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運命)의 주인(主人)과 운명의 하인(下人)

운명의 주인(主人)으로 산다는 의미

by 오월의 푸른 바람


” 지명자불우(知道者不惑) 요 지도사불수(知命者不憂) “

: 명을 아는 자는 근심이 없고, 도를 아는 자는 걱정이 없다



운명(運命)이 있다. 없다 “는 논쟁은 오랜 시간 수많은 의견과 논점의 변화를 겪으며, 아직도 절대적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있다고 믿으면 있을 수 있고, 없다 믿으면 그리 살면 그만이다. 때로는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이 점술가에게 예견된 일을 만나게 된다면, 운명을 믿게 되는 시기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운명의 정의와 운명론에서 예견된 사실의 범주를 무시하고 판단하면, 논쟁과 어울리게 되는 것이다.


성경 말씀으로 하나님의 절대 가치를 믿거나, 부처의 깨달음이 초월적 삶의 기준을 만든다 해도 자신의 운명을 변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기독교에는 ”내 안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고, 불교에서는 ”내 몸이 곧 법당이다 “라는 말이 있다. 내 안의 존재하는 하나님의 성령이나, 부처의 불성 존재하지만, 자신 스스로 믿음을 찾거나, 진리를 구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해석하고 싶다.

운명론을 공부해 가며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되는 문장이 있다. 도덕경에 ”화 속에 복이 있고, 복속에 화가 있다“(禍兮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는 말이다. 음양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동양철학의 음양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의미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음(陰)과 양(陽)은 서로 공존하며, 변해가고, 상호 작용하며, 움직이는 에너지로 설명된다. 고정된 상태가 아닌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음과 양이란 이원론적 해석으로 보이지만, 이원적 의미의 끊임없는 변화는 0과 1의 변화처럼 수많은 상황이나 인연, 사건으로 운명을 만들게 되고, 이러한 변화를 만나게 되는 일을 운명이라 부르게 될 수 도 있다.


”화속에 복이 있고 복속에 화가 있다 “는 말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고, 즐거움 속에서도 근심이 있다는 의미로 사랑하는 인연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그 인연으로 겪는 어려움은 찾아오게 된다. 또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변화와 상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관계의 변화에 적응하여,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가는 지속적인 시간이 삶이고, 운명이다. 사랑하는 자식이 생기면서 삶의 행복감이 충전되지만,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의 무게가 무거워지게 되는 것처럼, 음과 양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고정되지 않으며,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게 된다. 사랑하는 마음과 무거운 마음이 둘이 아니며, 이런 마음이 변화를 겪고 있는 과정 속에 살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행복감만을 얻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든 기뻐할 만한 일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행복한 시간, 좋고 귀한 것만 얻으려 하고, 불편한 마음, 인내하고, 변화를 수용하려는 마음을 피하려 한다면명의 주인(主人)이 아닌 운명의 하인(下人)으로 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 된다.

음(陰) 속에 양(陽)이 있고, 양(陽) 속에 음(陰)이 있다.

: 이것이 있으니, 저것도 있고, 이것도 없으니, 저것도 없다




*사람들은 행복과 불행은 모두 운명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운명은 우리에게 그 기회와 재료와 씨를 제공할 따름이다.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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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운명이란?

이미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을 경험하게 되는 것인가? /

아니면 타고난 개인적으로 성향으로, 상황이나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일까?

지금의 순간에 나는, ”운명의 고정성과 개인의 대응성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단지 개인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에 불과하다. 타고난 신체와 부모, 성격이나 환경 등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을 만나게 되지만, 이에 반응하고 대응하는 즉,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의식활동이 미래를 만들어 간다고 보는 것이다. 어쩌면 무의식이나 에고, 자아라고 불리는 타고난 본성을 사용하여 삶을 살아가지만, 개인의 재미와 의미, 가치, 관계를 추구하려고 본성을 통제하는 노력 또한 우리의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운명의 상황에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문제에 고민하게 되지만, 문제의 해결의 수단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 운명(運命)의 주인으로 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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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당신이 성취해야 할 당신만의 특별한 운명과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 토니 로빈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만의 특별함이 있다. 요리를 잘한다거나, 운동을 좋아하고, 노래를 잘한다거나, 글을 쓰는 것이 즐거운 사람도 있다. 타인과의 공감이 쉬운 사람, 힘들고 어려운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삶도 있다. 아무런 취미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지는 시기도 있고,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하고 싶은 시간도 만난다. 결과를 예측하고 성과에 대한 기대를 버리면, 자신의 순수한 욕구를 조금 더 찾기 쉬워진다.



타고난 운명의 본성은 기질을 만든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삶을 살아가는 방법, 자신만의 리듬을 알 수 있게 된다.


봄에 태어난 사람재미가 있어야 좋아한다. 재미라는 가치를 수단으로 행위하는 일이 행복하다. 초 봄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는 게 재미가 없어”, 재미있는 일 있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재미있는 일을 찾거나 하는 일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어지면 흥미를 잃게 된다, 봄생의 연애는 다양한 재미가 있고, 새로운 변화가 많으면 설렘을 만들고 행복해진다.

여름생“의미”를 찾게 된다. “무슨 의미가 있어? ”왜 해야 되는지를 묻게 된다. 그 의미에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기질이 있어서 의미를 찾게 된다. “하얗게 불태웠다”라는 말은 여름생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여름생의 연애는 열정적이지만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여행 같은 감정으로 시작되고 이어진다. 의미를 놓치면 번아웃- Burnout 이 오기도 한다

가을생 가치를 추구한다. 만나는 사람이나, 물질, 상황에 가치를 분별한다. 그래서 가을 생이 부자가 많다. 집도 꾸미고, 자신도 꾸민다. 물질적 가치의 혜택을 누리고 싶고, 자신의 가치를 더 돋보이기 위해 좋은 차를 타거나, 좋은 옷을 입는다. 봄, 여름생이 여행에서 얻는 감정에 집중한다면, 가을생의 여행은 멋진 장소를 다닐 수 있는 삶을 소유했다는 가치가 행복을 만드는 것이다. 유명한 곳도 가봤고, 좋은 것도 가져봤다는 가치에 삶의 기준이 있는 것이다.

겨울생관계 지향적이다. 누구와 알고 지내는 것이 삶의 힘이 된다. 누구도 알고, 누구누구와도 친하다고 이야기하면, 겨울에 태어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겨울생이 모처럼 전화 오면 부탁이 있거나, 관계의 친밀감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부탁이 있더라도 직접 말하지 않는다. 친밀감을 확인한 후에 간접적으로 부탁한다. 겨울 생의 여행은 누구와 가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와 함께하면, 더 안전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정체성이 삶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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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는 4계절이 있고, 운명학에서도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4계절이 있다. 봄, 봄, 봄, 봄 일수도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될 수 도 있고, 4계절을 모두 가질 수 도있고, 한계절, 두계절, 세가지 계절로 중복되어 태어나기도 한다. 타고난 기질이 섞여서 기질을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일이 속하는 계절의 기준이 가장 강하게 작용한다.


재미있게 살거나, 의미를 찾아서 방황할 수도 있다. 가치를 추구하거나, 관계 속에서 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아도 좋다. 하지만, 자신만의 기질을 알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살아가는 것이 운명의 주인

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기준,기질로 살아가는 삶은 운명의 하인(下人)으로 살게 되는 것이며, 자신만의 재미와 의미, 가치와 관계에 삶의 기준을 알고 그 길로 살아간다면. 운명의 주인(主人)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이 순간의 나는 믿는다.



*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요, 나는 내 마음의 선장이다. - 윌리암 어네스트 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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