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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august Oct 18. 2022

#18 Come back home (2)

한국으로 돌아오다


2017년 4월 10일 MEL 도착.

2021년 4월 07일 SEL 도착.

4년을 꽉 채우고 이민을 끝냈다.

돌아올 때 짐도 처음 갈 때와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인생이 달라진 게 없다는 뜻일까.



돌아온 한국은 불과 몇 개월 전 긴 여행으로 머물다 갔음에도 많이 달라져 보인다.

사실 모든 것은 그대로였으나

여행이 아닌 현실로 돌아오니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이 달라졌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더 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열심히 살아왔고 살아가는구나.

한 친구는 서울에 아파트를 샀고, 다른 한 친구는 승진을 하고 독립도 했다.

어떤 친구는 아이가 벌써 둘이었고, 또 다른 친구는 회사 대표가 되었다.

지난 4년간 나름대로 나도 열심히 살았다 생각했는데, 열심히 '살아내기'만 한 것이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열심히 살았으면 뭔가 결과가 있어야 맞다. 돈을 모았으면 한국에 돌아와서 뭐라도 해볼 수 있는 목돈이 남아야 하고, 공부를 했다면 졸업증서라도 남아야 한다. 나는 열심히 살기만 했다. 계획도 없었고 목표도 없었고 그래서 결과도 없다. 


다시 0에서 시작해야 한다. 눈앞이 캄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빈손이었다. 손님도 빈손은 반기지 않는 법인데, 나는 나라에서 다시 거둬줘야 하는 역이민자였다. 당장 먹고살 방법은 가족뿐이었다.

사실 우리가 돌아온 이유도 가족이었으니까.

이미 일에 너무 지쳐버린 나의 아버지를 대신해서 사위인 나의 남편이 아버지 회사에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가족일이지만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가족이라 더 불편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 안에서 다시 정착을 시작했다. 지난 1년이 폭풍처럼 흘러갔다. 한국에서의 일상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호주가 생각나기 시작한다. 

호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내가 사회 부적응자인가. 현실 회피자인가. 아니면 제정신이 아닌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한국에 역이민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호주 타령을 하는 건지. 

도대체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또렷한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그렇게 1년이 지나갔다. 어느 날, 아파트 놀이터에서 두아랑 놀고 있는데, 7살짜리 여자아이를 만났다. 두아는 워낙 언니들을 좋아해서 언니 언니 하며 과하게 따르는데, 보통은 여자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거나 같이 놀고 싶어 하지 않는 반응이 대다수다. 나는 그게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만난 그 아이는 두아랑 너무 잘 놀아주었다. 벤치에 있던 그 여자아이의 엄마가 다가와서 우리에게 말을 건다. 품에는 돌이 막 지난 둘째 아이도 안고 있다. 우리 엄마들은 아이들끼리 잘 노니까, 할 일이 없었다. 오래간만에 찾은 여유에 엄마들끼리의 수다가 시작되었고.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린 둘 다 이민자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지금 한국에 있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그 가족은 캐나다에서 3년 이민을 하다 작년에 5월에 돌아왔고, 우리는 호주에서 4년 이민을 하다가 작년에 4월에 돌아온 거였다. 돌아온 시기도 비슷했고, 나이도 비슷했다. 다만 그들은 다시 돌아갈 계획이 확실했다. 영주권을 신청해놓고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다고 했다. 영주권이 나오면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고. 부러웠다. 돌아갈 이유가 분명하니까. 누구라도 설득시킬 수 있는 타당한 이유였다. 그녀가 물었다. 다시 안 가세요? 신선했다. 다시 가는 게 좋을 텐데 안 갈 거냐는 회유로 들렸다. 나는 가고 싶다고 대답했고, 우리는 가는 게 좋죠. 그렇죠 맞아요 가야죠. 맞장구치며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녀도 1년 사이에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누군가 나를 옥죄는 게 아닌데, 답답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그게 맞는 거 같다고. 나도 그렇다. 호주로 떠나고 싶은 이 마음은 누군가가 나에게 영향을 끼쳐서가 아니라, 나만이 알 수 있는 차이가 느껴져서이다. 차이를 모른척하고 한국에 살자니 타협할 수 없는, 그렇지만 누군가를 설득할만한 타당하고 정확한 이유라고는 말 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굳이 표면적으로 정확한 모양의 이유를 타인에게 보여주어야 할 의무는 없다. 잘 살고 돌아오고 다시 나가고를 정하는 것에 있어서 내가 괜히 남에게 타당하게 보이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정확한 이유를 자꾸 찾았던 거다. 그랬던 이유는 첫 이민을 실패했기 때문에. 그 실패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자격지심이었다. 가고 싶으면 징징거리지 말고 조용히 떠날 준비를 완벽히 해서 가면 그만이다. 아무도 나를 막을 사람 없고,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른 사람은 나의 인생에 별로 관심이 없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필연적인 만남이었던 이웃과의 대화끝에

나는 이민에 대한 마음을 다시 정립하게 되었다.

떠날 이유를 만들어낼 시간에, (그토록 가고 싶다면) 호주에 가서 잘 살 준비를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호주에서 다시 살 준비가 완벽히 끝났다면, 떠날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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