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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May 27. 2018

발길 닿는 대로, 이스탄불

터키 여행, 이스탄불-카파도키아-파묵칼레-에페소

 이탈리아를 떠나 어디로 갈 것인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이집트에서 브라질로 가는 표는 사놓은 상황. 로마와 카이로 사이 비어있는 시간 동안 어디를 갈 것인지 마음이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처음으로 떠올린 곳은 터키였다. 대학 여행 동아리에서 터키를 한 달 동안 여행한 이의 이야기를 들은 후로 품어왔던 여행지였다. 여행 중이었던 2017년엔 테러 위험으로 터키 여행이 위험하단 얘기가 자주 나왔다. 터키를 대신 해 시칠리아와 몰타 그리고 그리스를 떠올려보았지만 '이곳이다' 싶은 곳이 없었다.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기도하며 원래 계획대로 이스탄불로 향했다. 사람들의 불안감을 반영하듯 거리에선 관광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요 관광지에서도 줄을 서는 일이 없었다. 물론 이 얘길 엄마에겐 하지 않았다.




블루모스크와 아야 소피아


나의 이스탄불 여행 중심엔 블루모스크가 있었다. 테라스에서 블루모스크를 볼 수 있다는 숙소를 추천받아 머문 덕에 숙소를 오갈 때마다 블루모스크를 지나쳤다. 지겹기는커녕 볼 때마다 발이 묶여 사진을 찍기 바빴다. 날이 흐리면 흐린 날의 풍경을, 맑으면 맑은 날의 풍경을 담았다. 긴 유럽 여행에 점점 성당과 교회가 지겨워진 참이었다. 처음 파리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았을 때의 감동은 이후 어떤 건축물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점점 성당 안에 들어가지 않게 됐고, 지나가더라도 점차 사진조차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블루모스크는 자꾸만 궁금하게 만들었다. 뒤를 돌아 바로 만나볼 수 있는 아야 소피아도 마찬가지. 겉모습뿐 아니라 내부도 궁금해져 문이 열기만을 기다렸다.



@낮과 밤


아야 소피아는 비잔틴 양식의 그리스도교 대성당으로 지어졌다 터키 지배하에 놓이면서 이슬람 모스크로 변모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건물 곳곳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아랍어가 쓰인 대형 원판 사이 성모자 벽화, 이슬람 예배당 느낌이 나는 곳 벽면을 채우고 있는 성화들의 아이러니한 공존. 과거 정복자들이 기독교의 것이라고 부수지 않고 남겨둔 덕분에, 내부 장식을 바꾸며 모자이크 작품을 긁어내지 않고 회칠만 해준 덕분에 두 종교가 함께 하는 공간이 남아있게 됐다.





톱카프 궁전





예레바탄 지하궁전


영화 <인페르노>에 나온 것을 보고 인상 깊었던 예레바탄 지하궁전. 저수지지만 그 규모가 거대해 '지하 궁전'이라 불린다. 관람객이 별로 없어 관람로를 따라 걷는데 동굴 속에 혼자 남겨진듯 조금 으스스했다. 방문 당시엔 보수 공사 때문인지 물이 흐르지 않고 있었다.  




슐레이마니에 모스크


블루모스크 인근 벤치에 앉아 있을 때 말을 걸어온 터키 남자가 소개해준 모스크에 찾아갔다. '한국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로 시작해 '내 친구 투어 가게가 있는데'로 끝나긴 했지만 그가 알려준 이스탄불 명소만큼은 훌륭했다. 그가 자신이 이 도시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이라며 전날에도 다녀왔다고 자신 있게 사진을 내밀었던 곳이었다. 함께 가주겠다는 호의를 거절하고 사진 속 풍경에 끌려 홀로 길을 나섰다.


길을 헤맨 건지 이스탄불 대학교 인근 골목길을 구불구불 한참 동안 헤맨 뒤 모스크에 닿았다. 모스크에서 내려다보이는 이스탄불 모습이 새로웠다. 사실 구석구석 돌아다니느라 이렇게 내려다본 것은 처음이었다. 대부분 도시마다 있는 전망대가 여기엔 없는 듯하다. 한참 동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시를 바라다보았다. 빗방울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지 않았다면 일몰을 즐길 있었을 텐데.





과거에서 현재로


관광 겸 쇼핑 겸 다리를 건너가 보기로 했다. 갈라탑을 목표로 삼아 (벌써 까먹어버렸지만 아마도) 갈라타 다리를 무작정 걸었다. 다리엔 낚싯대를 드리운 남성들이 난간에 기대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서너 개를 물속에 넣어둔 이들이 대부분. 어떤 책에선 생계를 위해 이들이 낚시를 한다고 보았는데, 어떤 이의 글에선 그저 소일거리로 하는 일이라고 한다. 무엇이 맞는 말인진 모르겠지만 진풍경을 뒤로하고 이곳의 명물 고등어 케밥을 하나 입에 물었다.


갈라탑을 넘어 마주한 도시는 숙소 근처와는 딴판이었다. 도로 양 옆으로 상점이 즐비한 건 비슷해 보이는데 그 상점의 종류가 달랐다. 숙소 근처에서 로쿰 가게 차 가게 기념품 상점을 보았다면, 여기선 서울 쇼핑거리와 다름없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거리엔 거대한 쇼핑몰이 몇몇 있었는데 들어가기 전, 가방 검사를 받아야 했다. 테러의 영향인 듯했다. 아마도 이것이 현재의 터키겠지.


한참 걷다 다다른 탁심광장. 뉴스에서 보았던 곳에 섰다. 의도하고 찾아간 곳은 아니었지만 표지판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자 괜히 반가웠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빼곡히 서있었던 사진 속 모습이 동상 근처에 그려졌다. 카파도키아로 가는 표를 예매해주며 "A버스는 반정부 시위 때 정부 편을 들었으니 B버스를 타"라고 말했던 호스텔 직원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그러고 나니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어졌다.





@탁심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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