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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오네 Jan 31. 2023

감사와 겸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매 순간을 지각하며 살고 싶다. 아니다 어쩌면 정신병이 될런가. 오랜만에 듣는 클래식 음악. 뭐 그리 바빴다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본 적 없다며 필리핀엔 그런 "고급" 공연은 없다는 친구에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추천해 주며 돌아왔다.






1장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감사함에 둘러싸인다. 가만 보면 이 마음은 겸손에 가깝다. 음악 앞에, 삶 앞에 겸손해진다. 뭐 그리 종종 댈 일일까. 이 악물고 눈 부릅 대며 살아봤자 누구도 예외 없이 우린 모두 똑같은 흙이 될 처지다.






클래식이 위로한다. 과하게 느껴지려나. 나도 남의 글자로 볼 땐 그랬다. 하지만 글로는 이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어 서운할 정도로 진심이다. 특히 교향곡이나 협주곡을 들을 때면 걱정과 시름은 깃털이 된다.






2023년에 살아 감사하다. 엄마가 겪었던 IMF, 할머니가 겪었던 6.25 전쟁보단 지금이 낫지 않을까. 더 멀리 나아가 세계대전시대, 항생제 개발 전 시대, 노비, 6등품, 흑인 노예 같이 신분제도가 있었던 과거보다는.






휴대폰 하나로 필리핀 친구와 나는 연결된다. 과거 핀란드 공연 영상이 몇 번의 클릭에 언제 어디서든 무한 재생된다. 청년실업, 인플레이션, 연금에 대한 우려, 저출산, 환경 문제, 모두 맞다. 그렇다면 난 클래식 음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려나. 아무렴, 그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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