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하기:목재 재단
나무에 대한 끝난 후, 목재를 재단하는 기계의 원리에 대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기계의 원리까지 알아야 하나?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 작동되는 지를 알아야, 필요한 단계에 적절한 방식으로 기계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작동원리를 알지 못했더라면, 순서를 외우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중용 23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목재를 만지러 가는 길. 내 전용 분진 마스크를 받았다. 목재를 절단하거나 가공하는 단계에서 분진이 생기기 때문에 특수 마스크는 필수 용품이다.
이 마스크는 마치 먼 옛날, 미래를 그릴 때 다소 비관적인 어린이들이 대기오염으로 숨 쉴 수 없는 지구를 상상하며 그려낸 것 같이 생겼다. 코시국 핫 아이템 KF94 마스크보다 더 강력해 보이는 이 아이는, 생각보다 얼굴을 옥죄어 눈을 감아도 감을 수 없는 기이한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뒤집으면 코끼리같이 생긴 것과 다르게 착용감은 좋지 못했다.
다음은 가죽 앞치마를 입을 차례. 뭔가 사용한 흔적들이 잔뜩 남아 거친 느낌과 든든한 무게감이 마음에 들었다. 묵직한 앞치마를 두르니 전쟁에 나가는 장수라도 된 듯 비장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무언가 제대로 해보겠다는 양 앞치마와 마스크를 꼭 조이며 선생님의 뒤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목재실로 향하던 순간의 설렘은 아마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자신의 작업에 몰두한 사람들이 멋있기도 하고, 나도 그 세계에 한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이 꽤 벅찼던 순간.
목재를 보관하는 곳.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공기와 나무 향이 훅 들어왔다. 순간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아직 어떤 것이 되기 이전의 나무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 색도, 길이도, 두께도 다른 목재들을 보며 어떤 가구가 될지, 누군가의 정성을 받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 많은 나무들 중, 나의 것은 무엇일지 긴장되고 설레기도 하고.
나무를 쌓아두는 방식으로 보관하기 때문에, 원하는 나무의 종류와 너비 등을 알기 쉽도록 분필로 간략하게 써 두었다. 사진에 보이는 W는 walnut의 줄임말로 호두나무를 뜻한다. 그 옆은 10ft와 같이 나무의 단위를 표기한 것. 이 순간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 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 주에 공방에 가면, 다시 한번 선생님께 물어보아야겠다. 이래서 사람은 복습이 꼭 필요하다..
내 첫 작품은 스툴. 그리고 목재는 월넛으로 결정했다. 왜인지 모르게, 나무다운 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진한 색은 입히지 않고 싶어,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그것도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완성되면 손님에게 내어주거나, 내가 키우는 반려식물들을 예쁘게 올려놓을 것이다.
귀한 목재는 알뜰하게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치수를 재어 사용한다. 스툴의 경우 선생님이 만들어두신 틀이 있어, 이것을 사용하여 필요한 만큼 절단하기로 했다. 분필로 대략적으로 필요한 너비와, 목재가공을 위해 절단할 부분을 표시했다. 서걱거리는 분필의 느낌이 좋았다.
이 무시무시하게 생긴 기계의 이름은 슬라이딩 각도 절단기.
힘은 좋지만 그에 반해 섬세함은 부족하여 나무를 절단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기계이다. 나무도 뚝딱 잘라내는 아이라 내 손가락쯤은 두부 자르듯 잘라낼 수 있을 것 같아 겁이 났다.
잔뜩 겁먹은 나의 눈망울을 알아채셨는지, 선생님께서 안전수칙만 제대로 지키면 걱정하는 사고는 방지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대부분의 사고는 익숙해질 때 일어난다. 마치 초보운전자보다 익숙해진 운전자들의 사고가 더 많은 것처럼. 한눈팔지 말아야지, 너무 쉬워서 눈 감고 할 수 있을 때에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하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나무를 절단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집진기를 켜고, 안전장치를 내리고, 나무에 칼날이 닿기 전에 레버를 내려 절단기를 작동시킨다. 한 번에 자르겠다는 욕심을 내지 말고, 두 번에 걸쳐 부드럽게 자른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칼날 부분을 움직인다. 적절한 너비로 두 발을 벌려 안정적인 자세로 스스로를 지탱한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처음 기계를 쥐는 순간,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에 조금 놀랐다.
겁이 없는 듯 소심한 부분도 있어서 주춤거리다 이내 적응하고 배운 대로 절단기를 움직이고 레버를 내렸다. 순간 굉음과 함께 칼날이 돌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절단기를 내려 나무에 닿는 순간을 기억한다. 손으로 전해지는 가벼운 진동과 날리는 톱밥, 그리고 단단했던 나무가 무라도 되는 것처럼 부드럽게 잘려나가는 그때, 미묘한 쾌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욕심을 내어서는 안 되었다. 천천히, 부드럽게. 절차를 지키면서 내 두 발로 단단히 땅을 밟으며 나무를 자르는 그때, 시끄럽고 먼지 날리는 주변과는 달리 내 마음은 많이 평화로웠다.
원하는 크기도 목재를 절단했다면, 다음은 수압 대패.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손의 힘을 사용하여 대패질을 하는 기계다. 칼날이 밖으로 보이지 않아서인지 슬라이딩 각도 절단기에 비해 크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데, 사실 수압 대패가 더욱 위험한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절단기로 절단된 인간의 어떤 말단기관, 예를 들면 손가락은 붙일 수 있지만 이 기계와 같은 경우에는 일말의 희망도 없이 조각 조각나 버릴 수 있기 때문. 그래서 더더욱 안전수칙을 잘 지켜야 한다.
기준면이 되는 앞 정반과 조절이 가능한 뒷 정반의 차이만큼 깎여나가는 원리로 다리미같이 생긴 기구를 통해 나무를 슬그머니 밀어주면 된다. 직접 손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힘의 방향 때문에 생각보다 나무가 뒤로 밀리기 쉬운데, 나무가 튕겨져 나간 자리에 손이 자리할 경우의 일은 상상에 맡긴다.
수압 대패는 목재를 다듬는 일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데, 그것은 바로 '기준면'을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힘은 일정하지 않아서 한 면을 다듬고, 이를 뒤집어 평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자동 대패라는 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깎아주는데, 제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어주는 기계라 할지라도 기준면이 바르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어떤 일이든, 기준을 제대로 세우고 그것을 확고히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나무를 다듬으며 또 배운다.
수압 대패로 기준면을 잘 다듬은 후에는 자동 대패로 여러 번 목재를 다듬어주는 작업을 한다.
이 역시 정반을 조정하여 목재를 다듬는 원리인데 수압 대패와의 차이가 있다면 자동으로, 또 반복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 대패라고 해서 원하는 만큼 훅훅 깎아내릴 수는 없다. 성미 급한 나 같은 사람은, 정반을 훅훅 조절해서 원하는 만큼 지정해두고 한 번에 깎으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목공에서만큼은 그럴 수 없다. 천천히, 그리고 품을 들여 조금씩 조금씩 깎아 나가야 한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게 내가 원하는 두께가 될 때까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선생님은 '급하다고 좋을게 하나 없고, 빠르다고 좋을게 하나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언제부턴가 빨리 무언가를 하는 것이 대단한 것, 아니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요즘 사람들의 잣대와는 퍽 반대되는 이 말이 좋았다. 그래, 욕심대로 빨리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
그리고 돌아와 배운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복습했다. 단순해 보여도 생각할 거리가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의 기억력을 크게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손으로 하나하나 정리해보았다.
공방에서 맡은 나무향을 기억하며, 하나라도 잊지 않겠다는 듯이 글씨를 꾹 꾹 눌러쓰며 첫 목공 수업 마무리.
마지막은 에너지 넘치는 공방의 댕댕이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