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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May 05. 2018

터키 사람, 한국 사람

"한국 사람?"


카파도키아에서 한적한 길을 걷고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건넸다. 뒤를 돌아보니 기념품 가게 아저씨가 서있었다. 그는 언제 왔느냐, 카파도키아가 마음에 드느냐 등 질문을 이어갔다. 가이드북에서 '마을 사람들이 호객행위를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글을 본 게 떠올랐다.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생각하며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가려는데 그의 한 마디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한국 사람들이 그리워." 이게 무슨 말인가. 그는 "옛날엔 한국 사람들 진짜 많이 왔는데 요즘은 많이 안 와. 한국 가면 친구들한테 많이 오라고 말해"라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 터키. <꽃보다 누나> 이후 관광객이 더 늘어난 터키 주요 관광지에선 종종 한국 여행자들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었다. 길을 걸어갈 땐 "안녕하세요"는 기본, "많이 싸" 등 여러 한국말이 들려왔다. 터키에선 신기하게도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알아채고 말을 걸었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꼭 "형제의 나라" "우리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싸웠어"라고 대화를 이어가는 통에 귀찮아도 말 거는 이들을 냉정하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


터키 사람들의 한국어 실력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한여름 더위 같았던 5월 초의 파샤바 마을. 시원한 물 한 병을 사서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맛있어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몰라요"라고 외치며 누군가 터키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던 중년의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소년소녀처럼 까르르 웃으며 아이스크림 사 먹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꽃이랑 블루모스크를 함께 찍으면 예쁘다"고 말을 걸었다. 그리고 날 보며 씨익 웃는 통에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사진을 찍었다.


 소도시 사람들은 이스탄불에 비하면 양반. 이스탄불에선 가만히 서서 블루모스크를 바라볼 여유조차 즐길 수 없었다. 잠시라도 홀로 멈춰 있으면 꼭 누가 말을 걸었다. 누군가는 호객행위로 누군가는 호의로. 블루모스크 앞 광장에서 만난 그도 그랬다. "한국인에게 호감이 있다"며 말을 건넨 그는 능수능란했다. "원래 이맘때면 여기가 사람들로 가득 차야 하는데 지금은 관광객이 없어"라며 "나도 그래서 가게를 닫았어"라고 말했다. 테러 위험이 고조됐던 때라 그 말에 수긍이 갔다. 짠한 마음에 빗장을 풀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이스탄불 유명 관광지를 나열하며 하나하나 가보았느냐고 물었고, 마치 가이드 인양 전망 좋은 모스크와 전통춤을 볼 수 있는 가게 등을 소개해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술술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러다 다음 여행지인 카파도키아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내가 아는 투어사가 있는데, 넌 내 친구니까 내가 싸게 해달라고 할게"라고 말했다. 어딘가 익숙한 패턴. 모로코에서도 여러 번 겪었던 일이다. 결국 이 대화의 결론은 이거였던 건가. 카파도키아란 단어에 그는 '옳다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를 따라 투어사에 가 견적을 받았다.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망설이자 "친구니까 할인해주겠다"며 새로운 가격을 제시했다. 내겐 여전히 비싼 가격. 투어사를 나와 숙소 직원에게 버스 예약과 투어 신청을 부탁하며 에피소드를 들려줬더니 "나쁜 사람도 있으니 조심하라"라고 얘기했다. 그리곤 자기를 통해 하는 게 제일 쌀 거라면서 여기저기 전화하더니 벌룬 투어를 예약해줬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해 숙소 주인에게 그린 투어 예약을 부탁하며 벌룬 투어를 신청한 얘길 들려줬더니 "당연히 현지에 와서 하는 게 제일 싸지"란 답이 돌아왔다. 무엇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야간 버스에 파묵칼레에서 물놀이(발만 담그는 수준이었지만)를 하고 노곤해진 몸으로 에페수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며 여권을 내밀자 주인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꽤 능숙하게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아저씨는 많이 까먹었는데 내 덕분에 오랜만에 한국어를 써본다며 즐거워했다.


그날 밤. 그는 자기 친구들과 함께하는 저녁 자리에 나도 초대해주었다. 덕분에 그가 크루즈를 타고 세계를 다니며 셰프로 일했고, 한국에선 1년 반 정도 파주에서 일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셰프인 그가 만들어주는 터키 요리는 당연 맛있을 수밖에. 뭐라도 돕고 싶어 옆에서 그의 지시에 따라 양념을 따라 넣고 식탁을 세팅했다.


날 반갑게 맞아주는 걸 보며 그가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그가 하나씩 가만히 내어놓는 이야기 속 한국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근무했던 식당에 대해 그가 처음 떠올린 건 '스몰 피시'였다. 이름은 모르겠다며 한참 동안 얘길 하다 내가 "멸치?"라고 말하자 그는 그렇다고 했다. 일터에서 제공된 식탁 위엔 항상 멸치볶음과 김치가 올라왔다고 했다. 한국인에겐 익숙한 반찬들이라고 (스스로 구차하게 느껴지는) 설명을 해주었더니 인종차별 얘기가 나왔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라고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피했다고 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뭐라도 포장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당신이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길 바랐는데. 미안하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한국 사람에겐 아직 한민족이란 의식도 있고, 요즘엔 좀 늘었지만 역사적으로 외국인들과 접촉하면서 살지 않았고, 영어를 못 하는 사람들은 외국인만 보면 지레 겁을 먹고 외면하는 경우가 있어."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다. 당황해하는 날 보며 그는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나도 알아.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걸."


그간 거쳐간 수많은 도시들을 떠올렸다. 그곳 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어떤 이미지로 기억하게 될까.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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