼴도 보기 싫어서 광기의 페인트칠을 하고 나니 정말 마음까지 정화되는 듯한 벽이 되었다.
연식이 언제인지도 모를 허연 쿡탑은 버리고 우리의 예산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거대한 5구짜리 쿡탑을 구매했다. 이런 미친 짓을 말리지 않은 남편에게 정말 고맙다. 뭐든 내가 말한 데로 다 오케이. 오케이. 해주었던 남편. 지금 다시 돌이켜서 생각해보니 또 고마운... 거지... 뭐...(눈물 흐르는 중). 그때는 뭐든 오래 쓸 생각으로 욕심을 부렸지만, 지금 생각하니 다 아까운 돈이다. 풍요롭지 않다면 이민 생활에는 일단 뭐든 아껴야 한다. (가지고 있는 돈은 무조건 지켜!!)
타일은... 이건 전문가에게 맡겼다. 그런데 타일만큼은 정말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걸 작업하는 걸 보고 깨달았다. 작업하는걸 살짝 봤는데, 이것마저 남편에게 시켰다가는 사람 잡을 뻔했지 뭐람. 부엌 가스레인지 위에 부분과 화장실 바닥 타일 까는 거 합쳐서 600불 정도 지불했다. 물론 타일은 우리가 샀다.
부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나무 벤치탑. 저것 역시 남편의 노고가 들어간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란 것이 끝이 없어서, 벤치탑을 나무로 하고 싶어서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을 찾아보니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이쯤 되면 우리가 누구냐, 비싼 건 살 수 없어도 싸게 사서 우리의 막노동을 가미시키는 셀프의 달인이 되시겠다. 목재시장을 찾았다. 멜버른 시티 근처에 그런 곳이 또 있긴 있더라. 남편이랑 가서 벤치탑으로 쓸만한 나무판을 샀다.
싱크대 사이즈가 중요하다. 딱 하나뿐인 나무판... 싱크대 사이즈에 맞게 한 번에 재단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미리 싱크대부터 사두었다. 우리가 가전 구매를 주로 한 곳은 멜버른 단데농에 있는 하비 노만 팩토리 아웃렛이다.
냉장고, 쿡탑도 여기서 구매했고 싱크대도 여기에서 구매했다. 디스플레이되었던 건 더 가격을 할인해준다.
나무 전체를 여러 번 샌딩 해준 뒤 사이즈에 맞게 종이 오리듯 뚝딱 썰어내 버린 남편. 정말 기똥차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컬러로 예쁘게 색도 입혀주었다. 이렇게 하루 말린 뒤 마지막 코팅까지 하면 끝난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멋진 나의 부엌!!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얘기하자면, 호주는 가스설치, 하수도 설치, 그리고 전기 설치를 하려면 반드시 호주에서 검증된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한국은 가스레인지를 갈거나, 전기 스위치 정도는 셀프로 하기도 하는데 호주는 반드시 전문가를 통해 손을 봐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혹시라도 집에 문제가 발생하면 보험처리를 받을 수가 있다. 괜히 이런 쪽을 셀프로 하게 되면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보험으로 보상받지 못할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잘 판단하고 의뢰하시길 바란다. 우리도 하수도 설치와 전기설치, 쿡탑 가스 연결은 각각 전문가를 불러서 했다. 그 돈으로 지출이 상당했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제 후 영수증은 잘 보관해두는 것이 좋다. 차후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게 제일 좋지만, 혹시라도 증명해야 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닥 카펫을 다 뜯어내기 전에 벽 페인트를 먼저 칠했다. 혹시라도 바닥에 페인트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어차피 카펫은 뜯어낼 거라서 괜찮다. 조금이나마 실수를 줄이려는 속셈이다. 페인트도 그냥 막 칠하는 게 아니더라. 메이크업하기 전 얼굴에 베이스를 깔듯, 페인트도 베이스를 잘 깔아줘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야 기존의 색이 잘 덮어지고 새로운 색이 잘 발현이 된다고... 그리고 창틀 벽에 칠하는 페인트랑 또 다른 종류로 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거지만, 한 코트 올린 뒤 두 번 세 번 더 올려줘야 완벽한 컬러가 나오는 것이다. 원리를 어느 정도 파악했으니 색을 정해야 했다. 어떤 색이 좋을까, 기껏 예쁜 색으로 고르고 골라서 이 집에다가 칠해 봤자 돈 쓰고 눈물 흘릴 것이 자명했다. 이럴 땐 무조건 화이트다. 그런데 화이트도 종류가 정말 많구나. 나는 오프 화이트 정도로 타협했다. 남편과 나는 마치 오래된 페인트 동업자처럼 눈빛으로 서로의 구역을 나눈 뒤 칠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는 우리 안방을 칠해야 했다. 이제 거기서 잠을 자야 하니까. 방 페인트가 끝나면 방바닥을 깔고 침대부터 설치해야 한다. 생각보다 집안 전체를 칠하는 건 오래 걸렸다. 천정까지 칠하는 시간을 우리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단 한 코트만 어느 정도 발라놓고 살면서 조금씩 칠해보기로 했는데 그 의견은 살면서 그냥 맘에 안 드는 곳이 보이면 눈을 잠시 감아보는 걸로 타결되었다.
바닥도 다 뜯어내었다. 십 년도 더 묵은 듯한 카펫... 어디에 개 오줌이 묻었는지 뭔지 알 수 없는 지릿한 향을 머금은 카펫을 떼어내고 (사실 우린 구매 당시 카펫 밑에 나무가 깔려있는 줄 알고 샌딩만 한번 하려고 했는데, 나무가 깔려있지 않았다! 뒤통수... ㅂㄷㅂㄷ) 아직 바닥에 미련을 붙이고 남아있는 잔재들을 일일이 쭈그려 앉아서 끌로다 까냈다.
이제 바닥을 깔아볼까. 진짜 나무를 깔려고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래서 무늬만 나무 인척을 하는 래미네이트를 깔기로 한다. 그래도 사진처럼 꽤나 진짜 같았다. 바닥재도 종류와 색깔이 다양했다. 내가 집을 사면서부터 눈여겨보던 프렌치 스타일의 그레이쉬한 나무 바닥은 끝내 포기할 수 없었다. 딱 내가 원하던 컬러가 있어서 우리 집 사이즈에 맞는 수량으로 아니 조금 더 넉넉하게 주문했다. 우리가 사고 나니, 직원이 우리가 산 모델 샘플에 솔드아웃을 적었다. 럭키!
지내다 보면 바닥에 습기가 올라와서 래미네이트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깔기 전에 사진에 보이듯 바닥용 얇은 비닐을 먼저 깔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래미네이트를 원하는 방향으로 한 줄씩 끼워 맞춰 넣는다.
남편이 안방을 깔았고, 나는 남편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들로 나머지 방 2개를 직접 깔았다. 하다 보니 이거 뭐지? 나에게 이런 소질이 있다니! 싶을 정도로 너무 잘하는 것이 아닌가! 저 래미네이트를 방 길이에 맞춰서 중간중간 톱질도 해야 하는데, 직쏘도 다룰 줄 아는 나란 여자! 최고의 신붓감일세! 이렇게 자아도취되어 방 두 개를 뚝딱 깔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주문했던 냉장고가 도착했다.
아직 부엌 바닥은 깔지도 않았는데 냉큼 냉장고부터 들어왔다. 어쩔 수가 없었다.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우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테리어 역주행을 했다. 근데 말이야, 다 어떻게든 된다. 정말 신기하게도 다 어떻게든 되더라. 실수나 착오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고. 이왕 그래야 하는 거, 해결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민을 준비하고 이민을 경험하고 다시 역이민을 준비하고 역이민 생활을 하다 보니 작은 거 하나에 그리 절절매고 연연해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된 거 같다. 일종의 성장이라고 해도 될까
거실과 부엌 그리고 반대편 거실 공간까지 바닥을 다 깔았다. 이제 공사현장에서 조금은 집이 된 거 같다. 침대를 펴고 잠을 청할 수가 있다니!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먹을 수 있다니!
이제 굵직한 큰 일은 끝낸 듯했다. 가볍게 커피도 곁들이며 수납장 페인트 칠을 시작했다. 이것 역시 하얀색 베이스 페인트를 먼저 올린 뒤 색을 올려야 한다. 그래서 셀프 인테리어는 늘 내 생각보다 두배의 금액 두배의 시간이 걸리나보다. 수납장 문도 일일이 떼어내야 하고 뒤집어 말리고 다시 칠하고. 다 마른 뒤 문을 달아주어야 한다. 하다 보니 제일 마지막에 칠한 문은 거의 발로 칠한 듯 형편이 없지만, 나는 눈을 질끈 감기로 한다.
아, 셀프 인테리어의 장점을 하나 발견했다. 업체 컴플레인이 없다는 거! 한다면 나에게 해야 하니. 하자, 보수는 적절한 선에서 타협이 되더라. 그래도 우리 정말 열심히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