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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오네 Feb 10. 2023

젊음을 먹고 자란 아이

조용한 반복에 대한 헌사

퇴사 이후 많은 시간 부모님과 지냈다. 




아버지는 규칙적이시다. 일상에 순서가 있다. 특히 출근 루틴은 정확하다. 그의 하루는 너무나도 같아서 보는 내가 싫증이 날 정도다.




신혼 시절부터 ‘잠 못 잤다’는 말을 입에 다셨다는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오래도록 씻으신다. 이후 방문을 닫아 잠근 채 무얼 하시는지 분주하시다. 그다음 옷을 말갛게 차려입으시고 부엌 식탁에 앉으신다. 아침을 드시곤 재차 방에 들어가신 뒤 특정 시간이 되면 현관문으로 향하신다.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종종 늦잠을 자도 되지 않냐는 질문에도 어머니는 늘 아버지 아침 식사를 챙기신다. 정작 본인은 아침을 잘 드시지 않는데도 말이다. 서양식에 가까운 상차림일지라도 오늘은 어떤 걸 드려야 하나 숙명 같은 숙제가 매일이다.




집을 나서야만 하는, 본인께서 정하신 특정 시간이 되면 아버지는 방에서 나오신다. 기다렸던 어머니가 그에 맞춰 아버지 뒤를 쫓는다. 무거운 발걸음을 못내 떼어 출근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우리 신랑 오늘 멋지다”라며 애교 섞인 칭찬을 건넨다. 그러곤 현관에서 신을 신는 아버지의 매무새를 손봐주며 “오늘도 잘 다녀와요” 안녕을 빈다. 뽀뽀와도 같은 사랑의 인사는 출근길 마지막 단계로 빠트리는 법이 없다.




월화수목금이 똑같았다. 이 일상이 나의 살과 피를 만들었을 것이다.




최근 아버지에게 루틴이 혹시 귀찮지는 않으시냐고 여쭤봤다. 아버지는 답하셨다. “한번 엉클어지면 원복이 쉽지 않다” 어머니보다 아버지의 기질을 닮은 나는 그의 고백 아닌 고백에 고개를 끄덕였다. 습관을 지키는 귀찮음보다 다시 습관으로 돌아갈 때의 어려움이 더 큰 것이다. 이제 습관을 깨야 하면 오히려 불안하신 듯 지금이 그에겐 외려 알맞아 보였다.




어머니는 생활 중 “에이, 이 정도로 뭘”이라는 말을 잘 쓰신다. 처음엔 낙천적인 성격이셔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 안엔 돈을 벌지 않는다는 자격지심이 깔려 있었다. 경제활동을 하는 남편에 비해 자신의 집안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이다. 결혼 전엔 어머니도 직장인이셨다. 나와 비슷하게 만 5년 정도 일하시곤 그만두셨다. 어머니는 약간의 도피성으로 결혼을 선택하심을 인정하며 내게 여자도 직업이 있어야 함을 퇴사 전에도 후에도 강조하신다. 그러면서 ‘할 건 해야 나중에 할 말이라도 있다’는 논리로 아침 저녁상을 정성껏 차리신다.




어느새 앞자리가 바뀐 내 나이만큼 이젠 자연스레 그들에게서 노년 부부의 향이 난다. 어쩔 땐 무척 지겨웠을 것이고 어느 땐 더없이 힘겨웠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티 내지 않고 묵묵히 영위해온 삶에 눈이 시리다.

이 마음도 언젠가 잊혀 질까? 다시 한번 더 새겨본다.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키워주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박혜숙, 이용문,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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