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 죽은자와 산자,그리고 나를 위한 파반느
몇 년 전 여름, 난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 소식을 들어야 했다. 담담했다. 금방 해결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큰 걱정하지 않았다. 그동안 힘들게 일해왔으니 좀 쉬어도 된다고, 내가 벌면 된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런데 남편의 휴직기간이 점점 길어졌다. 나이가 많고 연봉이 높으니 쉽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크게 벌어 놓은 돈은 없어도 부족함 없이 꾸려오던 살림살이에 갑작스럽게 닥친 그 일은 솔직히 꽤나 큰 부담이었다. 나 역시 일을 하고 있긴 했지만 내가 버는 벌이란 것이, 4인 가족 기본 살림에 조금의 여유를 줄 수 있는 정도였으니.
긴축을 해도 기본 씀씀이가 크게 줄지 않았다. 나를 위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정말 아끼고 아꼈다. 그런데 생활비에서 겨우 몇 푼 줄어들었을 뿐 기본 유지비용은 전혀 줄지 않았다.
설상가상!!
남편은 선물처럼 내게 턱 하니, 빚을 안겨주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빚을... 기가 막혔다. 미쳤나 보다. 직장인이 도대체 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난 어느새 남편이 넘겨준 그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구상하고 있었다.
위기 극복력 갑!
회복 탄력성 갑!
결국 집을 담보로 대출을 내 급히 빚을 갚았다. 급한 불은 껐지만 없는 살림에 늘어난 대출이자는 생활에 큰 압박을 주었다.
곧 겨울이 다가오는데 큰일이었다.
당시 내 강의는 주로 학기 중에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겨울 동안은 원치 않는 강제 무급 휴가를 받아야만 했다.
겨울 동안 가정경제가 올스톱 상태에 돌입해야 할 심각한 상황이 된 것이다. 겁나고, 무섭고, 화도 나고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긴 겨울 방학이 코 앞에 닥쳤을 때 다행스럽게도 남편의 재취업 소식을 들었다. 정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남편의 월급은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개월의 실직 기간 동안 눈높이는 한 없이 낮아져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안도했다. 하지만 안도는 안도이고, 현실은 현실인지라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학원을 알아보았지만 방학 동안만 사람을 뽑는 일자리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언니와 얘기를 하던 중, 언니한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언니, 무슨 전화야?"
"보험회사 다닐 때 알던 사람인데 좋은 일 있다고 오라고 해서... 상조보험인데 어렵지는 않다네..."
"상조 보험? 그거 나도 할 수 있나? 몇 달만 하는 것도 가능해? 돈은 얼마나 번대?"
이것저것 재고 따질 틈도 없이, 그렇게 그 해 겨울 난 그곳으로 출근을 했다.
모든 것이 처음인 그때 그 일!
난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죽음에 대한 얘기를 했다. 죽어 갈 사람들에 대한 산 사람들의 준비에 대해 끊임없이 말했다. 가입하고 제휴카드를 만들어 한 달에 30만 원 이상만 쓰면 카드 혜택을 받는다며..., 할인을 받지만 장례서비스를 받지 않으면 혜택 받아 내지 않은 금액까지 만기시 백 퍼센트 돌려준다며.... 그뿐 아니라 돈을 내는 기간 동안 산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이렇게 저렇게 많다며... 가입만 하면 남는 장사라는 얘기를 쉴 새 없이 했다.
낯선 이들에게 전화로 끝없이 강권해야 하는 일! 난 그 일을 겨우내 했다.
마침 관심 있었다며 어설픈 내 권유에 선뜻 지갑을 여는 사람들!
'이런 전화 하지 마세요.'짜증을 내며 욕을 하던 사람들!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어요?'따지는 사람들!
'지금 나 빨리 죽으란 소리야?'소리 지르던 사람들!
'지금 바쁘니까 이따 3시에 다시 전화 주세요.' 해놓고 다시 전화하면 받지 않던 사람들!
물론 회사도 녹녹하진 않았다. 그런 얘기에 쉽게 물러날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런 전화를 받는 사람들이 어떤 얘기를 할지 이미 파악하고 그 얘기에 맞게 응대할 수 있는 다양한 버전의 매뉴얼을 가지고 있는 철저한 자본주의 시장이었다.
보험가입에 성공하면 그 사람 자리에 성공 개수별로 장미, 해바라기 꽃을 꽂아주던 그곳!
아침마다 수십 명이 모여 회의를 하고, 성공 시 받을 프로모션을 걸고, 다 함께 구호를 외치던 그곳!
팀별로 모여, 싸온 반찬으로 점심을 먹던 그곳!
난 그때 거의 매일 울었던 것 같다.
죽음에 대해 , 죽은 자들을 위해 , 산 사람들의 현명한 선택에 대해 얘기하면서 울었다.
하나라도 더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좀 더 풍족한 내 생활을 기대하며 열심히 전화기를 붙들고 있던 내가 안쓰러워 울었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닌데, 난 이 사람들하고 다른데, 나 혼자 재투성이 신데렐라인 것처럼 굴며 울었다.
그렇게 울며 울며 겨우 두 달을 버티고, 난 3월 어느 날 다시 온 봄소식을 들으며 그곳을 그만두었다.
처음엔 그곳에 다닌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콜을 하시던 그분들을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무시했었다. 난 그들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함께 일을 하고 밥을 먹으며 나눴던 그들과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그들 역시 무거운 책임감과 나름의 프로 의식을 가지고 일에 임하고 계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땐 내 감정에 겨워 그런 걸 느낄 겨를이 없었다.
오만하고 가난했던 영혼!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큰 경험이라고 그때 얘기를 소재삼아 글을 쓸 수 있으니 좋다. 짧은 시간의 경험이지만 그것도 지금의 나를 만든 밑거름이 되었나 보다.
죽어 갈 자들을 위해 산 자들이 죽음을 노래하던 그곳에서 지금도 열심히 전화기를 들고 있을 그분들에게 오늘은 더 많은 해바라기 꽃이 피길 바라본다.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이야.
아무도 너처럼 살지 않고 누구도 똑같이 살 순 없어.
그딴 소릴 지껄이는 순간부터 인생은 맛이 가는 거라고.
45억 명의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구엔 분명 45억 개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거라고!...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심리일 뿐이라고!
-박민규[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