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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Jun 18. 2018

수박 먹으면서 단막극 한 편 어때요?

달콤한 여름 밤 같은 사랑 이야기, <미치겠다, 너 땜에!>


박수칠 때 떠날 수 있는 매력, 단막극

나는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끝까지 보고 싶었던 작품은 손에 꼽는다. 한 편에 6-70분씩 되는 이야기를 16부작 이상 보는 건 너무 많은 시간이 든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은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중반을 너무 질질 끌거나 후반에 뜬금없이 새로운 갈등을 넣는다. 그래서 시작은 창대 하나 끝은 미약한 용두사미 드라마가 많다. 세상에 재미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 긴 시간 동안 질질 끄는 TV화면만 들여다 볼 수 있겠는가? 마음 같아선 우리나라에도 러닝타임을 줄인 4부작, 8부작, 12부작 드라마가 많아졌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단막극이 좋다. 하고 싶은 이야기만 보여주고 빠질 수 있기 때문에 퀄리티도 높은 편이다.

마침 지난 5월, MBC에서 여름 밤에 딱 어울리는 달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단막극이 나왔다. 처음에는 ‘또 남사친 여사친이야?’라는 생각에 큰 기대 없이 봤다. 하지만 따스한 화면 색깔에 한 번, 감성적인 연출에 두 번, 매력적인 배우에 세 번 크게 치이고 어느 새 훈훈한 미소로 마지막 회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흔해빠져서 좋다!

<미치겠다, 너 땜에!>는 소소한 일상의 단면을 극대화 한 이야기다. 친구로 지내던 여자와 남자의 감정을 촘촘하게 들여다 본다. 16부작을 이끌어 가기 위해 억지로 넣는 충격적인 반전이나 숨겨진 비밀 같은 거 없다. 그저 옆 사람 이야기처럼 아기자기하고 공감되는 이야기. 그뿐이다. 담백하다.

16부작을 이끌어 가야 하는 드라마는 아무래도 끝까지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자극적인 설정을 넣고 수많은 떡밥을 뿌리지만 단막극은 깔끔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끝낼 수 있으니까. 실제로 현솔잎 PD도 “좀 흔해빠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폭풍 같은 로맨스가 우리 일상에 얼마나 있겠나. 우리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렸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감정을 잘 살린 연출

이 드라마의 장점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세밀한 감정 묘사다.

나는 인물의 감정이 깊게 전해지는 드라마가 좋다. 사건이 별거 없더라도 감정이 이해되어야 계속 볼 수 있다. <미치겠다, 너 땜에!>는 인물의 표정을 길게 잡아 여운을 줬다. 인물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감정이 이입 된다.


2화의 골목길 장면은 약 3분 간 컷 없이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를 그대로 화면에 담아낸다. 드라마에서는 고정된 화면을 길게 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신선했다. 시점이 고정되니 자연스레 인물에 집중할 수 있어서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당연히 후의 설렘도 배가 되었다.


그림을 활용해 인물의 감정을 짚어준 대목들도 인상 깊었다.

그 중에서 특히 가장 와 닿았던 그림은 ‘박힌 마음’이다. 친구에게 박혀 산산조각 난 마음을 길에 박혀버린 구두에 비유한 그림인데, 참 직관적이면서도 예쁜 표현이다.




내 얘기로 만들어주는 배우들

사랑 연기가 가장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렵다. 사랑은 흔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여기도 사랑, 저기도 사랑이 넘쳐나는 가운데 ‘바로 이 사랑’에 눈길이 머물도록 하려면 감정의 결이 세밀해야 한다. 너무 빨라서도 안되고 너무 느려서도 안 된다. 눈 빛 한 번, 입 꼬리 하나로 사랑을 쌓아가야 한다. 감정이 엉키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미치겠다, 너 땜에!>가 매력적인 이유는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특히 이유영(한은성 역) 배우가 눈에 띄었다. 가족 같은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사랑, 불안정한 직업과 엉망진창인 인생에 대한 통탄 등이 얽힌 복잡한 심경의 은성을 부담스럽지 않게 잘 표현해냈다. 덧붙여 방심하면 훅 들어오는 그녀의 사랑스러움이란..!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

※개취주의

포근한 봄 밤과 시원한 여름 밤 사이의 설렘 같은 단막극, <미치겠다, 너 땜에!>.

두 시간 정도 푹 빠져서 볼만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제목이다. 처음에 ‘볼만한 드라마 뭐 있나?’ 하며 포털을 돌아다니다가 이 제목을 보고 기겁했던 기억이 있다. 뭔가 씩씩한 캔디같은 여자와 차가운 테리우스 같은 남자가 등장하는 통속적 순정만화 느낌이랄까? 참 안 땡긴다. 그런 편견에 대한 반전을 노리는 거라면 몰라도 내용에 맞게 좀 더 감성적이고 알록달록한 제목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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