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별책부록>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골목 하나가!

그림책 <골목이 데려다 줄 거예요/길상효 글, 안병현 그림>

by 장소영

잠이 오지 않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런저런 사이트를 기웃거리다 그룹 '쿨'의 노래 영상을 보게 되었다.

'1997년? 와, 이 노래가 벌써 20년도 더 된 노래구나!'

쿨의 '송인'이라는 노래를 듣는 순간 그 노래를 처음 듣던 20대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갑자기 감성이 돋아 가슴이 찡하고 뭉클해 왔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누구나 추억 속으로 자신을 안내하는 노래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때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었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웃는 날도, 마음 아픈 날도 있었을 텐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저 다 좋았던 것만 같다.

원래 추억은 아름답다고 하더니.

시간이 지난 후에 돌이켜보면 내 사랑은 더 애절했던 것 같고, 슬픔과 아픔의 기억은 더 절절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마법 같은 힘.

생채기가 난 상처에는 어느덧 새살이 돋아 그때의 일들을, 조미료 약간 첨가해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하게 하는 힘.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포장할 수 있는 힘.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대단한 능력(힘)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고스란히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잊지 못하고 생생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산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 우리 주변에 분명 망각하지 못해 괴로워하며 살고 있는 분들이 있음에 마음이 아프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 그 시절 그 노래를 정주행 했다. 지금은 사라진 '젊은이들의 축제'였던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수상 노래들도 찾아서 들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목청을 돋우며 불렀던 '바다새'란 노래는 아직도 입가에 맴돈다.

'어두운 바닷가 홀로 나는 새야~새야, 갈 곳을 잃었나 하얀 바다새야~!


언제 어디서 이런 노래를 듣게 되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술만 마시면, MT만 가면 , 이 노래를 그렇게 불러 제쳤다.. 이선희의 <J에게>,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 되어>,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 신해철의 <그대에게>.

제대로 아랄로그 겜성에 빠져버렸다.

한 때 tvN에서 하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그 시대를 지나온 나나 그 시대를 모르는 요즘 젊은이들이나 잃어버렸던 80년대, 90년대 감성에 빠져 레트로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래, 그때 저랬었지.'
'그때 저런 옷이 유행했었어? 정말 촌스럽다.'
'아 맞다. 그때 저런 영화를 봤었지.'
<1987년 영웅본색 영화포스터>

한 동안 모두 응팔,응사, 응칠앓이를 했었다.

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쌍문동이라는 동네의 골목을 보면서 낯설다는 생각보다는 내 어린 시절의 골목을 보는 것 같아 반가웠었다.



아빠의 전근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섬 생활을 접고, 처음 우리 가족이 자리를 잡은 동네는 인천의 숭의동이라는 곳이었다. 드리마 속 쌍문동 골목과 너무나도 닮은 우리 동네. 아니 그 보다 조금 더 낡은 골목이 있던 나의 어린 시절 그곳.

그 시절엔 학교가 끝나도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겨우 다녀봐야 피아노 학원 정도.

학교가 끝나고 학교 밖으로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놀거리였다. 학교 앞 골목에는 야트막한 문방구가 있었다. 우리는 그 문방구 앞에서 한참을 앉아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제일 싸고 양도 많고 오래 먹을 수 있는 돌사탕을 하나씩 사들고서야 문방구를 나왔다.

문방구에서 산 돌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낡은 철길이 있었다. 철길 초입에는 조그만 떡볶이 집이 있었는데 , 우리는 주머니를 뒤져 돈을 조금씩 모아 떡볶이를 사 먹었다. 밀가루떡에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만 들어간 그 떡볶이가 어찌나 맛있었던지. 지금 파는 떡볶이는 그때 그 맛이 안나 아쉽다. 떡볶이 한 접시에 어묵 국물은 덤. 우리는 그것만으로 너무 즐거웠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우리는 끝없이 재잘거렸고, 각자 집에 가방만 놓고 몇 시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금방 다시 골목에 모였다. 우리는 해가질 때까지 골목에서 사방치기, 숨바꼭질, 고무줄놀이, 소꿉놀이를 했다.

우리 집 앞에는 국수를 만드는 집이 있었다. 그 국숫집에 국수를 널어 말리는 날에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국숫발 사이를 살금살금 기어 다니며 떨어진 국수가닥을 줍기도 했었다.

우리 집과 담벼락이 바로 붙어 있던 옆집은 조그만 구멍가게였는데, 어린 시절 구멍가게는 참기 힘든 유혹이 너무 많은 곳이었다. 여름이면 돼지바, 껌바를 비롯해 각종 빙과류가 나를 불렀고, 겨울이면 호빵 기계에서 모락모락 나던 김과 달큼한 냄새가 나를 불러댔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 받아낸 50원을 들고 지척에 있는 그 구멍가게로 쪼르르 달려가 딸기맛 쭈쭈바를 손에 들고는 너무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누구네 집 현관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그러면 누구네 집 엄마든 상관없이 놀고 있는 우리에게 감자나 고구마를 쪄다 주셨었다.

골목의 시원한 자리엔 동네 어른들이 평상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각자 집에서 하나씩 들고 나온 먹거리를 나누며, 온종일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 사는 얘기에 온갖 참견을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구네 집 둘째가 이번에 결혼을 한다더라, 누구네 집 부부가 어젯밤에 소리소리 지르며 싸우더라는 얘기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모습은 응팔 속 덕선이 엄마, 정환이 엄마 그대로였다.

골목에 퍼지던 밥 냄새, 골목골목 진하게 내려앉은 어둠, 하나둘 씩 돌아가는 아이들, 이런 소소한 어린 시절 일상에 대한 기억에 살살 조미료를 조금 첨가하면 정말 근사한 나의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이런 나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 보여준 드라마가 '응답하라 시리즈'였다면, 나의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한 동네. 숭의동 골목길을 떠오르게 해 준 또 하나의 그림책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길상효 작가가 쓰고 안병현 작가가 그린 그림책 < 골목이 데려다 줄 거예요>.

요즘 아이들은 '골목'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마 '백종원의 골목 식당'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골목 상권 살리기', '골목 담벼락 벽화 꾸미기' 등 그 옛날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이제는 명소가 되어 사람들이 바글바글 찾아드는 그런 골목 말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골목은 고스란히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맞닿는다. 이 그림책은 바로 그런 골목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사라져 가는 골목을 되살리자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저, 골목이 있었던 이야기예요.
아직 어딘가에 이런 골목 하나쯤은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 시절 골목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따로 청소하는 사람이 없어도, 눈이 오거나 낙엽이 떨어지거나 쓰레기가 굴러다니면 누구든 먼저 나서서 치우는 우리 모두의 추억 공간이었다.

그림책 속에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늦여름에 새빨간 고추를 골목 가득 널어 말리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보인다. 작년 여름 아파트 주차장 한 켠에 자리를 잡고 고추를 말리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때는 골목 가득 고추를 널어 말려도 누구 하나 타박하는 사람 없이 오히려 고추를 밟을까 조심스레 피해 다녔었다. 하지만 주차장 한 켠에 고추를 말리던 할머니는 주민들 민원에 밀려 고추를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시다 주차장 환풍구 위에 겨우 자리를 잡아 고추를 말리셨다. 그런 인심을 구에게 탓할 수도 없으니 씁쓸하기만 하다.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 中>



골목은 인심 좋은 슈퍼집 아줌마의 둥그런 턱처럼 휘어지다가
갑자기 토라진 누나처럼 뾰족하게 꺾이는가 하면
끝도 없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다가도
연락도 없이 이사가 버린 친구처럼
뚝 끊어져 버리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쌩하니 양쪽으로 갈라졌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만나 하나가 돼요.


언제가 한 번 두 아들과 함께 숭의동 살던 동네를 찾아 간 적이 있었다. 내가 살던 그 집터에는 다세대 주택이 들어서 있었고, 국숫집도, 구멍가게도, 그 골목도 없었다. 참 많이 변해 있었다. 철길도 없고, 학교 앞 좁은 골목길 문방구도 없어졌다.

이제 그 시절 그 골목은 나의 기억에만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지만, 그 좁고 기다란 골목은 또 다른 모습과 추억이 되어 기억에서 기억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을까. 그 모양은 조금 다를지라도 여전히 거기 그 길에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휘어지고 꺾이고, 다시 이어지다가 뚝 끊어져 버릴지라도 또다시 갈라졌다 다시 만나는 인연처럼, 새로운 만남과 추억을 간직한 채 오래도록 누군가의 아름다운 기억될 것이다.

골목은 그냥 골목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으니까.


난 요즘 젊은 세대들은 무엇을 하면서 나름의 추억들을 만들고 있는지 많이 알지는 못한다.

다만 두 아들의 모습을 보며, 핸드폰이라는 새로운 놀 거리가 생겨, 노는 모습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성만은 서로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게임을 하면서, sns를 하면서, 마블 영화를 보면서, 그들도 그 나이와 그 시대에 맞는 감성을 갖고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 모양이 다르다고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가 서로 함께 하지 못할 것은 없다. 젊은 아이들이 즐기는 그 문화 안에도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을 테고, 기쁨과 슬픔과 아픔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골목이 갈라졌다 다시 만나는 것처럼 세대가 달라도, 성별이 달라도, 나라가 달라도, 사는 모습이 달라도 결국 사람 사는 이치는 거기서 거기 아닐까?

내가 골목의 추억을 간직하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모두 마음속에 '나만의 골목' 하나씩 간직하며 살아가길 바라본다.


이전 04화<그림책 별책부록> 네가 태어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