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림 1주년 기념으로...
벌써 1년이 지났다.
작년 5월. 깨질 것처럼 맑은 오월의 어느 날, 그만 일하라는 말을 들었더랬다.
날씨까지 좋아서 모두가 축제 같았던 그날, ...
멍한 상태로 회사에서 나오는데 하늘이 너무 맑고 파래서 ‘하늘이 참 예쁘구나’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하늘이 이내 서늘한 슬픔으로 변주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어느 순간 용수철처럼 툭 튀어 오르곤 한다.
그때처럼 슬프다거나 비참하다거나 하는 감정은 아니고, 그 감정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는 뜻이다.
이제는 나 스스로를 희화화하면서 그때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어쨌든 ‘실패’라는 가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분명 고약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 전에도 크고 작은 실패들을 했기 때문에 실패 자체가 주는 상실감이나 슬픔, 허무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용도폐기를 당한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론, 계속 그 주변을 맴도는 마음도 징글징글했다.
나를 다시 끼워줄 마음이 전혀 없는 그곳 주변을 말이다.
마음은 어디에도 닻을 내릴 수 없어 떠돌았고, 나는 묵직한 슬픔을 깊은 호주머니 속에 넣어 놓은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았다.
46살의 나이에 도대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알바를 알아보는데, 심지어 대형마트 계산하는 일도 나이제한에 걸리더라. (열심히 하겠다고 우기면 됐으려나?)
내가 46살에 이렇게 살 줄 몰랐으니까, 또 윤여정 씨 말대로 나도 처음 살아보는 46살이니까 당혹스러운 상황과 감정 앞에서 꽤나 미숙했다. 서러워하고 억울해하며 뭘 어찌 해야 할지 몰라 하면서 우왕좌왕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웃는 날이 더 많아지고, 걱정하는 날이 줄어들면서 괴로운 시간도 다 지나가더라.
그래서 살아진다는 건, 무섭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일.
어쨌든 그런 시간을 보내고 지금은 슬픔도 걷히고, 아쉬움만 조금 남은 상태.
그러나 젊음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다시 그 젊었던 때로 돌아가긴 싫듯이,
아쉽다 해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1년 동안 하두 허우적거렸더니 이제 좀 물에 떠서 살짝 앞으로 가는 느낌도 든다.
아마 호주머니 속에 있던 것들이 많이 빠진 듯하다.
그런 시간을 통해서 얻은 거? 그딴 거 별로 없다.
그저 처음 살아 보는 46살의 서툰 생을 잘 살았고, 수고했다고 칭찬해 줄 수 있는 47살이 되었다는 정도.
난 이렇게 ‘짤림 1주년’을 기념한다.
오늘도 작년처럼 날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