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편찮으셨다.
엄마는 당신의 엄마를 데려오셨다.
다리를 시술하신 할머니는 눕거나 앉아계셔야 했다. 엄마는 라디오를 부러 찾아다 사 오셨다. 신호가 딴 세상으로부터 전파되는 양 라디오는 새것임에도 소리가 지직거렸다. 엄마의 돌봄에도 어딘가 편치 않으신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내심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뭘까? 책장에서 그나마 활자가 큰 책들을 선별해 침대 옆에 살포시 놓아 드렸다. 컬러링북과 색연필을 드려 새로운 취미를 소개해 드렸다. 그저, 혼자 계셨던 시골집보다 함께 있는 우리 집이 더 못나지 않길 바랐다.
그로부터 또 며칠, 거실 바닥에 빨래를 널어놓고 앉아 할머니와 함께 빨래를 접었다. 조잘거리는 두 개의 입, 부지런한 네 개의 손. 갑자기 할머니께서 내게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그건 어떻게 접는 건가?"
부끄러움과 호기심, 궁금함의 목소리였다.
"아, 이거요? 되게 쉬워요~"
내 손에는 팬티가 들려 있었다. 유튜브로 배워 실생활에 적용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였다. 풀어지지 않는 팬티 접는 방법이라고 해야 할까. 이 방법이면 성별 무관 어느 팬티라도 깔끔하게 접을 수 있다.
개던 팬티를 도로 풀고 할머니께 시범을 보였다. 내 손에는 나의 팬티가, 할머니 손엔 나의 엄마, 즉 당신 딸의 팬티가 놓였다. 순서를 맞춰 함께 접었다. 내 눈과 손을 번갈아 보는 할머니의 눈동자는 깊이를 모를 만큼 까맣게 반짝였다.
나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영상 속 어떤 이의 손만 보며 팬티 접기를 배웠고 이젠 내 인생의 몇 곱절을 살아오신, 하물며 강에서 물을 길어 와 집안일을 해야 했던 할머니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드렸다.
그녀는 단숨에 방법을 익혔다. 그러곤 돌돌 말린 팬티를 바닥에 굴리며 개구쟁이처럼 소리 내 웃으셨다.
그날 이후 어느 연휴 날 밤, 할머니 집 거실에 앉아 가족들과 TV를 보고 있었다. 무심코 난 할머니를 보았고, 그녀의 손에서 우리의 팬티 접기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