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한국
어디서 아이를 키워야 할까.
호주로 이민을 갔다가 다시 역이민을 온 지금까지도 사실은 고민 중이다.
누가 들으면 정신 못 차렸다고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거기 가서 살아 봤기 때문에,
여기서도 살아보고 있기 때문에,
또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이 고민을 내려놓지 못하겠다.
호주를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도 자꾸 나의 마음이 후회를 밟는 이유는 두아였다.
마음 반대편에 아이를 호주에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만 우리의 상황, 한국에 남아있는 나의 가족들의 상황이 우리를 한국으로 오게 만들었지만.
어쨌든 그것 또한 우리의 선택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우리의 선택으로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두아가 호주에서 살았을 때 누릴 수 있는 장점들을 마음대로 빼앗아버린 거 같아서.
만약 우리가 역이민을 고민할 당시 두아가 '엄마 나는 호주에서 살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나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제 아이 인생이 내 인생을 크게 좌우한다.
나와 남편은 호주를 정리하면서 5년 정도 후에 두아가 학교 갈 때즈음
다시 호주로 돌아오자 했다. 물론 여유자금과 할 수있는 일이 있다는 전제하에.
그렇게 우리의 아쉬운 마음을 겨우 달래며 한국행을 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알고 있었다, 돌아오자는 그 말이 각오가 아닌 위로였음을.
호주는 아이를 키우기 아주 훌륭한 나라다. 물론 돈이 많으면 한국이 최고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돈으로도 안 되는 작은 차이들이 생활 전반에 많이 자리해 있었다.
먼저 어린아이에 대한 배려가 아주 당연하다. 개를 위한 공원, 바다, 심지어 길거리에도 개를 위한 물그릇이 있는 나라인데 하다못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관대할 것인가.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카페에만 가도 베이비치노(데운 우유 위에 코코아 가루를 얹은 유아용 음료)를 1달러에 시킬 수 있다. no kids zone은 없었다. 오히려 only for kids가 있으면 있었지.(마트에는 아이들이 쇼핑하면서 무료로 먹을 수 있는 과일코너가 있다)
집에서 밥먹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바다가 여기저기 펼쳐 있었고, 두아는 그 바다들을 참 좋아했다. 여름에는 집에 있다가도 좀 더워지면 우린 지체 없이 수건 하나 들고 바다를 갔다. 그때는 두아가 돌도 되지 않았던 때라 긴팔 긴바지 수영복에, 혹시라도 다칠까 튜브를 꽁꽁 채워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졸졸 쫓아다니며 케어하느라 힘들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제법 추운 날에 기저귀만 입은체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제법 보였고, 그 아이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쿨한 엄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그때 아, 아이들은 생각보다 독립적이고 강하구나. 를 깨달았다.
바다를 못 가면 집 앞 공원에라도 산책을 갔다. 물론 한국에서도 공원은 많다.
하지만 호주의 맑은 날씨와 맑은 공기는 한국과 절대 비교 불가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주는 아빠들이 가정에서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야근과 회식이라는 문화는 육아와 가족과의 시간보다 절대 우선시 될 수 없는 구조이다.
직장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엄마는 물론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고, 휴가도 원하는 날에 아무 때나 쓸 수 있다. 그래서 따로 '여름휴가'라는 것이 필요 없다.
뭉쳐서 쉬지 않으니 붐비지 않는다. 가는 곳도 쉬는 시기도 다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붐빌 일도 없는 거다.
일과 쉼의 발란스가 대체로 잘되어있다. 퇴근 후 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내가 이민 오기 전 여행으로 시드니에 왔을 때 봤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순간을 SNS까지 남겨놨었다.
이제 한국도 이런 장면들이 종종 연출되는 분위기다.
앞으로 5년 정도 후라면 삶과 일의 밸런스를 중시하는 문화가 더 강해질 거 같은데,
정작 한국에 돌아 온 우리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나와 남편은 나의 가족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
나 좋자고 혼자서 워라밸을 외쳐 댈 순 없었다.
어떤 나라에 사느냐도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도 크게 좌지우지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나 호주에서나 하는 일은 중요하다. 삶의 질과 방향을 바꿔줄 테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과
우리가 호주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완전히 다르기에 그거에 따른 상황이 또 달라졌다.
우리가 한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늦은 퇴근시간. 아니면 주말부부의 형태를 취해야 하거나,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들만 있었다. 그렇다고 수입이 크게 느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가족과 가까이 살고 있다는 장점 하나, 그것 때문에 한국에 사는 걸 택한 건데.
장점 보다 단점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것이다.
두아가 점점 커가면서 또 더 학교를 가서 교육받을 때를 상상하면, 또 선택의 기로에 서는 순간이 머지않았구나를 느끼고 있다.
동탄에 사는 오빠의 5살짜리 딸은 영어 유치원을 다닌다. 한 달에 150만 원이라고 한다.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다달이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유치원비만 150을 낸다니...
내가 3년 뒤에 한국에서 두아에게 그렇게 투자할 수 있을까?
호주에서는 영어를 가르치려 150만 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일단 그것부터가 차이가 났다.
물론 호주에서도 사교육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많다. 수학 과학뿐만이 아니라
예체능도 다양하게 많이 시킨다. 그리고 국립이냐 사립이냐 학교가 또 나뉘기 때문에
교육 쪽으로 돈을 쓰려면 한국보다 더 쓸 수 도 있다.
하지만 내가 호주에 산다면, 사교육은 아예 쳐다도 못 볼 나무이기도 하지만, 그냥 남의 집 남의 아이랑 비교하지 않고 편하게 키울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서 살 때는 남의 시선이나 남들이 어떻게 하고 사는지가 우리의 포커스를 그다지 뺏어가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가 이민자이기 때문에 호주의 주류 사람들에게 이미 배제되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호주는 이미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다르게 살고 있는 나라여서 그런지 누가 어떻게 하고 사는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겨울에 반바지에 쪼리를 신고 점퍼를 입고 다녀도 누가 쟤 좀 봐 춥지도 않나 봐.라고 할 사람 없고, 맨발로 길거리를, 마트를 돌아다녀도 혀를 끌끌 차는 사람 하나 없는 나라니까 말이다.
아이를 키우기에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서도 호주에서 처럼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키우면 되지 않아?
라고 생각도 해보았다. 한국에서 호주처럼 키우기.
그건 참으로 모순된 문장이었다. 호주처럼 키우고 싶으면 호주에 가서 키워야 한다.
왜 굳이 한국에 와서 그런 짓을 하느냔 말이다.
반대로 호주에서 한국처럼 키우기. 난 그걸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너무 나의 감정에 치우친 생각일까?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이렇게 객관적인 지표를 볼 때면 나의 물음에 대답해주는 느낌이 든다.
https://www.usnews.com/news/best-countries/best-countries-to-raise-a-family
US뉴스 앤 월드리포트에서 발표한 아이를 키우기 좋은 나라 순위이다. 호주는 9위. 한국은 25위이다. 사실 한국도 낮은 순위는 아니다. 하지만 호주가 월등히 좋다. 호주에서 아이를 교육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떤 부모라도 고민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비난할 수도 있다. 한국 사람도 아니고 호주 사람도 아니고 영주권 받아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좋은 쪽으로만 살려고 한다고. 법을 지키는 선에서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호주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졸업하였고 회사도 다니며 영주권을 취득했다. 그리고 바로 한국으로 와서 자원입대를 했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 했고 난 그 부분을 존경하기까지 한다. 한국에서도 직장생활도 남들만큼 충실히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미래를 생각하니 호주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인생의 반 이상을 호주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충돌이 당연했다. 그리고 아직 본인에게, 내 와이프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줄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도 했고, 그렇게 우린 영주권 만료를 앞두고 과감하게 호주행을 택한 것이다. 물론 나는 파트너 비자로 영주권을 받은 케이스였지만 이것 또한 (합법적인 제도니까)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영주권 쉽게 따고 쉽게 산다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호주에서 결코 쉽게 살지 않았다. 제대로 된 직장을 못 잡았을 땐 청소로 생활비를 벌며 내 생일엔 남의 집 변기를 닦은 날도 있었고, 들어가고 싶었던 직장은 파트타임으로 겨우 시작했지만 불러줄 때마다 열심히 나가서 더 일했다. 그렇게 해서 6개월 만에 정직원까지 되었다. 평생 운동화가 찢어져 본 적이 없는 나는 호주에서 일하면서 2년 사이 세 켤레를 찢어먹었다.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찾아온 아이를 품에 안고 임신 7개월까지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 일했다. 물론 이 과정들이 다른 분들이 영주권을 따는 데 까지 걸린 그 고생에 비할 건 전혀 안된다. 어렵게 따신 분들이 주변에 많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감히 힘들었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다. 그저, 나는 행운이었고 그러나 그 행운을 가볍게만 여기지 않았다는 것만은 얘기하고 싶다.
남편도 나도 4년을 고생했다.
남편은 무릎이 시리도록 일했고, 나도 신발이 찢어져라 일했다.
우리는 행복도 찾았지만, 외롭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쪼들리기도 했다.
이민자로 산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지만 그럭저럭 유지해 온 호주에서의 시간들이 여전히 아쉽고 아까운 건 사실이다.
한국에 돌아왔으니 그 시간들이 실패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우리가 만약 다시 가서 살게 된다면
단단한 땅을 만들어 준 과정과 경험이라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미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사는 노선을 타버렸다. 그만큼 꾸준히 한자리를 지켜온 사람들보다
가진 것 없고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반대로 다른 방향으로 내 자식에게 또 다른 자극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의 아이도 나와 비슷한 노선을 살게 될지, 아닐지 그건 내 아이의 선택에 달렸지만.
그래도 4년이라는 고된 시간들이 헛된 것이 아닌,
우리 아이에게 인생의 선택의 폭을 좀 더 넓혀 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위로하며.
그 선택의 순간 잠시 괴로울지라도 끝내 멋진 인생을 살길 바라며 미리 아이의 선택에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