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베니스-피렌체-로마
밀라노
밀라노에서 이탈리아 여행이 시작됐다. 주어진 시간은 반나절 남짓. 베니스로 이동하기 전 급하게 밀라노를 둘러보았다. 도시 이름은 익숙하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최후의 만찬'을 이곳에서 볼 수 있지만 그건 부지런히 예약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 망설이던 발걸음은 Eataly로 향했다. 요리에 관심 없는 나조차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먹고 싶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베니스
유럽을 둘러보며 'OO의 베니스'라 불리는 곳을 여럿 만났다. 물이 흐르고 다리가 많은 도시들은 대게 베니스를 수식어로 쓰고 있었다. 그때마다 진짜 베니스가 궁금해졌다.
기차역을 나서자 바로 바다가 나타났다. 그리고 도시 곳곳을 연결해주는 다리와 교통수단인 바포레토(수상 버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명 관광지인만큼 베니스에선 어딜 걸어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괜찮았다. 차가 다니지 않는 (사실 다닐 수 없는) 길 위엔 매연과 클락션 소리가 없었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함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갈 때마다 건물 사이 좁은 수로를 아슬아슬 지나가는 곤돌라 행렬에 발걸음 멈추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매번 지나치질 못했다. 그들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가끔은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하면서 베니스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피렌체
영화 <사랑과 열정 사이> 엔딩 장면으로 유명한 두오모에 올랐다. 다른 유럽 전망대와 마찬가지로 꼭대기까지 좁고 가파른 계단을 빙글빙글 걸어올라가야 했다. 쉬엄쉬엄 내 페이스로 걷는 건 불가능. 뒤에서 다른 사람이 올라오는 기척이 들리면 남은 힘을 짜내 움직여야만 했다. 비켜줄 여유 공간 따위는 없으니까. 정상에 도착해선 숨을 고르느라 한참을 보냈다. 그 후에야 피렌체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로맨스도 체력이 있어야 가능하단 걸 깨달았다.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도시의 전망대에 오를 때마다 생각했다. 여기에 올라간다는 건 이곳은 보지 못한단 얘기 아닌가. 타이페이의 101타워 전망대를 추천하는 글을 읽으며,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피렌체에서도 마찬가지. 두오모를 보기 위해선 두오모가 아니라 근처에 있는 조토의 종탑에 올라가야 했다. 그래서 또 한번 고난의 길에 올랐다.
친퀘테레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다 사진 한 컷에 사로잡혀 떠난 여행지가 몇 곳 있다. 친퀘테레도 그 중 하나. 아무런 정보 없이 해안절벽 위 알록달록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에 반해 떠나기로 결심했다. 여유가 있었다면 마을과 마을 사이를 걸으며 풍경을 천천히 담을 수 있었겠지만 주어진 건 하루 뿐. 미션을 수행하듯 기차를 내렸다 탔다 하며 마을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첫 마을에선 잔뜩 흐리더니 커피 한 잔을 즐기는 사이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졌다. 두번째 마을(몬테로소)에선 우산을 쓸 수 없을 만큼 비바람이 몰아쳤다. 우비를 하나씩 사입었지만 바람 때문에 옷이 가만히 있질 않았다. 세번째 마을에선 흠뻑 젖어 덜덜 떨며 간신히 밥을 먹고 네 번째 마을에선 기차에서 내렸을 때 해가 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마지막 마을을 걷가 사진 속 풍경 앞에 섰을 때,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한참을 앉아 구름이 지나가는 걸 기다렸다. 맥주 한 잔과 함께.
로마
로마의 모든 것이 익숙했다. 한번도 와본 적 없지만 많이 본 풍경들이 걷다보면 툭툭 튀어나왔다. 뭔가를 확인하러 간 느낌이랄까. 로마는 로마였다!
남부투어
하루동안 이탈리아 남부를 전부 돌아보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남부투어를 다녀왔지만 남부를 다녀왔다고 할 수 있는지 싶을 정도로 훑어보고만 왔다. 버스에 탔다 내렸다를 반복. 수없이 들어본 폼페이, 레몬의 상큼함을 느낄 수 있었던 포지타노, 대책 없이 신발 벗고 걸어 들어간 아말피 해변 등을 벼락치기하듯 추억 속에 욱여넣었다. 맛만 보고 와서 그런지 유독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다음에 이탈리아에 가게 된다면 꼭 아말피에서 오래 머물며 남부를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가이드가 온갖 흉흉한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며 "그래서 남부투어엔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한 나폴리도 포함해서.