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별책부록> 네가 태어나던 날!!
그림책 <기찬 딸/김진완 글 김효은 그림>
엄마에게 가끔 내가 태어났던 그때의 얘기를 묻곤 한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던 날을 이렇게 기억하신다
"그러니까 그때 아빠가 학교 가시고 첫 수업 시작하기 전이었으니까 오전 9시쯤 됐을 거야. 이웃집 살던 구선생님 사모님하고 아줌마들이 애 나온다며 수업하는 아빠 불러오고 그랬었으니까."
1970년대, 보통 시골에선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경기도 광주 어느 시골 초등학교 사택 안방에서 태어났다.
"너는 어려서부터 까스러지기가 보통이 아니었어. 어찌나 하루 종일 빽빽 울어댔는지... 업고 가만히 있을라치면 칭얼칭얼 울어대서 업고 나서도 꼭 들썩들썩 얼러야 했다니까."
가끔 그때 얘기를 들으면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들었던 얘기를 또 물어보곤 했다.
우리 큰 아들 녀석도 종종 자기 육아일기를 보면서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엄마, 나 어디서 났다고 했지? 몇 시에 낳았어?"
큰 아이는 부천에 있는 혜림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출산 예정일이 일주일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어 조바심이 났었다. 병원에 가니 예정일이 지나 아이가 부쩍 커지면, 낳을 때 힘들다고 살살 산책하면서 며칠 더 지켜보자고 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출산 전날까지 무거운 배를 안고 뒤뚱뒤뚱 부지런히 공원을 걸었다. 그 효과를 본 것인지 8월 11일 아침, '이게 진통인가.'싶게 미미한 첫 진통이 시작되었다.
오전 10시쯤 되었을까, 통증의 강도가 좀 더 강해졌다.
출산이 임박하면 '이슬 비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게 뭔지 잘 와 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날 아침 화장실에 가서 '아, 이슬이 비친다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 싶은 징조가 있었다.
엄마에게 연락을 하고 천천히 병원 갈 채비를 했다.
소식을 들은 엄마는 놀라서 허겁지겁 택시를 잡아타고 금방 오셨다. 엄마는 애 낳으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며 돼지고기를 구워주셨었다.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아이를 위해서 먹어야 한다니 억지로 몇 입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주기적으로 진통이 오기 시작했고, 10분가량 진통 주기가 좁아지고 나서 병원으로 갔다. 그때가 저녁 8시쯤 되었던 것 같다. 병원이 집에서 멀지 않아 천천히 걸어 병원에 도착하니 자궁이 많이 열렸다며 산모 대기실에서 주기가 2~3분가량으로 좁혀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세상에나 이렇게 아플 수가!'
옆에서 손을 잡고 유열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노래를 불러주던 남편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졌다. 귀찮아서 나가라고 했다.
'세상에 난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 무슨 노래람!.'
진통이 점점 심해졌고 9시쯤 분만실로 들어갔다.
곧 진통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1분!
30초!
10초!
윽! 읖!
너무 아파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출산 시 엄마가 너무 소리를 지르면 아기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라마즈 호흡법인지 뭔지 '후~하~!'심호흡을 했다. 통증을 참으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데 간호사랑 의사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애가 태변을 먹었어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위험해요. 배 위에 올라가서 누르세요."
간호사가 내 배 위에 올라가 가슴서부터 아래로 배를 밀어 내렸다. 그렇게 더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참고 있던 입에서 절로 '악'소리가 났고, 그 순간 갑자기 밑으로 뭔가 '퍽~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느낌과 함께 간호사와 의사의 바쁜 움직임이 느껴졌다.
곧 아이의 울음소리가 났고, '예쁜 아드님입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들어와 탯줄을 잘랐다.
'세상에나~!'
아이의 모습은 가끔 꿈에 나타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가슴이 벅찼다.
3.8Kg!
신생아치곤 좀 큰 편이란다.
크거나 작거나 무엇이든 어떤가.
손가락 발가락 어디 한 군데 이상 없이 건강하게 태어났으니 그거면 됐다.
1998년 8월 12일 밤 11시!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나의 듬직한 큰 아들 '승연'이다.
어머어마한 출생 스토리는 아니지만 우리 승연이는 그렇게 무사히 엄마의 곁으로 왔고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엄마, 내가 어렸을 때 밤에 잘 안 자고 많이 울었어? 분유도 잘 안 먹고?"
큰 아이의 육아 일기장을 보니 아이가 많이 울었다는 얘기와 분유를 잘 먹지 않아 걱정이라고 여러 번 적혀 있었다.
맞다. 그때 큰 아이는 참 많이 울었었지. 그리고 잘 먹지도 않았었다.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서는 입에 음식을 물고 그 음식물이 삭아서 물이 될 때까지 물고 있곤 했었다.
"꿀떡! 삼켜야지. 봐. 엄마처럼 꿀떡!"
몇 번씩 꿀떡꿀떡을 외쳐도 아이는 요지부동이었었다.
'많이 울었던 거나 잘 안 먹었던 거나, 지금 생각해 보니 꼭 나를 빼닮았던 거였구나!'
가끔 남들이 하는 말로 '엄마 닮았네' 하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하는 짓까지 엄마를 꼭 빼닮은 아이를 보면 씨도둑질은 못한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난 탄생 스토리 하나쯤은 갖고 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생은 없을 테니까.
적게는 7개월에서 많게는 10개월 이상을 엄마 뱃속에 머물며 세상 나올 준비를 했을 것이고, 긴 터널을 꾸준히 걷고 걸어 이 세상에 온 것이 바로 우리 모두이다. 누구는 더 특별한 탄생 스토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누구의 탄생 스토리도 소중하지 않은 이야기는 없다.
김진완 작가의 시를 바탕으로 김효은 작가가 그림을 그린 < 기찬 딸>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은 바로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소박하고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진주역이 배경인 김진완 작가의 <기찬 딸>은 제목이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어 더 재미있게 읽힌다.
처음 그림책 제목을 보고 '기가 막히게 멋진 딸'이나 '기똥차게 대단한 딸'을 '기찬 딸'이라고 하는 건가 생각했었다.
물론 그런 의미의 <기찬 딸>이기도 하지만, 탄생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나면 '아 그래서 기찬 딸이구나 '할 것이다.
우리 엄마 이름은 다혜, 문다혜입니다.
귀가 얼어 툭 건들면 쨍그랑 깨져 버릴 듯한
겨울 어느 날이었어요.
'귀가 얼어 쨍그랑 깨져버릴 듯한 겨울' 얼마나 극심한 추위였는지 충분히 짐작이 갈 정도로 섬세한 표현이다. 그런 날 태어난 주인공 엄마의 탄생 비화.
"으윽...... 으윽..... 아이고 배야."
싸한 진통이 시작된 외할머니가 배를 감싸 앉았어요.
"보소,얼라가....나올라캅니더."
주인공의 외할머니는 어디에서 갑자기 진통을 느끼셨던 걸까!
70년대 보통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외할머니는 밭일을 하고 계셨을까!
안방에서 떨어진 양말을 깁고 계셨을까!
부엌에서 아궁이 불을 지펴 밥을 짓고 계셨을까!
안타깝게도 모두 아니다.
할머니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진통을 시작했던 것이다.
참 난감한 상황이다.
얼마 전 이 그림책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국에서 임산부가 1시간 반 가량 되는 병원으로 출산을 하러 가는 길에 택시 안에서 아이를 낳은 것이다. 택시기사는 침착하게 대처를 하고 가까운 경찰서에 아이와 산모를 인계해 무사히 병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럼 기차 안에서 진통이 시작된 외할머니는 어떻게 되셨을까!
<기찬 딸 中>다행스럽게도 기차 안의 사람들은 이 긴급한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간다.
공동체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기차 안에 산실을 마련하고, 인가에서 뜨거운 물을 얻어오고, 숨죽여 출산을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산모와 아이의 건강만을 기원할 뿐이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 날 기차 안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무사히 세상 빛을 보게 된 기차 안의 딸! 기찬 딸이 바로 주인공의 엄마인 '문다혜'이다.
"와하하! 나왔어."
"공주여, 공주!"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는데 기차 안에서 한몫 잡았구먼!"
"우리 얼마라도 보태, 애 엄마 미역 한 줄거리 해 먹입시더."
<기찬 딸 中>
귀가 툭 건드리면 쨍그렁 깨질 것처럼 추운 겨울날 기차 안에서 태어난 엄마의 탄생 스토리!
작가는 내 일처럼 힘을 모아 난관을 해결하고, 함께 기뻐해 주는 따뜻한 사람들의 마음이 있어서, 가난해도 서러워도 이 세상 제법 살만하다고 말한다.
귀하게 태어난 생명이나 그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리라.
몸만 건강하면 희망은 있다는 여장부 엄마!
기찬 딸! 기-차-안에서 태어난 기똥차게 씩씩한 외할머니의 딸인 우리 엄마 문다혜의 탄생 스토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이들을 위한 선물 같은 이야기이다.
내가 태어나던 날, 네가 태어나던 날, 세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박하고 영리하게 자라라는 부모님의 뜻을 받아 난 오늘도 생각하고, 꿈꾸고, 성장한다.
이 세상 어느 누구 소중하지 않은 인생은 없으니, 세상의 시작인 당신도 그렇게 힘을 내어 살아가길...
네가 태어날 그날 밤,
달은 깜짝 놀라며 웃었어.
별들은 살그머니 들여다봤고
밤바람은 이렇게 속삭였지.
"이렇게 어여뿐 아기는 처음 봐!"
정말이지, 지금껏 이 세상 어디에도
너 같이 어여쁜 아이는 없었단다..
그림책 <네가 태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지 中>
<네가 태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