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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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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오네 Jun 13. 2019

끝인 듯 끝이 아닌 너

이별 일기 6

by 선연(달이 참 예쁘던 밤)



며칠 후, 그는 내게 전화를 해 모든 게 다 자신의 잘못이라며 네가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나는 저번에도 이런 일이 우리에게 있었을 때, 그때도 당신은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번엔 진짜 깨달았다며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했고


난 저번 그때도 당신은 진짜 깨달았었고 그때도 마지막 기회라고 하지 않았냐 라고 물었다.




전화기를 통해 쏟아지는 내 말들이 마치 제삼자가 내뱉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분위기와 이런 주제로 우리가 전화통화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 구석탱이 한켠에서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너 되게 차갑다. 이렇게 차가운 줄 몰랐네."라고 말했고

또, 내 대답과 말투가 차갑다고 말했고

나는 그의 그런 말이 지금 여기에 어울리는 말인가?라고 생각만 했다.



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요즘 핫한 드라마 봄밤에서는 정해인(유지호 역)이 한지민(이정인 역)을 안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천천히 와도 돼요. 오기만 해.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까." 


드라마라서 그런가.





그는 내가 싫어하는 면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흡연가였고

그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술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으며

그는 키가 크지 않은 편이었다.

그는 체지방률상 통통과 뚱뚱의 경계에 있었고

그는 운동을 삶의 중요 가치로 두지 않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는 스포츠토토를 주변인들도 많이 하니까, 재미 삼아, 라는 이유로 즐겨했고

그는 소비욕과 과시욕이 평균 이상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보단 더 있었다.      


어쩌면 제일 중요한,

그의 친한 친구들은 내가 싫어하는 성향의 친구들이었다.

나는 '끼리끼리 논다'는 말을 믿고 살아왔으면서도 그에게만은 예외로 두려 했었다.

그는 내가 그 친구들과 놀면 싫어함을 알면서도 동네 친구들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계속 놀았다.

그는 데이트 계획 등을 세우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대부분 내가 계획했다.

난 그를 어떤 방식로든 챙겨줬고 이해해줬고 그는 점점 '받음'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다.     

나도 점차 '챙김'이 내 몸에 익숙해졌으니까.



하지만,

그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을 껴안을 만큼.

이것이 눈물겨운 사실이다.






그는 내 마음을 회유하며 내가 그를 다시 좋아할 수 있게 운동도 열심히 해서 살도 빼고 금연도 하고 내가 싫어하는 친구들과의 연도 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답을 다 알고 있으면서 나한테 왜 그랬던 걸까.




하루에도 열두 번,

그와의 헤어짐이

헤어진 것이 아닌 잠시 둘 사이의 휴식기 같은 느낌이 들다가

이번엔 진짜 헤어짐이며 헤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을 하고

이 느낌과 저 생각이 넘실 넘실 반복된다.


끝인 듯 끝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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