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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Jun 17. 2018

버킷리스트 풍경을 찾아, 카파도키아

터키여행, 이스탄불-카파도키아-파묵칼레-에페수

비슷한 듯 다르게 생긴 바위산들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어디에 눈을 돌려도 사진 속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찰흙으로 조물조물하다 산이라고 만들어놓고 손가락으로 군데군데 꾹꾹 눌러 구멍을 내놓은 것 같은 모양의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야외 박물관 표지판을 따라 그 풍경 속을 걸었다. 가는 길 양 옆으론 올라가보고 싶게 생긴 바위산들이 여럿 있었다. 길은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지만 또 들어가지 말라고 막아놓지도 않은 곳들이었다. 망설임을 내려놓고 암벽 등반을 하듯 올라가 과거 누군가 살았을 그곳에 당당하게 침입했다.      


자연에 깎이고 사람 손에 파여 만들어진 집. 내가 묵고 있는 돌집을 떠올리며 여기도 누군가 살았던 곳은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암사동 유적지처럼 설명이 적혀 있지 않으니 이곳은 그냥 내가 상상한 대로의 공간이 되었다. 때로는 너무 명확한 것보단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즐거움을 준다.


땡볕을 한참 걸어 야외 박물관에 닿았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살면서 지은 교회 중 30여개가 현재 개방되고 있다. 내부 프레스코 벽화 등의 특징에 따라 암굴교회, 어두운 교회, 뱀 교회 등 이름이 붙여진 교회들을 둘러봤다. 가이드북에서 찢어온 서너 페이지 설명이 길잡이가 됐다.        


여러 가지를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 기억에 남은 건 눈이 훼손된 벽화뿐이었다. 동굴 천장에 있는 벽화를 지워내기 힘들었던 박해자들은 돌을 던져 그림을 망가뜨렸다. 특히 눈을 집중 공격했다. 벽화는 복원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는 느낌을 풍겼다. (방문 당시 내부를 보수 중인 교회도 있었다. 아예 손을 놓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 성화를 그리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아 그대로 둔 것인지, 아니면 박해의 역사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보존’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터키에서 만난 기독교 유적들은 이상하게 낡고 허름해보였다. 





조금 먼 산책길     


파샤바 계곡에 가기 위해 숙소 근처 정류장에서 돌무쉬를 기다렸다. 돌무쉬는 봉고차 크기의 작은 버스다. 자동차를 처음 타보는 게 아닌데도 새로운 곳에 가서 그곳의 교통수단을 처음 이용할 때면 늘 긴장됐다. 운전기사가 내릴 때를 알려줄 거라는 것도, 구글 GPS로 보면서 목적지를 확인하며 갈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괜히 그랬다.      


버섯모양 바위들이 늘어선 풍경 덕에 파샤바 계곡은 ‘스머프 마을’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전에 올라갔던 바위산과 달리 제법 관광지 태가 나는 곳이었다. 입장료는 없었지만, 기념품 가게와 아이스크림 노점, 낙타 라이딩 호객꾼들이 ‘여기는 관광지입니다’ 말하고 있었다. 관광버스가 연신 사람들을 쏟아내는 통에 과거 교회였을 곳에 올라가기 위해 한참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마을 어귀로 나와 이번엔 조금 능숙하게 돌무쉬를 타고 우치히사르 성채로 향했다. 과거 이교도 취급을 받았던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요새 가운데 하나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해 공격을 받았을 때 방어하기 좋았다고 한다. 바위산을 뚫어 요새로 만든 이들의 위대함과 그렇게까지 신앙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간절함을 떠올리는 것도 잠시, 생각보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느라 곧 무념무상인 상태가 됐다.     

  

꼭대기에 도착하니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발아래엔 전날 하루 종일 걸어 다녔던 길들이 점으로도 느껴지지 않을 광활한 대지가 펼쳐져있었다. 각기 개성을 드러내는 기암괴석과 ‘세상의 중심’으로 불리는 호주 울룰루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바위산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바쁠 게 없는 나는 해가 지길 기다리며 한참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온 사람들이 이내 탄성을 지르며 풍경을 감상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러다 어둠 속에 산을 내려갈 일이 덜컥 겁이나 하산을 결정했다.      


성채 입구에선 성채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 한 눈에 성채를 담고 싶어 비탈길을 따라 조금씩 내려갔다. 좀 더 내려가면 더 완벽한 앵글이 나올 것 같아 내려가다보니 어느새 올라가는 것보단 내려가 길을 찾는 게 나은 지경이 됐다. 무성하게 이리저리 자란 풀숲 위로 누가 지나간 듯 뉘어져 있는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물들어가는 성채 사진을 찍느라, 바닥에 똥을 밟지 않으려 조심하느라 길 끝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지 걱정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있었다.      


다행히 길 끝에 자동차도로가 나타났다. 길가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마을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곳이 이곳이라고 했다. 버스를 기다렸다 타기만 하면 되는데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위에서 볼 때와 또 다른 매력의 기암괴석. 도로 옆으로 펼쳐진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마을까지 걷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스쳐만 가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풍경들을 눈에 하나씩 담으면서. 




카파도키아에 온 이유       


알람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알람을 끄고 조심조심 나갈 채비를 하는데 옆에서 알람이 울렸다. 그도 바로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문을 열고 나가니 별이 총총 떠있었다. 날씨 때문에 취소될 것 같지는 않은 느낌. 뒤이어 어둠 속에서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곧 호스텔 앞으로 버스가 하나 둘 들어왔다. 가이드가 이름을 호명하면 사람들은 하나 둘 차에 올랐다.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이 밥 먹으러 오라는 엄마 부름에 다 가버리고 나만 남은 것처럼, 공터엔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픽업 시간이 지나도록 내가 타야 할 투어버스는 오질 않았다. 늦을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지만 여기까지 와서 해 뜨는 걸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에 불안해졌다. 이른 새벽, 염치 불구하고 리셉션에서 단잠에 빠져있는 호스텔 주인을 깨웠다. 이스탄불에서 예약하며 받은 예약증을 보여주며 연락을 부탁했다. 투어외사가 전화를 받지 않아 몇 번이나 더 건 뒤에야 연락이 닿았고, 날 데리러 온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어둠을 뚫고 출발한 버스는 5분도 채 달리지 않고 한 호텔에 멈췄다. 그곳에서 먹는 둥 마는 둥 아침식사를 하며 다시 기대감을 채워 넣었다. 곧 버스는 열기구들이 출발 준비 중인 곳에 도착했다. 열기구를 보고 있자니 설렘은 곧 긴장으로 바뀌었다. 몇 달 전 카파도키아에서 벌룬 투어 중 열기구가 하강하다 강풍에 밀려 전깃줄과 접촉하면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때 40명 가량 다쳤단 기사를 본 터라 불안감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돌아기엔 이미 늦은 상황. 모든 걸 운에 맡기며 열기구 캡틴의 지시에 따라 바구니에 올라탔다. 잔잔한 바다 위를 떠다니듯 흔들림 없이 올라가고 있는데도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서워만 하기엔 바깥 풍경이 너무 황홀했다. 해가 떠오르면서 바위를 점차 붉게 물들이고 그 위로 열기구들이 무리지어 떠 있는 만화 같은 풍경. 옆에 있던 커플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낀 채 같은 음악을 들으며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보며 나도 지금 이 순간을 함께 간직해줄, 그래서 언제나 같이 꺼내볼 수 있는 누군가가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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